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는 없다
우리 모임은회원가입....
 

아이디
비밀번호

2003/12/8(월)
필독] 에이즈 공포증, 무의식과의 대화  

에이즈 공포증, 무의식과의 대화
- 또 한 명의 몽유병 환자가 될 것인가! 삶을 되찾을 것인가!

여러분들 중 어떤 사람은 제게 대단한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갖가지 뜬 소문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바라는 에이즈 공포증자였다."입니다. 이 점에 대해 저는 특별히 할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제 삶의 내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심리학과 과학, 인권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항상 공부하고 연구하고 고민하고 정리하는 게 제 삶의 두드러진 특징이었지요. 시도 참 좋아했습니다. 시어 하나를 찾기위해 몇 일 동안 끙끙거릴 정도로. 이외에는 그저 평범할 따름입니다. 지금은 버려진 고양이를 부양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건 순전히 여러분과의 대화를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잠깐 동안 제 삶의 내력을 이야기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이번 대화의 주제는 '무의식'입니다. 갑자기 무의식이라니 의아할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난 의식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글을 읽어야 합니다.

저 또한 의식적으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무의식적인 행동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안정이란 반복이고, 반복된 삶은 실수를 저지를 확율이 적습니다. 실수 없이 안정된 반복적인 삶,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기계적인 완벽주의의 본질이고, 수십년간 같은 생활에 익숙해지다보면 삶의 90% 정도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권태(혹은 우울증)와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앞서 [차인표의 블랙박스]를 시청했습니다. 몽유병에 관해 분석하더군요. 다들 알지요. 몽유병이 뭔지에 대해서. 물론 정확히는 모를 것입니다.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과학의 숙제니까요. 이때 제게 뜨오른 건 브르호의 장편 3부작인 [몽유병자들]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1부는 오래 된 상류사회 생활윤리의 퇴폐를 묘사했고, 2부는 구질서를 무시하는 거친 소시민 계급의 방황을 주제로 하였으며, 3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일체의 가치를 부정한 무서한 현대적 합리성의 양상을 추구합니다. 브르호는 [몽유병자들]을 통해 가치 붕괴의 피아에 있는 생의 깊은 뜻을 발견하려는 희망을 그려냅니다. 여러분의 삶과 비슷하지 않나요? 소시민의 퇴폐, 방황, 합리성 그리고 생의 깊은 뜻!


죽이고 싶은 것들

2001년 캐나다의 평범한 소시민인 스콧 펠러티는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정은 변호인과 검사측의 증인들로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지요. 변호인측은 펠러티가 몽유병 환자이며, 사건이 있은 그날도 몽유병 상태에서 난폭한 행동을 했다고 주장한 반면, 검사측은 몽유병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결론이 어떻든 검사측은 범죄의 구성요건인 살해 동기를 찾질 못했습니다.

펠러티는 지금도 자신이 무죄임을 강변하고 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든 나는 진실을 믿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가 과연 유죄일까요.

저는 그가 무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사회를 기소하겠습니다. 펠러티가 있어야 할 곳은 진정으로 갱생할 수 있는 공간인 정신병원이며, 있어서 안 될 끔찍한 범죄의 주범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판단하게 된 연유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펠러티의 범죄는 무의식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의 무의식은 평소 사회와의 긴장과 모순으로부터 받은 분노와 좌절감을 스스로 억압한 결과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몽유병은 수면 상태입니다. 하지만 일반적 렘 수면과는 다른 차원이지요. 신체 근육이 긴장하고 있으며 무의식의 의도에 따라 -거의 정상적으로 보일 만큼-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렘 수면 상태(꿈을 꾸는 상태)에서는 숨을 쉬는 것 이외에는 모든 근육의 움직임이 멈추게 됩니다. 이때 지속적으로 악몽을 꾸게 되면 이를 '가위'라고 합니다. 평소에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깰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가위 때 몸이 안 움직이는 걸 특별한 걸로 인식하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몽유병은 좀 차원이 다르지요. 일부 과학자들은 뇌 세포의 신경전달 물질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쨌든, 몽유병 역시 무의식 상태에 있다는 건 거의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한 상태와 같습니다. 흔히 '술만 먹으면 개가 된다.'는 말을 하지요. 그 이유는 그가 의식을 멈추고 무의식 상태에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몽유병 환자는 무의식 상태에서는 매우 난폭해지기 쉬운데 이것은 술에 취한 사람의 행동과 놀라울 만큼 흡사합니다. 그래서 몽유병 환자나 술에 취한 사람이나 오히려 말리는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릅니다. 자신을 말리거나 자극하는 모든 대상에게 적개심을 품지요.

펠러티의 경우는 몽유병 상태에서 난폭해진 남편을 말리던 아내를 대상화시켜 그 동안 자신이 참아 온 모든 불만을 폭발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평소 그는 매우 착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검찰에서 아내 살해 동기를 찾질 못한 겁니다. 저는 에이즈 공포증자 또한 펠러티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아직 죽이지 못했을 뿐이지 대상을 찾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자신을 죽일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에이즈 공포증은 의식적인 논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순도 100% 무의식이라는 걸 깨닫길 바랍니다. 당신은 펠러티와 같은 칼날 위에 서 있습니다.


미래의 심장병 환자, 정신병 환자, 암 환자

에이즈 재평가 인권운동을 하면서 가장 놀랐던 건 에이즈 공포증자들이 우리 모임의 대표인 저를 죽이고 싶어했다는 그것입니다. "등 뒤에 칼을 꽂겠다."고 협박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여러분과 같은 에이즈 공포증자였습니다. 만일, 저를 죽이는 게 성공한다면 검찰에서 볼 때  당신은 단지 미친 사람일 뿐입니다. 살해 동기를 찾지 못할 테니까요. 그리고 여러분을 이해하는, 이해하고자하며 변호해 줄 유일한 사람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저를 죽이고 싶어하는데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인들 죽이고 싶지 않을까요? 실제로 부드럽고 진지하게 상담을 하는 와중에도 여러분들 중에서 살기를 가진 사람을 몇 명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한참동안 고민해봤습니다. 답은 ….

분노와 좌절감의 에너지를 밖으로 표출한 적이 없다는 게 분명해졌습니다. 분노는 절망을 낳았고, 좌절감은 죄책감을 낳았습니다. 결국은 자신에 대한 분노가 절망으로 이어졌고, 자신에 대한 좌절감이 죄책감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나마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것은 심리적인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마다 다르겠지요. 성공에 대한 집념이나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든가 등등.

에이즈 공포증이란 충격적이고 예상치 못한 정신적 증상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불안함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자기부정적 패턴은 자살하는 사람의 심리적 요인과 똑같습니다. 또한 존스 홉킨스 병원의 토머스 박사가 실시한 검사에 의하면 심장병, 정신병, 자살, 암에 선행하는 심리적 요인은 거의 같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에이즈 공포증에서 벗어난다고 할 지라도, 공포증을 빚어낸 지금의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미래의 심장병 환자, 정신병 환자, 암 환자가 될 것이며 이중 일부는 틀림없이 자살할 겁니다. 심리적 버팀목마저 부서지면 가족을 억류하여 동반 자살을 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사건이 비일비재하지요.


에이즈 가설이 세상 사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이 글의 목적은 당신을 판단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무의식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드러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애를 통틀어 병과 보상을 연관시키도록 길들여져 왔습니다. 병에 걸려야지만 비로소 학교에 가지 않을 수 있고, 직장에서 쉴 수 있었습니다. 병에 걸리면 군대도 안 가고, 군대에 가도 의가사 제대를 할 수 있었다는 게 모든 상황을 설명합니다. 한편, 병에 걸리면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의료보험 재정 중 90%를 감기 환자가 받아가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그리고 아픈 사람이 그토록 많은 진짜 이유입니다.

에이즈 공포증은 가장 최악의, 하지만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병(?)과 보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에이즈 공포증을 병으로 보지 않으며, 당신을 환자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비난을 받은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일부 에이즈 공포증자는 우리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필요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AIDS/HIV 가설에 의존한 인생이 아닌, 이 가설을 뛰어넘어 있는 그대로 과학과 현실을 이야기하는 한 명의 고결한 인생으로 보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펠러티의 자기변명처럼  아직도 자신은 진실을 믿고 있다는, 에이즈가 있다고 믿고 싶은 망상적 논리가 진실 앞에서는 한 줌 가루에 불과하며 이 가루 속에서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 참자아를 가진 존재인지 우리가 거울이 되어 반영시켜 드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톡 까놓고 말한다면 이 세상 사는 데 안 힘든 사람 없습니다. 세상 자체가 우리를 힘들 게 합니다. 우리는 숨을 쉬며 살아야 합니다. 이 숨구멍마저 막아버리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그러자면 용기를 내야 합니다. 강 건너 편에 서서 떡고물이나 받아 챙겨먹을 요령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또 자기 자신을 극도로 억압해서 나중에 얻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생각하기도 싫은 자기 모멸감과 수치심만이 계속 쌓일 겁니다.

우리 모임의 과학 논문을 읽어보십시오. 진실이 담긴 대화를 나누길 원합니다. 여러분의 닫힌 에너지를 확실히 속 시원하게 풀어 드리겠습니다. 인간은 하루 평균 6만 가지의 생각을 하는데 이중 1만 가지 정도만 희망과 용기가 담긴 생각을 해보십시오. 삶이 질적으로 변화합니다.  

[100살까지 살고 싶으세요]에서 저는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한 시각장애인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시각장애인으로 되돌아간 사례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당뇨병으로 시력을 잃은 줄리라는 젊은 여성은 웃음을 통해 삶을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어느날 정상 시력인 남자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가 남자친구가 넘어지자 "자, 나보다도 당신한테 지팡이가 더 필요하겠어."라고 말한 뒤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눈이 먼 덕에 나는 보는 법을 배웠어요. 그리고 죽음은 내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었죠." 우리 모임의 젊은 여성 회원인 삶의 시작님도 제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HIV 양성 반응이 나왔을 땐 죽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다시 음성이 나왔을 때 저는 알았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에이즈 가설 때문에 일어난 지옥같은 체험이 제게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어요."

메드시티콤이나 이와 비슷한 에이즈 게시판에서 신세한탄을 하는 것보다, 몽유병 환자처럼 이 세상을 사는 것보다, 또렷한 의식으로 현실을 명료히 인식하며 최대한 사랑을 베풀며 이 세상을 사는 게 중요합니다. 에이즈 지옥은 이미 최악이며, 이 지옥에 존재하는데 작게나마 기여한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기 때문입니다.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에이즈를 고발한다
141   당신은 사랑을 배운 적이 있는가? 12/08-14:56  3269
140   필독] 에이즈 공포증, 무의식과의 대화 12/08-14:55  4104
139   에이즈 세상에서 100살까지 살고 싶으세요? 12/08-14:54  4025
138   자살이라는 폭탄, 에이즈 공포증을 치료할 수 있... 12/03-16:10  4526
137   HIV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거짓은 가라! 11/26-17:02  4713
 

영문 에이즈 정보검색의 최강자 PICO에서 반체제 에이즈 이론을 검색해 보십시오.
PicoSearch
  He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