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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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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공포증자를 위한 영화 [스피어]
에이즈 공포증자를 위한 영화 [스피어]
인생이 연극이라면, 영화는 인생의 한 단락을 보여주는 극적 구조가 아닐까 한다. 인생 자체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지만 인생의 한 단락만 뚝 빼어놓고 본다면 이것은 마치 영화처럼 원인과 결과에 따라 사건이 배열, 점층적인 구조 하에서 절정과 빠른 해결로 끝맺음을 한다. 끝맺고 보면 우리는 안다. 알고보니 자신을 괴롭히던 바로 그 중심적인 갈등이 해프닝이었거나 해결을 통해 교훈이 도출되는 사건이었다는 것을.
영화를 보는 것마냥 삶의 어떤 갈등과 대결에 매몰된 적이 없었는가. 각종 공포증, 그중에서도 에이즈 공포증에 걸린 사람들은 태생적인 공포 영화 시나리오 작가라고 해도 과히 나쁘지 않다. 절망이라는 행동이 진전되면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극히 좁아짐을 느낄 때 상황이 속수무책인 것으로 느껴지고, 미래는 가망성이 없어진다.
HIV 검사에서 음성이라는 '안전면허증'을 받아야지만 살 수 있는 HIV 검사 쇼핑족으로 전락한 처량한 모습, 양성 반응이 보이기라도 한다면 당장 자살을 할 사람들. 그 동안 절망적인 관념은 위기로 치닫고 그 상태를 변화시킬 전환점을 찾지 않으면 창살 없는 감옥에 스스로 구속시킨 채 살게 된다.
영화 [스피어]는 에이즈 공포증자의 심리적 상태를 가장 명확하게, 제일 또렷하게 영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백미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해리 등 각 등장 인물의 캐릭터는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이지만 경쟁과 불안, 슬픔과 망상으로 가득 찬 소시민의 성격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들은 외계에서 온 스피어라는 황금색 둥근 물질 속에 들어간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스피어는 인간의 잠재능력 및 무의식을 상징하고 있다. 상상만 해도 현실화되는 스피어의 능력. 하지만 주인공들은 서로를 죽이고 자신을 괴롭히는데 급급하다.
스피어는 단순히 무의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실이야말로 인간의 상상력이 창조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즉, 느끼고 상상하고 생각하고 정리하고 일반화하여 행동으로 이끌어 낸 모든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스피어는 상징이며 말이고, 인물이며 의미이고, 신호이고 기호이자, 공간이면서 시간이고 마지막으로 행동이다. 이 모든 것이 내면 속에 다시 켜켜이 쌓인 것이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스피어는 다시 외부로 표현되어 신체적 · 정신적 · 심리적인 움직임이 되고, 삶에 동기를 부여한다. 에이즈 공포증자의 공포증 심해에는 이와 같은 단계가 혼란스럽게 융합되어 있다.
한편, 공포증은 거짓된 외모, 판단 착오, 사회적 불평등, 이성이 없는 열정 그리고 악의 본성이 뭔지 설명한다. 진정한 악은 무지이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영화 [스피어]는 결론에서 악이 왜 필요한지 대신 설명한다. 인류의 진보를 위해 스피어를 잊자고 결의하는 살아남은 세 사람. 이들이 잊자고 한 것은 자기 마음 속의 또다른 자기였으며, 닫혀 있고 묻혀 있고 성장하지 못한 채 존재하던 많은 자신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어둠은 빛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고, 악은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좀처럼 배울 지 모른다. 그래서 삶의 부조리함은 갈수록 극대화되고 있다. 예컨대, 문제가 있는 상황이 있으면 점차 긴장이 증가해가고, 이 긴장과 갈등은 쌓이고 쌓여 알아들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폭발하게 되고, 다시 원래 상황으로 돌아오게 된다.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우리 속의 시한폭탄이 폭발하고 나면 다시 시한폭탄을 가동하는 그것.
그런데 이게 바로 극중 구조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대머리 여가수] 등 연극 상황이 대표적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마지막 극에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에이즈 공포증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계속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죽는 그날까지.
에이즈 공포증자라면 누구나 [스피어]를 보기를 권유한다. 에이즈 공포증이 일상생활의 사소한 잡담이 될지, 일생 일생 최대의 위기가 될지 아니면 삶의 전환점이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이 삶의 위기라면 하루빨리 자신의 원하는 기대를 만족시켜야 한다. 이게 해결부에 속한다. 거의 대부분의 에이즈 공포증자는 '해답이 없는 의문'으로 남겨두는데 이러한 태도는 결국 비극을 낳을 것이다. 비극이란 아무리 단순해도 불행한 결말을 의미한다. 또 인간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의미한다. 비극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불행은 죄악이나 부패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어떤 실수나 약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연민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사건들이 있으며 그래서 이러한 감정의 정화가 이룩된다."
[스피어]는 감정의 정화가 어떻게 정화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패배와 실패의 가능성을 갖고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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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를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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