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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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견서도 정밀검사도 소용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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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린 날: 2000-3-16


김인원(inwoni@ablex.net) 날 짜 2000/03/14

오늘 이리 저리 TV 채널을 돌리다 한선생님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너무 반가웠습니다.
제가 6년전에 이렇게 얘기 나눌 곳을 찾았었는데 이제 외롭지 않군요.

친정식구 모두 B형 간염보균자입니다.
어떻게 감염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온가족 6명이 모두...
e 항원이 모두 양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양성입니다.

저는 1995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유명한 통신회사인 D사에 합격했습니다.
꼭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였고, 토익공부도 해서 당당히 합격했죠.
신체검사는 종로에 있는 하나로건강검진센터에서 했습니다.
합숙 신입사원 연수일에 재검이 나와 재검을 받고 연수에 들어갔는데 합숙이 끝난 다음 기본 컴퓨터 교육과정을 받던 두 번째 날에 저와 몇몇을 호명하더군요.
간염보균자이기 때문에 입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귀가조치했습니다.
GOT, GPT가 모두 30이하였지만 하여튼 B형간염보균자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건강검진센터에 가서 항의도 해보고, 다른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와 의사 소견서까지 준비해서 다시 D사를 방문했지만 D사에서는 담당자가 나와보지도 않고 들여보내주지도 않고, 인터폰상으로 "회사의 내규이니 어쩔 수 없다. 당신을 만나서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으니 돌아가라"였습니다.
제가 준비해간 모든 서류는 물론이고 저를 직접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D사에서는 합숙에 들어가기 전에 동의서에 서명하도록 했는데 그 내용은 "신체검사 결과 및 다른 결격 사유가 발견되어 입사가 취소되어도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보건복지부에서 이미 B형간염보균자의 취업 불이익을 없도록 하겠다는 발표문도 봤었고,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의사분들(하나로건강검진센터 관련자들만 빼고)도 B형간염 보균자라고 해서 취업에 제한을 둘 수는 없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입사 취소 처분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유흥업소에 취직하는 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회사업무에서 다른 사람한테 전염시킬 리도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 후 국내 모든 대기업에 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신체검사에서 떨어졌습니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하나로건강검진센터의 답변이었습니다.
"D사에서 불합격조건에 B형간염보균자가 들어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D사에서도 당신이 정말 필요한 사람이면 합격시켰겠지"였습니다.
정정당당히 모든 시험을 치르고 합격했는데도 그 사람의 필요성이 B형간염바이러스로 결정되다니요.
그리고 의료업에 종사한다는 사람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의료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B형간염보균자를 쓸모 없는 인간으로 취급했습니다.

저는 제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이럴 줄 알았다면 공부고 뭐고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모체 감염됐다고 하더라도 제가 자식된 도리로 부모를 원망하겠습니까?
부모님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이미 저는 간염보균자임을 밝혔고 D사에서 그런 일을 당하기 전까지 저는 당당히 밝혔습니다.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고 2세도 낳자마자 주사를 맞으면 된단다. 결혼전에 너만 간염예방주사 열심히 맞고 항체를 만들면 된다"라고요.
하지만 이제 괜히 죄지은 느낌입니다.
남편도 제가 당한 일을 모두 알고 있고 부당성도 알고 있지만 시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 임신3개월입니다.
제 자식이 저와 같은 일을 당할까 두렵습니다.

큰소리로 외쳐서 모든 사람들이 B형간염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게 하고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날개를 꺾이고 추락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상황을 알리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정부와 일반 기업은 B형간염 보균자를 구제의 가치도 없는 장애 아닌 장애자로 만들었습니다.
기업들이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지만 B형간염 바이러스는 그 사람의 능력과 잠재력을 모두 뭉개버리고도 남았나봅니다.

처음엔 D사에 미련이 있었지만 시일이 조금 지나고 나서 그런 회사들은 돌아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후 저는 벤쳐회사에 취직해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일도 하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대기업에 취직했으면 결코 배울 수 없었던 많은 것을 배웠지요.
저는 컴퓨터를 전공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간염보균자들이 선택의 폭이 넓지는 않습니다.

B형 간염바이러스를 핑계로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미래를 짓밟는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은 용인해서는 안됩니다.
저도 도움이 된다면 적극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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