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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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떳떳할 수 있는 날
올린 날: 2002-11-13
이 름 보균자란 이름으로 날 짜 2002/11/12 (03:16:09)
홈페이지 번 호 647 조 회 28
제 목 떳떳할 수 있는 날
떳떳할 수 있는 날....
그 날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 그 날 일 거 같습니다.
모든 차별과 편견에서 자유로와 지는 그 날은.....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난 그냥 잘 자라왔을 뿐인데..
초등학교 어느 순간 다른 아이들이 다 맞는 주사를 나는 맞지 않았다.
그것이 내 인생의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 때는 좀 이상했지만 아픈 주사를 맞지않아도 될 거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중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일년에 한두번 맞고 몇년마다 주사를 맞으면 된다고 한다. 난 그때도 주사를 맞지 않았다. 그때부터 난 불안했다.
아니 그때부터 내가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쪽팔리기 시작했다.
가끔씩 친구들의 입에서 튀어나는 '더러운 간염...' 이란 소리에 나를 두고 한 소리도 아니지만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리고 내가 주사를 안맞았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기를 바랬다.
어떨 때 가까운 친구들이 너 주사 맞았니? 하고 물어보면. 얼레벌레 딴소리를 한다. "근데 말야~~~" 화제 전환이다.
고딩을 졸업했다. 대학을 갔다. 호텔관련 대학이란다. 고민했다. 나같은 신분으로 그런 곳을 갈 수 있을까? 혼자 머리 터져라 고민했다 너무도 가고 싶었다.
모자라는 실력으로 보건위생법 뒤졌다. 여기저기 법률을 뒤졌다.
그리고 결국 합격을 하고 말았다. 두번째 불행의 씨앗을 심었던 것이다.
대학생이 되면서 모든 것을 잊었다. 군대 가기 전에 시간이 남았다. 6개월 정도
아르바이트 거리가 생겼다. 근데 그곳에서 보건증을 요구했다.
악몽이 되살아난 것이다.
잊었던 기억들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그리고 용기를 내었다. 단건 아무 것도 아니였다. 보건소에 가서 피를 뽑았다. 붉은 그게 그렇게 더러운 피였던가. 그때도 그걸 느끼지 못했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몇일후 보건증이 나왔다. 붉은색 도장으로 기억한다 항원 양성.. 의사의 소견이 써있었다. 항원 양성이나 전염성 없음.
그나마 그게 위안이었다.
무지 건강했었다. 바로 전 해에 현역1급 판정이 나왔다. 일단 아르바이트 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몇 개월이 지나고 난 또 그 사실을 망각했다.
군대에 가게 됐다. 논산이란다.
친구들은 거의 752 주특기를 받는다고 했다. 나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군대에도 신검이 또 있었다. 별 생각 없었다.
주특기는 960이었다. 개인이력카드를 잠시 볼 수 있었다. 원래 752지만 항원양성으로 주특기 변경이란 소리였다.
내 일생의 첫번째 시련이었다. 후반기 교육을 갔다. 우리 동지들이 몇명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간염인 사람 손들라고 했다. 죽어도 안들었다. 죽어도 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는 분류했다. 갸들은 식판 따로 쓴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명칭은 간염 보균자도 아니었다. 간염 환자였다. 환자가 왜 군대에 왔을까 의문이었다.
소대장이고 누구고 내가 보기에도 차별이었다. 좋은 건 밥 먼저 먹는 거 하나였다. 물컵도 따로였다. 그리고 물컵에 간염이라고 큼지막하게 썼다. 매직으로 아주 멀리서도 보이게끔... 나도 거기에 끼여있었어야 했지만. 절대 안했다. 언젠가 헌혈차가 왔다. 나도 피를 뽑았다. 눈치채지 못하게... 물론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 부디 내 피는 모두 폐기되기를 바라면서....
그 곳에 있는 첫날 신검을 하고 주특기를 받았던 그날.... 모든 것이 암담했다. 옆의 훈련소 동기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한 손은 입을 막고 한 손은 눈물을 닦아내고야 말았다. 그것이 내 군생활에서 유일하게 흘린 눈물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마음의 진정이 됐다. 그곳에서 느껴졌던 우리들은 정말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없었다.
심지어 어떤 중대장은 간염 병균들이 득실득실한 놈들이라고 했다. 더러운 건 기본이다. 누구에게나 도움이 안돼는 인생들이었다. 어쨌건 군생활은 적당히 은폐와 엄폐를 해가면서 보호막을 친 결과 누구도 날 의심하지 못하게 제대하는 그날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다시 복학을 했다.
한참 취업이 힘든 시절이었다. 졸업반이 되면서 난 알고 있었다. 나의 미래를. 군대에서 간접적으로 겪었던 사실들을. 그치만.. 내가 할 수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길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했다. 젊음을 느끼고 싶었다. 자유로왔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어둠은 항상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여름이 됐다. OJT 한다고 난리들이었다. 가뜩이나 취업한파로 IMF 바로 직전이었다. 모 호텔에 OJT를 신청했다.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새로 지은 호텔이라 사람을 뽑을 가능성을 보았다.
두달 동안 열심히 일했다. OJT 이후 아르바이트 그리고 정사원이 목표였다.
그곳에서 잠시 일하면서 전에 거기서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간염이라서 짤렸다는 소리가 어설프게 내 귓가에 들어왔다.
난 아무 소리두 못했다. OJT 끝난 이후로 절대 얼씬거리지 않았다.
또 시간이 흘렀다. 모 기업에서 사람을 뽑는단다. 그당시 나 한 자격증했다.
애덜 동아리 모임갈 때 남보다 더 열심히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 끝나고 학원 다녔다. 애덜 자격증 하나였을 때 나 이미 세개째였다. 그리 잘나지는 않았지만 나 스스로 만족했고 노력했다.
이후 모 기업에서 사람을 뽑는 소리가 있었다. 원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그냥 다른 곳보다는 좋을 거 같았다. 서류 합격했고 면접 합격했다. 무척 기뻤다. 하지만 되레 걱정이 됐다.
신검이 있었다. 같은 과 친구도 합격했다. 겉으론 호텔이 아니여서 별루라고 했지만 속으로 어딘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었다.
드뎌 피를 뽑는다. 난 이게 이 세상에서 젤로 싫다. 왜 내 피는 이렇게 깨끗하게 안보일까........ 이 피가 날 다시 시련으로 몰아갔다.
관련법규들이 생각났다. e항원은 항상 음성으로 나왔었다. 난 전염력이 없으니깐.. 설마...... 두근두근.....
하지만 사회는 냉정했다. 피를 뽑고 몇일 후 최종 합격 전보가 아닌 한 남자로 부터 전화가 왔다.
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아주 어릴 적에 묻었던 씨앗이 이제 열매를 맺는구나... 그동안 이 달콤한 열매를 내게 주기 위해서 얼마나 나와 함께 동거동락했었니.................
당연한 결과였다. 난 정중히 재신검을 거부했다. 그걸루 끝이였다.
집에서 결과가 어떻게 나왔냐고 물어보셨다. 난 그냥 별루였다고 했다.
호텔 아니라서 그냥 별루라고..... 참고 참고 참았는데....
결국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얼른 자리를 피했다. 부모님 걱정시키는건 정말 싫었는데. 결국 모든 사실을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내가 잘못될까봐서 무척 걱정했다.
정말 친한 친구한 놈이 있었는데 물론 그 놈한테두 절대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 놈과 통화를 하면서 내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다. 내 절친한 친구가 그 사실을 아는 것도 난 두려웠다. 아니 모두 보기 싫었다.
혼자 있고 싶었다. 이 열매가 이렇게 달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누구도 내게는 도움이 될수 없었다. 그 사실을 난 알고 있었다. 결국 나의 인생은 .....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기대할 아무 것도 없었다.
1년이란 시간 동안 방황을 했다. 내가 할 수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오로지 인류를 위해서 사라지는 것 밖에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정상인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다. 어느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 그 이후 모 업체에 들어갔다가 또 다시 신검하는 그날 안하고 그냥 포기해버렸다.
아르바이트 인생......
후련하구나. 쓰다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졌다.
법이란 아주 멀리 있다. 우리 현실에서는 아직도 반복되고있는 일들이다.
물론 점차 개선되겠지만. 아니 안될 수도 있겠지. 우리 어머니 아부지는 항원 음성이다. 근데 나와 누이는 양성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가 무슨 이유로 동지가 되었는 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잘못은 아닌 거 같다. 부모님 잘못도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나.?
난 열심히 살고 싶었다. 행복하고 싶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러나 나에게 직장은 환상이었다. 아니 정상인들과 같이 살 수있는 영광만으로도 과분할 지도 모르겠군....
이 글을 쓰는 동안도 몇번의 눈흘림이 있었는지 모른다. 새벽 3시20분..
나의 지난 과거에 있었던 일이다. 이 아픔은 내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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