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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2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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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라는 마법의 탄환과 이라크전
에이즈라는 마법의 탄환과 이라크전
에이즈라는 마법의 탄환과 이라크전
- 이라크 파병을 결사 반대하며!
10월 19일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겠다는 기습 발표를 하였다. 한국의 젊은이에게 유엔 평화유지군 복장이라는 군복을 입혀서 ‘석유 쟁탈’이라는 추악한 전쟁에 보내겠다는 결정이다. 역시 노짱다운 발상이다. 이처럼 인간은 미치지 않고도 미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치적 동물이다. 노무현은 혹시 이런 공상을 했을 수 있다. ‘산다는 게 전쟁인데, 이 전쟁 같은 사회에서 태어나 20년 이상 살아 온 팔팔한 청년이면 이라크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올 것이다.’는!
있을 법한 노무현의 공상 중에서 백미를 손꼽으라면, ‘삶이 곧 전쟁’이라는 것이다. 공자도 고개를 끄덕거릴 이 명제를 더 살펴보자. 전쟁이 어느 집단이나 국가가 군사력 등 각종 수단을 사용하여 상대의 의지를 꺾는 행위라고 할 때 우리는 삶 속에서 굉장히 다양한 전쟁을 보고 또 참여한다.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투쟁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전쟁이며, 노동자들은 자살이라는 배수진을 치지 않고는 자본가의 막강하고 야만적인 물리력에 제대로 저항도 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이번에 자살한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 지회장은 노동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다.
이렇게 명백하게 드러난 전쟁말고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두렵고 공포스러운 사탄의 언어와 독약을 사용하는 전쟁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에이즈 전쟁이다. 에이즈 전쟁은 합법적인 감시체제와 함께 너무나 비논리적이지만 과학적 껍질을 뒤집어 쓴, 그래서 왠만큼 현명해지지 않으면 누구나 정신을 잃고 어리석어지는 마법의 탄환을 사용한다.
탄환의 강도는 맞아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데, 그 어마어마한 충격성 때문에 하루 하루 살기가 너무나 어려워져서 100명이면 100명 모두 자살을 염두에 둘 정도이니까, 더 말 안해도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에이즈 전쟁에서 사용되는 마법의 탄환이 도대체 어떻게 구성될까? 궁금한 신참 포비아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간략하게라도 알아보고 넘어가자.
최근 한나라당의 의원이 국회 발언을 통해 유시민 의원이 중국의 북한 대사관에 가서 이회창 아버지와 관련된 자료를 받아왔다고 폭로했다. 이 폭로의 의도는 유시민 의원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좌익 간첩이라는 색깔론이었다.
이에 유시민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말이 맞거나, 틀리면 두 사람 중 한 명은 의원직을 사퇴하자.” 유시민 의원은 단 한 번도 중국에 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님 말고’식의, ‘카더라’식의 논리! 이것이 바로 에이즈 탄환의 비밀이다.
보기를 들자면 이렇다. 매직 존슨은 HIV 양성 판정을 받은 이후 다시 HIV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에이즈 과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매직 존슨의 몸 속 어딘가에 HIV가 숨어 있을 것이다.” 대충이라도 좋으니까, 몸 속 어디쯤에 숨어 있겠냐고 물어보면 이들은 얼굴이 굳어져서 답변을 회피한다. 왜냐하면, 그 이상의 답변은 누가 들어도 형이상학적 철학 수준이니까.
하지만 절대로 매직 존슨의 HIV 음성을 인정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에이즈 탄환의 신비가 무너져 어쩌면 사회체제 전반이 무너지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이들은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안다. 시민들이 빵을 달라면서 봉기하자 루이의 마누라였던 마리 앙뜨와네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마리도 루이처럼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하지만 이게 바로 오늘날 에이즈 과학자들이 두려워하는 미래의 모습이다.
에이즈 전쟁의 실상이 이처럼 심각한 것인지 이제 처음 알았습니까?
보기를 더 들어서 요즘 통합 신당은 한나라당의 ‘카더라’ 폭로 공세에 아예 질려버렸다. ‘모 의원이 재계로부터 수백억을 받았다고 누가 카더라.’ 등등. 그래서 이제는 제발 누가 카더라고 주장하지 말고, 정식 절차를 밟아 검찰에 고발하라고 역공을 펼치고 있는 게 요즘 국회(소위 개혁한다는 자들)의 실정이다.
에이즈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우리 모임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에이즈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적 진실과 사랑의 정신만으로도 살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은 한결같이 “요즘 치료제가 좋아져서 약만 먹어도 건강하게 살 수 있어요.”라는 레퍼토리를 달고 산다. ‘앗싸, 호랑나비’, 이 노래 하나만 허구한날 불러도 먹고 살 수 있는 가수가 있는 세상인 걸 보면, 뭘 해서 밥 먹고 살든 레퍼토리 하나 정도는 누구나 갖고 있어야 되나 보다.
그런데 호랑나비가 나는 건 입증이 된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날지 못하는 호랑나비를 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호랑나비야, 날아봐. 호랑나비야, 날아봐.”하면서 노래를 불러도 애교로 봐준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이들이 치료제라고 말하는 AZT 등 항HIV 약을 먹은 사람들이 약을 먹고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보여준 사례가 없다. 만약의 경우, 단 한 건이라도 있다면 이 세상은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될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아프리카 제 1의 사망원인인 말라리아 치료제로 AZT를 사용하면 되고, 지금 이 순간도 전세계 인구의 1/3을 죽어가게 만드는 혹독한 굶주림을 AZT로 해결할 수 있고, 절대로 치료제가 나올 것 같지 않기에 수많은 여성들을 절망에 밀어넣는 자궁경부암을 AZT로 치료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외에 지구상의 모든 인구를 괴롭히는 질병의 대부분이 AZT로 치료 가능하다. 결핵 등등.
아직도 이해가 안 됩니까?
우리가 에이즈라고 부르는 증후군은 말라리아, 자궁경부암, 결핵 등 각종 질병들을 적절히 섞은 종합선물 세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에이즈 환자라고 부르고 있으며, 따라서 약이 좋아져서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이 모든 질병에 정확히 맞는 만병통치약은 단 하나의 치료제, 즉 항HIV 약들로 통일된다. 실제로 일선 병원에서는 치질에 걸린 HIV 양성인에게도 ‘합병증’이라면서 AZT를 권유한다. 이제 약국에서 다양한 약을 선택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무조건 AZT니까. 울랄라. 행복해라. AZT 한 알만 주세요.
그러나 불행히도 이 지점에서 우리는 ‘카더라’ 논법의 고루함을 발견하게 된다. 일단, 지난해 내가 잘 못하는 영어실력을 인내심과 담배로 보충하면서, 인터넷 곳곳을 뒤져가며 매직 존슨의 항HIV 약 복용 사례를 찾아냈던 당시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매직 존슨은 아주 다양한 요법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제약회사의 말을 순순히 들어 AZT를 복용했으나, 곧 그 엄청난 덩치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6개월 간 AZT를 복용했던 우리 모임 회원의 건강 상태로 대신 묘사하자면, 온 몸에 빨간 두드러기가 발생한 뒤 악성 빈혈이 찾아와 병원에 실려가서 수혈을 받아야 했으며, 어느날 뼈가 괴사한 것을 발견하였고, 나아가 결핵이 발생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약을 먹기 전에는 아주 건강했다”는데.
그래서 매직 존슨은 약을 끊은 뒤 한때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던, 하지만 고가의 산소요법을 이용하기도 했다. 물론, 건강보조제를 구입하는데 엄청난 돈을 썼다. 하지만 그가 신뢰를 갖고 마지막까지 선택한 것은 식이요법이었다.
어쨌든, 매직 존슨은 자신이 AZT 등 항HIV 약을 먹고 건강하게 살았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며, 미국에서 활동하는 반체제 에이즈 인권운동가인 크리스틴 매기어도 “자신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버컬리대의 분자 생물학과 교수인 듀스버그 박사 역시 “만일 매직 존슨이 죽는다면 그건 AZT 때문이다.”고 과학적인 예언을 한 바 있다.
내가 이 사실을 글로 썼더니, 우리 모임을 방문했던 포비아 한 분이 이 글을 읽은 뒤 에이즈예방 단체 게시판에서 “매직 존슨은 약을 안 먹고도 HIV 음성을 받았는데, 이 걸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요?”라고 물었었다. 상담자의 답변은 단연 압권이었다. “아니다. 그는 제약회사에서 개발한 약을 먹었다고 카더라.” 카더라!! 우하하!!
제약회사에 고용된 과학자나 의사의 말을 듣고 이와 같이 답변한 상담원의 웃을 수 없는 유머. 여기서도 우리는 마법의 탄환을 사용하는 자들이 진정한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앞서 써여진 AZT의 환상적인 세계관처럼 항HIV 약을 먹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건강해져야 하고, 제약회사는 노벨상을 받아야 마땅한데 희한하게도 단 한 명도 건강해진 사례가 없으며, 반체제 에이즈 모임의 이같은 신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제약회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민주주의 사회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1973년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쿠데타로 정복시킨 미국이 제일 처음 한 일은 민중건강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제약회사와 투쟁한 활동가를 모조리 사형시킨 것이었다. 그것도 단, 일주일만에!
실제로 공안기관은 지금 이 순간도 이 땅에 존재하는 인권단체와 활동하는 사람들을 불법 감청하고 있으며, 얼마 전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팩스 신문에서도 이 사실이 폭로되었다. 우리 모임이 예외라면 섭섭할 것 같다. 하긴 당장 문제 삼을 건덕지도 없지만.
여하튼!
한국 에이즈 재평가를 위한 인권모임은 그 어떤 전쟁에도 반대한다. 우리는 에이즈 전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시체제’의 틀 속에서 고통받았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으며, 약을 먹고 죽어갔던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뼈마디마다 새기고 있다. 전쟁은 비인간적이며, 특히 총뿌리를 갖다대는 행위는 죄악 중의 죄악이다.
노무현 정권이 국익이라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로 침략 행위를 미화한다고 해도 우리가 침략국의 국민이 되는 부끄러운 사실은 숨길 수 없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기도 바쁜 세상에 생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전투병을 파병한다는 건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이해하지 못할 범죄적 행위라는 건 분명하다. 즉, 신은 누구나 용서한다지만, 노무현 정권까지 용서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에이즈 전쟁의 희생자인 HIV 양성인과 에이즈 공포증자는 당연히 전쟁을 반대해야 한다. 두려움과 공포, 정말 신물나지 않은가! 그런데 이라크 민중이 겪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는 우리가 벗어던지고자 하는 공포와 다를 바 없다. 둘다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며, 실존에 대한 갈구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라크 파병을 저지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내년쯤에는 한국군이 겨눈 총뿌리로 인해 이라크 민중이 공포심을 갖는다는 것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평화! 이 두 가지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될 때 진정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전쟁을 반대하는 행동이 그것이다.
삶의 목표는 행동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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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를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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