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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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31(토)
번역]검열되지 않은 에이즈의 역사_진실의 방벽  

INTRO
POZ매거진에서 "The most dangerous AIDS reporter(가장 위험한 에이즈 리포터)"라고 이야기한 여류기자 실리아 파버(Celia Farber, 우측사진)의 "An Uncensored History of AIDS(검열되지 않은 에이즈의 역사)"서적의 서문, "진실의 방벽(The Truth Barrier)"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실리아 파버는 반체제 에이즈 이론의 전파에 있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동시에, 가장 이슈화되는 글을 기고하고 있는 여류기자입니다. 이 서적은 2006년 12월에 초판이 출판되었고 반체제 이론의 최근 동향을 정리하고 기술하는데 획기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판단되어 번역을 시작해 보았습니다.
(책의 자세한 내용에 궁금하신 분들은 http://www.bookslut.com/features/2006_09_009885.php 를 방문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에이즈를 고발한다' 코너에 게시한 케리 뮬리스 인터뷰(원제:The Rebel Genius<반항적 천재> 우리 모임에서는 에이즈를 고발한다 코너에서 '이 개자식들아, 토론 좀 하자'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어 있습니다.)역시 실리아 파버가 인터뷰한 것이며 이 책의 8장에 실려있기도 합니다. 이 책에는 이 인터뷰 이외에도 주옥같은 자료들이 넘쳐납니다.

번역하면서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많은 새로운 내용을 차차 알게 되었습니다.

인상적인 부분은 우선 첫째로 로버트 갤로가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최초로 주장했던 HTLV-1바이러스는 갤로가 이전에 한번 백혈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던 바이러스더군요. 글에서도 나오지만 백혈병은 백혈구가 과잉상태로 되는 질병입니다. 웃기는 것은 에이즈는 백혈구 결핍질환이라는 것이지요. 폭소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두번째, 실리아 파버의 전세계적 반체제 에이즈 활동에 대한 소개에서 South Korea가 미국, 남아프리카에 이어 세번째로 소개되더군요.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nd yet the critics only seem to grow in numbers, cropping up on innumerable websites and in escalating numbers of organizations around the world, from U.S., to South Africa, to South Korea, Mexico, Brazil, India, Russia, and countless other nations."

한국이 반체제 에이즈 활동을 실리아 파버도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즉 이것은 실리아 파버가 우리 모임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참으로 고무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번역의도 중 가장 핵심적인 것 중 하나가 가끔 반체제 에이즈 이론이 93년도 이후 소멸되었다고 주장하는 바보들이 가끔 있어서 반체제 에이즈 활동의 2006년도 말의 최신동향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최근의 반체제 에이즈 활동의 움직임을 소개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소 글이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에이즈 가설의 출몰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에이즈 가설의 모순과 허구성에 대한 모든 내용을 압축하고 있는 최고의 명문입니다. 서문 이후에는 제1장 '피터 듀스버그의 열정' 이라는 글이 계속됩니다. 많은 분들께 이 글을 권하고 싶습니다. 본문 올립니다.
                                                                                  2007년 3월 raymund 드림
                                                                                                                           
         
                                       
                                          Serious Adverse Events
                        An Uncensored History of AIDS

                               -"검열되지 않은 에이즈의 역사"-        

                                                                                          By Celia Farber
                                                                                                                           
"죽음의 위협은 모든 사람에게 드리워져 있다. 어떤 방식으로 가장하던, 그리고 때때로 잊혀진다 할지라도 항상 대중에게 계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죽음을 그들 중 다른 이들에게로 몰아갈 필요를 창조한다. 추적군중(baiting crowd)의 대열은 이러한 필요에 반응한다."

                                                       -  엘리어스 카네티; 군중과 권력(Crowd and Power)
                                                                                                                                                         
                                                                       
                                       Preface:The Truth Barrier

                                               서문: 진실의 방벽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다음 말은 유명하다: “미래의 제국은 지력(知力)의 제국이다” 이는 단지 850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베이직 잉글리쉬[역자주: Basic English, 영국인 C.K. Ogden이 1930년에 발표한, 850어를 기본으로 하는 간이 영어]라 불리는 연합군에 의해 사용된 링구아 프랑카[역자주: Linga franca, 모국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상호이해를 위하여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의 완성을 위해 그가 열의를 보이던 시기였다.

조지오웰은 BBC에 재직할 동안 베이직 잉글리쉬에 심취해 있었고, 학자들은 이것이 '1984년'에서 전체주의적 전달체계를 의미하는 “뉴스피크(Newspeak)”의 기초를 형성하였다고 이야기한다. [역자주: Newspeak, 정부, 관리 등이 여론조작을 위하여 사람을 기만하는 애매한 표현을 쓰는 것을 지칭한다. 새 말하기, 말 없애기, 말 만들어 하기, 말 바꿔 하기 등의 뜻을 갖고 있으며 조지오웰이 소설 '1984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말이다. 예를 들어 '좋다'와 '나쁘다'에서 '나쁘다'는 말을 없애버린다. 그렇게 하면 모든 사물은 아무리 나빠도 좋은 것이 된다. 뉴스피크는 특히 현대선전선동술과 세뇌교육에서부터 일반 홍보나 광고에까지 흔히 사용되고 있다.]

1984년 4월 23일 이후, 지력의 제국은 전세계적으로 확장을 거듭했다. 그것은 하나의 단순하고 공포스러운 발상이다, 그리고 그것이 뿌리를 내리는 지력 하나하나는 마치 영토를 병합하듯 제국으로 편입된다. 그것은 발상(發想)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언명(言明)에 가까웠다. 엄청나게 강력한 그 언명의 내용은 바로 수많은 미국인에게 즉각적인 사망을 초래할 성관계로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하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1984년 4월 23일, 워싱턴 DC의 운집한 기자회견장에서 선언되었고, 여기에서 미보건복지부 장관, 마가레트 헤클러(Margaret Heckler)는 “에이즈의 개연성 있는(probable) 원인이 발견되었다.”고 공표하였다. 그녀는 국립 암협회의 바이러스학자, 암세포생물학 연구소장 로버트 갤로(Robert Gallo)를 소개하였다. 갤로는 리트로바이럴 “입자들”의 집합이 “에이즈의 개연성 있는 원인”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설명했다. 헤클러는 2년안에 “에이즈 백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그리고 그 연설은 “미국 과학계의 우등생 명단”의 분기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바로 다음날, “개연성 있는(probable)”의 단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리트로바이러스”, - 이후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라고 명명된 – 는 아예 “에이즈 바이러스”로 전세계의 의식에 영구히 자리잡게 되었다. (“개연성 있는”이라는 단어는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기자 로렌스 알트만(Lawrence Altman)이 리트로바이러스를 “에이즈 바이러스”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이후 영구히 사라졌다. 뉴욕타임즈의 핵심 의학 기자인 알트만은 한때 “의학계에서의 CIA”라고 알려진 EIS(전염성 정보 서비스)라 불리는 CDC(미보건당국) 하부 조직의 멤버였다. 그는 1963년, EIS에 채용되었고 6년 전에는 타임즈에서 그의 첫 경력을 시작한 바 있다. 1951년에 수립된 EIS의 주 목적은 미디어를 포함한 각종 분야로 조직을 산개하여 공중 보건 행동가로 활동하거나 CDC의 아젠다를 광고하여 CDC의 “눈과 귀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 시점, 그 유명한 기자 회견은 전 세계를 새로운 시대로 쏘아보냈고, 공식적인 에이즈 역사의 시초- 미보건복지부가 NASA의 첫 달착륙에 견주어 표현한 사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는 이것을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한 에이즈 학자가 나에게 이야기하기를, “에이즈의 원인은 정부의 명령으로 선언된 겁니다.” 그 날, 청중에 있던 과학자들 중 일부는 갤로의 주장에 말문이 막힐 정도로 경악했다. 무엇보다도 갤로의 바이러스 샘플은 그 전년도에 파리 파스퇴르 협회의 뤽 몽타니에(Luc Montagnier) 연구소가 분리하고 의견을 구하기 위해 갤로에게 송부한 샘플과 똑같은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이를 알아차렸다.- 그런데도 나서서 이야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다수의 조사위원회와 저널리스트들 - 특히 한 사람, 시카고 트리뷴의 저널리스트 존 크루드슨(John Crewdson)은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글로 샘플의 도용을 폭로한 바 있다 - 에 의하여 바이러스학의 모든, 그 어느 순간보다도 더 철저히 검토되고 입증되었으며, 결국에는 미국 정부가 몸소 시인한 사실이기도 하다. 1994년이 되어 미국정부는 파스퇴르 협회가 바이러스를 발견한 것이고 미국이 그들에게 HIV테스트 로열티에 대해 수백만불을 빚지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파스퇴르 협회의 과학자들과의 오랜 법정싸움을 조용히 마무리지었다. 몽타니에는 바이러스가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절대 주장하지 않았는데도, 갤로와 NCI는 그렇다고 주장했다.

이 상징적인 기자회견은 무수히도 많이 보도되었다.(나 역시 “특종”과 “글로벌 미디어”광란으로 점철된 이것에 대한, 평이한, 영화화 버전을 수차례 기술했다.) 그러나 이러한 광풍의 도화선이 된 모든 기상조건과 역사적 맥락을 통해 이 기자회견을 분석해 보면, 그 누구라도 이것은 과학계의 수치일뿐만 아니라 사기극의 현장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역자주 : 이 기자회견을 직접 보고 싶은 독자는 '에이즈를 고발한다'코너에 게시된 다큐멘터리 '에이즈 가설의 저편 너머(The Other Side of AIDS)'의 도입부분을 참조할 것]

우리가 야심에 찬 과학자와 그를 질투하는 라이벌, 무모한 에이즈 행동주의자, 자기모순에 빠져있는 정치인, 아무도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근심으로 뒤틀려있는 CDC공무원들의 뻣뻣한 겉껍데기를 제거하고 1984년의 기자회견을 포장없는 상태로 적나라하게 바라보면, 결국 이면에 놓인 기이하고 뒤틀린 배선뭉치를 발견할 수 있다.

갤로가 당시 발견의 근거로 삼았던 게이 환자그룹 중 절반도 못되는(36%) 숫자만이 리트로바이러스의 흔적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또한 1970년대 “역전사효소”의 발견 이후에 등장한 “리트로바이러스학자들”세대의 지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바로 그 순간까지 리트로바이러스는 비병원성이며, 세포를 죽이지 않는다고 생각되고 있었다.

갤로는 “에이즈에 있어 바이러스의 원인적 연관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전혀 증명된 과학적 사실이 아니었다. 갤로는 기껏해야 리트로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한 것 뿐이었다. 그는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않았다. 갤로는 이후 1984년 봄이 되어서야 사이언스지에 HIV가설의 근간을 형성하는 네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논문을 검토해보아도, HIV가 에이즈를 야기한다는 것을 그와 그의 동료들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 상세한 내용들이 발견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스토리는 정말로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1년의 에이즈 최초사례를 회고할 필요가 있다.

1980년, CDC는 찬란한 승리를 예상했으나 참담한 실패로 돌아간, “돼지 인플루엔자”전염병의 시초로 명명된 재향군인병[역자주:레지오넬라, legionaire disease] 백신프로그램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필라델피아에서의 집회장소에서 미국 재향군인들 중 일부가 폐렴에 걸리게 되었다. CDC는 열성적으로 이를 조사하였고, 원인이 흙에 있는 세균이라고 주장하였다. “돼지 인플루엔자”에 대한 집단적 공포는 대중매체로 퍼져나갔다.- 이것 역시 타임즈의 알트만이 보도한 것이다. CDC는 이 질병을 연구할 연구 분과를 설치하였고 급성백신을 제조하여 5천만명의 미국인들에게 접종하였다. 이 백신은 600명에게 전신마비상태를 초래하였고 74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법정소송이 물밀듯이 제기되었고, 백신이 사람들을 사망하게 한 사실을 은폐하려 하였던 CDC의 대표는 해고되었다. CDC는 계속해서 전염성 병원체를 찾았다. CDC의 존재목적은 바로 완벽한 공중보건정책을 통하여 질병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돼지 인플루엔자 사태는 CDC에게 있어 도망칠 대상에 불과했다. 그들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노선을 바꾸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이 이야기하는 “알맞은 전염병”을 향한 드라이브를 강화할 뿐이었다.

에이즈는 게이들 사이에서 “돌연 출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탐색된” 것이다. 1980년, 캘리포니아대 의학 센터의 연구원, 마이클 고틀리브(Michael Gottlieb)는 “면역 체계에 대하여 연구하길 원했고 병원 내에서 면역결핍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는 한 사례를 찾았다. 그 사례는 목청에 진균감염이 발생한 한 30대 초반 남자의 주폐포자충성 폐렴[역자주: 흔히 PCP라 지칭, 일명 카리니성 폐렴이라고도 불림, Pneumocystis Carinii Pneumonia]이었다. 면역 체계의 백혈구 군집인 티세포 수치를 측정하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여 고틀리브는 그 환자의 티세포 수치가 매우 적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고틀리브는 계속하여 추가 사례를 찾았고, 결국에 4건의 유사한 사례를 찾아냈다. 고틀리브는 흥분에 겨워 뉴 잉글랜드 의학 저널(NEJM)에 수화기를 들었다. “레지오넬라보다 더 큰 건을 발견했습니다. 자료를 제출한 다음 최대한 빨리 출판한다면 얼마나 걸릴까요?” NEJM가 급작스런 출판을 거절하자, 고틀리브는 CDC로 발걸음을 돌렸다. CDC의 성병 분과에 재직하던 제임스 큐란(James Curran)은 자신의 책상에서 최초로 발표하였다. 대대적으로 “특종,특종”의 문구와 함께 CDC 주간 보도에 황급히 우겨넣었다. 이후 CDC에는 새로운 증상의 더 많은 사례들이 보고되었는데, 이는 내부 장기에도 발생하나 대부분은 피부표면의 자주색 반점으로 특징지어진, 카포시 육종(Kaposi's Sarcoma)이라 불리는 희귀한 혈관성 암 질환이었다.

미국립보건원(NIH)은 그동안 리트로바이러스가 대부분의 암질환의 원인이라는 것과 같이 부도난 가설에 집착해 철저히 실패한, 닉슨의 “암과의 전쟁”에 대한 부담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것은 영예를 얻기 위해 훈련되고 준비된 리트로바이러스 학자 세대가 초점을 맞출 질병이 바닥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최초의 에이즈 사례에 앞서, 연방 기관들은 모든 것에 대하여 바이러스성 원인을 찾아내려고 작정한 좌절상태의 연구원들과 과학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국립 암센터의 로버트 갤로였다.

갤로는 정말 우스꽝스럽게도 그의 바이러스들 중 하나를 끼워맞출 질병을 찾으려 오랜 세월을 보냈다. HIV모델은 마치 존재할 것으로 소망되거나 꿈꾸어진 것처럼, 분리되기도 전에 수립되었다. 갤로는 1980년에 그가 HTLV라고 이름붙인 그의 첫번째 전쟁상대 -‘최초로 알려진 인간 리트로바이러스”(이후 HTLV1이라 불린다.)를 확인하였다. 갤로는 이 바이러스가 캐리비언 및 아프리카의 일부지역과 일본 큐슈의 거류민들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 중 일부는 성인 티세포 백혈병이라 불리는 백혈병 종류에 시달리고 있었고, 갤로에게 필요했던 건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즉시 자신의 이론을 교과서에 우겨넣었고, HTLV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연관성에 대한 증거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현재까지 교과서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나 대대적인 본론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 새로운 리트로바이러스 신앙의 기초는 바로 여기있다: HTLV는 수년간의 긴 잠복기 이후에 질병을 일으킨다고 이야기되었다. 이 바이러스가 태어나면서 어머니로부터 전달된다는 것이 발견된 다음, 잠복기는 황당무계하게도 55년으로까지 연장되었다.

1982년, 갤로는 두번째 바이러스를 “HTLV-2”라 명명하면서 그의 HTLV식구들에 추가하였다. 그는 재차 이것을 잘 알려지지 않은 특수한 형태의 백혈병의 원인으로 끼워맞추려고 하였다. 이번엔 실패였다. 나중에 “에이즈 바이러스”로 변신한 뤽 몽타니에의 LAV를 1983년도에 갤로가 “도용”하였을 때 그는 아니나다를까 여기에 “HTLV-3”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에 앞서, 그는 처음에는 HTLV-1이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우긴 적이 있다. 달리 이야기하면, 그가 에이즈와 관련있다고 처음 주장했던 바이러스는 자신이 이전에 백혈병의 원인이라고 이미 주장했던 것이다. 에이즈는 백혈구 결핍을 의미하는 반면, 백혈병은 백혈구가 과잉상태로 되는 질병이다.

십여년이 흘러 갱신된 데이터와 “에이즈와의 전쟁”의 울부짖는 화염 이면의 진실을 목도한 이후, HIV의 에이즈 원인론에 대한 심각한 의문들은 국제적 과학전(科學戰)을 점화시켰다. 그것은 데이터와 권력, 인식의 전쟁이다. 이는 분노와 경멸, 극도의 감정싸움으로 특징된다.

오늘날까지 에이즈 산업-현재 CDC와 NIH를 훌쩍 넘어 그 이상으로 확대된 수천만달러 규모의 산업 – 은 HIV의 에이즈에 대한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두를 맹공한다. 이 기성체계는 비판론자들에게 “HIV부인론자(HIV Denialist)”라는 낙인을 찍었다 -  이 무시무시한 단어는 정말 뻔뻔한 오도로 이들을 유태인 대학살을 부정하는 사람들(Holocaust Denialist)과 나란히 놓고 난도질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비판론자의 수는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웹사이트에서, 그리고 전 세계를 아우르면서, 미국에서부터 남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이르기까지, 멕시코, 브라질, 인도, 러시아, 그리고 셀수없는 다른 나라들에 이르기까지 이 단체들의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확대된 “에이즈 전쟁”에 대한 책이며, 이 "에이즈 전쟁"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줄곧, 무엇보다도, 지식의 시대에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바를 왜 그리고 어떻게 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지식전(知識戰)이다.

HIV에 대한 정부의 초기의 공식적 가설은 분명 위태로웠다: 1980년대 후반까지 HIV양성판정은 즉각적인 사망 선고가 아니며, HIV양성인들의 생존은 가능성의 수준을 넘어 거의 확실하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러나 초기의 광란은 이 가설에 대해 하나 둘씩 연이어 부도나기 시작한 다음과 같은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수그러들지 않았다: HIV는 “이성간의 성교”에 의하여도 무작위로 전파될 수 있고; “AZT”만이 “생명을 구할” 수 있으며; 아프리카는 “사망으로 공동화”될 것이고; 칵테일 요법만이 HIV를 근절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들 말이다. 이 전염병에 대한 이러한 모든 통념들은 대부분 뒤안길 저편너머로 사라져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말이다.  

HIV-AIDS가설은 1984년 이후 각국의 언어로, “HIV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사망할 것이다.”라는 동일한 내용의 끔찍한 메시지를 들은 수백만의 영혼들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과학의 가설에 사로잡혔고 그들에게는 어떠한 탈출구도 없었다. ‘HIV는 에이즈를 초래하고 항체테스트에서 양성을 받은 사람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명제는 전 세계를 향해 공포된 새로운 법령이었다. 이것은 카네티가 이야기한 소위 “죽음을 타인에게로 몰아갈 필요”를 충족시키는 법령이었다. 중심에 “HIV테스트”를 모시고 있는 생명공학의 등장에서 비롯된, 새로운 광대무변의 질서라는 현대성의 탈을 쓴 채로 그리한 것이다. 1984년 이전에도 세계의 인구 중 일부가 그 나머지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이론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종족의 선을 긋거나 계층, 성적 성향 등 인류를 유형화하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것도 이토록 교묘하지는 않았다; 그 어느것도 이처럼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인간애의 탈을 쓰고 있지 않았고, 에이즈 논쟁에서 가장 즐겨 사용되는 “연민”이라는 단어를 쓰지도 않았다.

HIV-AIDS공포는, 1984년 봄 어느날, 너무나 자명하여 사람들이 잘 이야기하지 않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자유-우리 자신의 최후의 날을 가늠할 수 없는 인간적 한계-를 앗아갔다. “나는 그들을 열망하게 하려고 죽게 될 순간에 대하여 눈을 멀게 만들었다.”라고 자신의 능력을 뽐낸 프로메테우스의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이 자유는 인간에 대한 은총이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 인은 이것을 희망의 근원 그 자체와, 살아있다는 증거를 아우르는 “열망”의 성스러운 영역으로 이해하였다.

나는 음악잡지 SPIN의 젊은 기자로서, 매우 친근하고 다정다감한 리트로바이러스 학자 피터 듀스버그(Peter Duesberg)를 처음 인터뷰한 1987년 이후부터 HIV항체테스트 양성반응의 확정적 사형선고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해 왔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금껏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끝없는 인내로 설명해왔던 것처럼, 리트로바이러스인 HIV가 에이즈 또는 일체의 다른 것들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논박하는 과학논문을 왜 출판하였는지에 대하여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듀스버그의 스토리는 처크 오트레브(Chuck Ortleb)가 출판하였던, 지금은 폐간된 뉴욕 네이티브(New York Native)라는 신문에 이미 실린 바 있다. 폐간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AIDS행동주의자 단체 ACT UP에게 “무책임”한 AIDS보도라는 이유로 보이콧당했기 때문이다. 나는 1987년 가을,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의 가판대에 전시된 네이티브의 표지를 보고 충격받은 기억을 회상한다. 그 표지는 두 이미지로 나뉘어 있었다:한 쪽은 커다란 활자로 다수가 지지하는 로버트 갤로의 말, “HIV는 트럭에 치인 것처럼 비명횡사하게 할 것이다.”의 문구였고:다른 한쪽에는 그의 동료인 리트로바이러스학의 거장, 피터 듀스버그의 고독한 “그것은 무해하다. 내몸에 주입하더라도 상관없다.”라는 인용문이었다. 이는 네이티브(Native)의 스타 리포터, 존 로리센(John Lauritsen)이 인터뷰한 것이다. 이것은 지성적이고 철저하며, 아주 드라마틱한 인터뷰였다. 나는 듀스버그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회신을 부탁했다.

듀스버그는 오전 8시에 나에게 회신하였다. 그는 독일에서 전화를 걸었고 혹시 잠을 깨운 것은 아닌지 물어보았다. 나는 테이프 녹음기를 서둘러 챙긴 다음, 회신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20년 후에도 내가 이 문제에 관하여 여전히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는 이야기는 차마 못하겠다. 1988년 스핀(SPIN) 지(紙)에 듀스버그의 이단 및 기타 에이즈 스토리를 보도한 이후, 나는 NIH에 있는 모든 과학자들로부터 접근을 거절당했다. 그러나 듀스버그의 침착한 태도와 그의 HIV에 대한 견해의 신중한 설명은, 이후에 도래할 수많은 에이즈 스토리에 대한 유용한 길잡이가 되었다.

듀스버그의 첫 인터뷰의 출판에 이어, 나는 로버트 갤로 그 자신이 몸소 건 전화를 받았다. 듀스버그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겁을 주면서 아주 거칠게 이야기했다. “당신 바바라 월터스(Barbara Walters)와 같이 되고 싶으세요?[역자주: 바바라 월터스(Barbar Walters) - 여류 저널리스트, 미국 ABS evening news의 최초 여성 앵커로서 입지전적인 경력을 갖고 있는 유명 저널리스트임]” 그는 거의 고함을 치다시피했다. “그 위치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시죠? 사람들이 전부 틀렸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런 식으로 글쓰면 힘들텐데요. 당신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그래서는 안돼요.” 통화는 한 시간도 넘게 계속되었다. 나는 단지 듣기만 하였다. 그것은 이 스토리의 “이면”을 파헤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에 대한 나의 판단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단지 오랜 기간 친구 사이였던 갤로와 듀스버그, 이 두 과학자들에 대한 나의 평가에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갤로는 다혈질이었고, 신경질적이었으며, 논쟁적이었다. 듀스버그는 평온했고, 예의발랐으며, 위트가 넘쳤다. (갤로의 입장을 보여주기 위하여, 스핀은 다음 호에서 저널리스트 앤토니 리버시즈(Anthony Liversidge)의 갤로 인터뷰를 게재했다.)

고독한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꺽어버리려는, 듀스버그의 과학적 경력을 겨냥한 끊임없는 말살책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남았다. 그는 개인 독지가의 도움으로, 양질의 전자현미경을 방비하고 세포연구에 복귀할 수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과학의 패러다임은 한번 더 요동쳤다 – 암유전자의 시대에, 암의 이수체론이라 불리는 이론에 의해서이다. 그럼에도 그의 이 분야에서의 성공은 주류과학자들에 의하여 대부분 폐기되고 망각된 그의 기존의 에이즈에 대한 생각을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듀스버그의 경력에서 두 영역은 아직까지도 따로따로 생각되고 있다. 이 빛나는 역설은 명백한 의문을 초래하였다: 에이즈에 대하여 틀렸다고 생각된 과학자가 암에 대해서는 옳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책은 피터 듀스버그-HIV가 에이즈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악명 높은 과학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HIV가 작용한다고 추정되는 방식은 자주 논의되었다. HIV는 어떻게든 세포사멸을 야기한다고 주장되어 왔다.- 그것이 현존하지 않는 순간에도 말이다. – 원격조정으로 프로그램된 “세포자살” 메커니즘을 통해, HIV가 에이즈 테스트 키트를 제조하기 위하여 쓰인 실험실의 티세포를 죽이지 않는데도 인체 내의 티세포는 죽인다고 주장된다, 그것이 단지 티세포들 중 극히 일부 - 듀스버그가 주장하기를 0.1퍼센트의 평균수치 - 만 감염시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항체를 생성하기는 하지만, HIV는 침팬지를 병들게 하거나 죽이지 않는다. HIV의 교묘함에 관한 증명되지 않은 가설들은 저명한 과학잡지를 통하여 마치 유행성 독감처럼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대부분의 저널리스트들은 이러한 주장들에 대하여 유효하고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지 않는다. 에이즈 보도로 최고기자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들은 유일하게 보도가치 있는 에이즈에 대한 스토리는 NIH나 CDC, WHO와 같은 거대기관들의 요새로부터 나오는 정부 버전이라는 결의를 감행한 것처럼 보였다.

유기체가 감염성 질병의 원인인가 아니가를 판단하는 전통적 기준은 바로 “코흐의 법칙(Koch's postulates)”이라 알려져 있다. 이 법칙은 1) 유기체가 해당 질병의 모든 케이스에서 발견되어야 하고 2) 숙주로부터 분리되고 순수조직에서 배양될 수 있어야 하며 3) 민감한 숙주에 주입하였을 때 동일한 질병을 재현하여야 하고 4) 유기체가 감염된 숙주에 현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이한 주장이 존재하나, 듀스버그는 HIV가 코흐의 법칙을 충족시킨다는 사실이 결코 증명된 바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기검증된 과학논문들에 대한 철두철미한 분석을 통해 HIV나 HIV항체의 흔적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4000여건의 문서로 기록된 에이즈 사례들을 밝혀냈다. 이 수치는 정말 큰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례를 기술하려 할 경우 이를 방해하려는 기관들의 강압을 피해 갈 수 없고, 에이즈 사례들의 압도적 대다수는 공식적 과학 논문에 절대 기술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에이즈 환자들은 체내에 활동하는 HIV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바이러스가 항체에 의하여 무력화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바이러스성 질병에서 항체의 존재는 질병에 대한 면역을 의미한다. HIV에 대해서는 왜 예외가 인정되는지 현재까지 결코 입증된 바가 없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HIV는 엄청나게 난해한 방법을 통하여 잠복된 바이러스를 “재활성화(reactivate)”해서만 분리될 수 있을 뿐이다. HIV의 임상적 표지 중 하나인 바이럴 로드는 체내의 실재하고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항체에 의해 제압된 감염의 찌꺼기로 남은 RNA의 증폭된 단편들을 측정하는 것이다. HIV가설에 대한 또 다른 의문점은 HIV는 감염 이후 초기 몇 주간에 생화학적으로 가장 활동적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감염과 질병의 발현 사이의 잠복기가 비정상적으로 길다는 것이다. 해가 갈수록 연장되고 있는 이 잠복기는 HIV가설의 주창자들로 하여금 코흐의 3번째와 4번째 법칙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한다.

듀스버그와 갤로의 격돌에 관한 뉴욕 네이티브의 첫번째 커버스토리 이전에도, 당시 정부가 주도하는 이론에 대한 도전들이 있기는 하였으나 모호하고 희미할 뿐이었다. 당시 “PWAs”라고 명명된 에이즈 환자들[People With AIDS, 역자주: 마이클 칼렌이 고안해 낸 단어로 에이즈 환자들을 새로이 지칭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단어]에 대한 “희망”을 강조하고 주장하였던, 후기 행동주의자 마이클 칼렌(Michael Callen)과 같은 이들이 주도한 지하운동이 있었다. 당시 희망이란 단어는 완전히 악마스러운 것으로 되어버리지 못했고, 1987년 칼렌을 만난 직후 내 안에서 메아리쳤다. 당시의 “에이즈 행동주의자”운동은 거칠고, 기계적이고, 약제 중심의 광란이 되어버린 80년대 후반의 액트 업 행동주의에 저항했던 칼렌 덕분에 다면성, 심지어 정신적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중증 에이즈 진단에도 불구하고 20년간 생존했던 칼렌은 항상 희망이 장기생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유일의 요소라고 이야기해 왔다. 이는 HIV가 한번의 키스나 한번의 변기사용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고 이야기되던 때에, 사람들이 공포와 절망으로 발광하던 당시였다.

HIV-에이즈 모델은 기계적까지는 아니더라도 맹렬토록 환원주의적[역자주:환원주의 – 생명현상은 물리적, 화학적으로 모두 설명된다는 주장, 단순화 논리로의 의미로도 사용됨]이었다. 이것의 올가미는 새로이 등장하는 신기술을 포박했다. 이것은 섹스와 수치심, 죽음에 내재된 태고의 공포를 발굴해냈다. 이 올가미는 항체 테스트 -현재 모든 생물학적 의미와 특정성을 거의 모두 상실한 테스트- 에서 양성판정을 받은 모두를 사로잡았다. 이것은 당시에 확실한 사형선고로 이해되었고 죽음의 표지였다. 극한의 공포속에,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회적 낙인의 미로로 곧바로 질주했고, 자진하여 지금까지 인간에게 쓰인 약제 중 가장 독성이 강한  화학약품 – AZT를 처방받았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AZT를 조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살을 감행하거나 살인을 저질렀으며, 그들 자신을 파멸시키고, 그 끔찍한 예언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수많은 방법을 서슴지 않았다.      

이 책은 사형선고를 믿었던 사람들과 믿지 않았던 사람들 사이의 20년간의 전쟁을 담고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지식에 대한 전쟁 - “논박의 여지 없는 데이터” 그리고 “압도적 증거”라 불리던 것들의 실체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도록 한 사상, 가치, 정치, 금전, 권력, 기타의 모든 수단에 관한 전쟁이다.

이 전쟁의 잔해로부터, 공식적 가설에 대항하는 반대견해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대개 단 한번의 항체 테스트에 의하여 그 올가미 안에 사로잡힌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에이즈 전쟁은 완전히 다른 사실과 해석의 화물을 적재한 자매함(姉妹艦), 말하자면 평행선적 현실을 일찌감치 직시한 사람들에게서 공식적 가설의 교리를 따르고 신봉한 사람들을 가려내었다. 이것은 오직 세계가 “정보”로 넘쳐날 당시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곧 대중 매체는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교파에 대한 절대 권력을 손에 쥐었다. HIV가 에이즈의 단일하고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핵심적 캐터키즘[역자주: Catechism, 카톨릭에서의 교리문답]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이단으로 취급될 뿐 아니라 공개적 살인혐의로까지 확대되는 중대한 도덕적 “무책임”이 되었다. 의문의 제기는 공포를 걷어냈고, 혁명은 공포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여성 HIV양성인은 낙태를 강요받았고 임신을 감행했을 경우 혹독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피부를 적게 가질수록 HIV가 “침투”할 공간이 적어진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수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은 포경수술을 받기까지 했다.

나는 “진실”이 어지로운 세상을 화해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엷은 장막을 상기시키고자,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뫼르(Tomas Transtromer)의 1978년도 컬렉션 타이틀, “진실의 방벽(The Truth Barrier)”이라는 문구를 차용했다. 트란스트뢰뫼르가 자주 사용하는 “진실”이라는 단어는 “대자연” 그것과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많은 시에서 트란스트뢰뫼르는 우리가 “진실”을 잡으려 하고 소유하려 하고 구체화하려 할 때 그것이 얼마나 쉽게 훼손되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과학적 진실”은 궁극적으로 대자연의 비밀이지, 인간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표면으로 떠올라 세상과 맞닥뜨린다. 그는 시의 “서곡”에서 펜을 들기를: “두 가지 진실은 서로를 끌어당긴다.” 하나는 안으로부터, 다른 하나는 바깥으로부터, 우리는 그들이 만나는 곳에서 우리 자신을 직시할 기회를 갖게 된다. 사태를 눈치챈 자들은 절규한다. “멈춰! 네가 무엇이던 간에, 내가 모르면 그걸로 그만이야.”

우리가 “에이즈”라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산업적, 사회적 고성(高聲)의 이면에는, 인간의 손을 떠났다고 할 수 있는 대자연의 또다른 비밀이 존재한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바로 여기, 이 과학의 서사적 격돌을 통하여 무언가 대단히 치명적인 것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HIV가 에이즈를 초래하는가?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 – 나는 이에 대해 알 수 있을 만한 지식을 갖추지 못했다. 내가 해 왔던 이야기, 그리고 이 책이 탐구하는 바는 과학에 대한 나의 개인적 믿음이 아니며(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예’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아니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의 서사적 휴먼 드라마이다. 이것은 “이미 일어났던”일들의 일부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기사거리가 아니다. – 이는 다분히 문학적인 면을 갖고 있다. 나는 한 개인으로서 이에 대한 결말이 몹시 궁금하다.

아인슈타인(Einstein)이 “신성하다”라고 표현한 과학적 의문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는 매우 좋은 소식이다. 그것은 공포에 이끌리지 않은 정신회로 내부에서, 지배적인 도그마(Dogma)와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조직적이고 광적인 박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다. 진실이 어떻게 밝혀지던 간에, 그것은 안으로부터 그리고 바깥으로부터 서로를 끌어당기고 우리를 통해 움직이고, 우리 모두와 얽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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