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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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31(금)
에이즈 식민지 국가의 HIV 양성인 자살  

에이즈 식민지 국가에서 발생하는 HIV 양성인의 자살
-HIV 양성인에게 말한다.

살아 생전 김남주 시인은 “식민지 사회에서는 단 한 명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에이즈 식민지인 남한에서 HIV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는 의사이거나 부자임이 틀림없다. 의사나 부자가 HIV 양성 판정을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신기하게도 시리.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단순히 족쇄에 억압당해 있다는 뜻이 아니다. 형식적이나마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는 족쇄, 채찍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윤리성’이라는 마법의 씨앗을 뿌려서, 자기 억압이나 자기 검열을 유도하면 벌거벗은 임금님의 나라는 최소한 현상유지는 된다.

그런데 윤리성이란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규범, 즉 절대 벗어나서는 안 될 ‘선’을 의미한다. 이 선은 거의 자주 성 윤리를 가로 지르고 있으며, 윤리성이 ‘성’에 집착하는 이유는 성이야말로 가장 쉽고 만만한 하지만 도깨비 방망이처럼 휘두를 수 있는 인간의 약점(?)이기 때문이다. 이 도깨비 방망이가 또 사람을 죽였다. 지난 30일 자살한 HIV 양성인 K씨가 희생자!

이 사건을 취재한 신문보도에 따르면, K씨는 4년전 일본에서 에이즈에 감염돼 서초구 보건소의 특별관리를 받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지난 6월에도 한 차례 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어찌 두 번만에 자살에 성공했을까. 매일 밤 자신을 죽였을 것이며, 낮과 밤 내내 자살만을 생각했을 텐데.

이 기사가 보도되기 하루 전인 29일에는 “28일 오후 2시30분께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 8병동 응급의료센터 9층에 입원중이던 에이즈 환자 장모(41.광주 광산구)씨가 병원 관계자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무단이탈했다.”는 소식이 전국에 알려졌다. 이 기사의 제목은 <에이즈 환자 병원에서 탈출>이었는데, 죄수와 HIV 양성인을 동일한 선상에서 취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모씨가 병원을 나간 이유는 “죽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HIV 양성은 자살과 쌍둥이 형제

WHO(세계보건기구)와 IASP(세계자살방지협회)에 따르면 자살은 교통사고와 각종 재난, 질병에 이어 13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사인에 속한다. 하지만 연령층으로 따지면 15-44세 사이에서는 4번째에 해당한다. 심지어 중국에서 20대 청년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죽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국 에이즈 재평가를 위한 인권모임의 회원 500여 명은 모두 1-2번 정도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사람일 것이고, 지난 6개월 동안 홈페이지를 방문한 40만 명은 모두 자살 이외에 에이즈 공포에서 벗어날 방법이 달리 없었던 사람이었을 테니 오죽할까.

그런데 남한만이 에이즈 지옥의 전부는 아니다. 걸핏하면 에이즈 지옥의 단골 메뉴로 입방아에 오르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도 자살의 천국이다. 궁금한 사람들 많을 것이다. 왜 남아공이 자살자로 넘쳐나게 되었는지. 남아공의 대통령인 음베키 대통령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자살의 요인을 일간지에 보도된 기사를 인용하여 분석해보자.

8월 5일자 기사 : 참석자들은 ꡒHIV 감염자가 약 5백만명에 이르는 남아공에서 하루 사망자가 600명에 이르러 에이즈로 죽는 사람이 새로 걸리는 사람보다 더 많은 국면으로 이행했다ꡓ고 밝혔다.

8월 8일자 기사 : 남아공의 에이즈 감염자 수는 약 450만명으로 세계 최다를 기록하고, 하루 평균 약 900명이 에이즈로 죽어가고 있다.

9월 12일자 기사 : BBC방송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시간당 1명꼴로 자살이 발생하고 있고 자살미수는 20여건에 달한다. 이 나라에서 자살은 3번째의 사인에 속한다.
자살수단은 총기가 으뜸을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이 극약 복용이다.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는 인간관계의 문제와 가정불화, 빚, 스트레스, 학업문제, 우울증 등이 꼽히고 있다. 폭력과 범죄, 사회경제상황과 인권유린이 스트레스의 요인이다.
남아공의 자살자는 15-19세 연령층에서 집중 발생하고 있다. 성폭행을 당한 어린이,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것도 특징이다.

이 기사에서 남아공의 사망원인을 말한 사람들은 9월 12일자 기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아공의 더반에서 열린 세계에이즈과학자 대회 참석자 혹은 세계 금연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8월 5일자 기사와 8월 8일자 기사의 내용이 모두 다르다는 점에 있다.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8월 5일 : HIV 양성인 약 500만 명, 하루 평균 사망자 600명
8월 8일 : HIV 양성인 약 450만 명, 하루 평균 사망자 900명

통계학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단 3일만에 HIV 양성인이 무려 50만명이나 줄어들고, 대신 사망자는 300명이나 늘어나는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통계 발표는 두 가지 사실을 전제한다.

1. 남아공의 에이즈 상황을 과장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2. 통계를 기억하는 에이즈 예방 활동가의 IQ가 대단히 낮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HIV 양성인이 430만명이라고 발표되면, 에이즈 예방 활동가들은 ‘약 450만명’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 주장을 들은 어떤 사람은 450을 반올림해서 ‘약 500만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억력이 나쁜 자에게는 9와 6이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혹은 대중이 바보라고 생각한다면 이 정도 속임수는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통계를 눈여겨 보는 독자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1과 2의 사실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이 정도 실수를 짓밟는 것은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딴지일보 수준일 뿐이다. 인권모임은 남아공 에이즈 실상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1. 남아공 국민 중 HIV 검사를 받아서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는가?

2. 아프리카에서는 엘리자 검사 1회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도 HIV 양성이라고 규정하는데, 신뢰할 수 없는 이 기준을 적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3. 남아공에서 사망한 사람, 즉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또는 자살이나 질병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모두 에이즈 사망으로 집계하고 있는데, 이러한 통계에 정당한 기준이 있는가?


에이즈 식민지인 남아공의 진실

남아공의 인구는 1999년 현재 4342만6000명이다. 국민총생산은 2,843달러이며, 산업재해율은 세계 1위, 성폭행 발생율도 세계 1위다. 농업 자급자족율은 5%에 불과하며, 인구의 대부분이 상수도 시설도 없는 움막 같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앞서 국민총생산이 약 3천달러에 달한다고 했는데, 왜 거지같이 사냐고 되묻는 어리석은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빈익빈부익부 현상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위험을 감수하며 광산에서 일해도, 이들의 노동력은 모두 백인 자본가에게 착취될 뿐 겨우 생존할 수 있을 정도로 기아 임금만 제공되는 게 남아공의 실상이다. 그래서 남아공에서 사망률 3위는 자살인 것이다.

자, 그렇다면 남아공의 역사에 대해서도 잠깐 알아보자.

남아공은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동양무역의 보급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케이프타운에 상륙한 뒤 네덜란드와 프랑스, 독일의 신교도가 망명한 나라다. 이들 서구인들은 남아공의 원주민 토지를 약탈했으며, 나아가 칼뱅주의에 의한 노예 소유주의자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예이길 거부한 원주민들을 집단 학살하였다.

18세기 후반에는 네덜란드를 물리친 영국이 남아공을 식민지로 만들었으며, 19세기 중엽부터 다이아몬드 부광이 발견되자 제국주의자 간에 전쟁이 발발, 이를 보어 전쟁이라고 한다. 비폭력주의자 간디가 최초로 자원해서 참전했던 그 유명한 전쟁이다. 이때 백인 제국주의자로부터 생존권을 요구한 줄루족과 영국이 큰 싸움을 벌였는데, 휴머니스트 간디는 영국의 영광을 위해 줄루족을 학살하는데 동참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아공의 백인 지배계급들은 1950년 인종등록법을 제정하여 주민을 인종별로 구분하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이윽고 1959년에는 반투 자치촉진법으로 흑인들의 남아공 국적을 박탈했다. 게다가 통행법이란 걸 만들어 흑인들을 감시했는데, 이 법안에 반대한 흑인 시위대는 모두 학살당했다. 1960년의 샤프빌 학살에서는 약 2만 명의 흑인이 살해되었다.

이제서야 우리는, 적어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독자들은 처음으로 남아공의 역사와 경제, 정치, 사회 실상을 접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실상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남아공은 1652년 이래 서구의 국제 무역 및 정치의 소용돌이에서 한 시간도 벗어나본 적이 없는 나라인데, 17세기때나 21세기인 지금에서나 가난한 흑인만 희생자일 뿐 어떤 이유로 백인들은 에이즈로부터 무사한가?

2. 남아공은 20세기나 21세기인 지금이나 성폭행율은 언제나 세계 1위였는데, 왜 지금에 와서 성폭행이 에이즈 전파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평가하는가?

3. 남아공의 자살율은 흑인이 정부를 수립한 최근 몇 년 사이에 주춤했을 뿐 백인이 지배한 수백년 간 굉장히 높은 수치였으며, 흑인들의 주된 사망 원인은 영양실조에 기초한 질병, 살해, 자살, 산업재해가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왜 이제야 이 모든 것을 에이즈라고 부르고 있는 건가?

앞서 우리는 에이즈 예방 활동가들이 주장하는 남아공 하루 사망률을 보았다. 그리고 9월 12일자 기사에서 시간당 한 명 꼴로 자살하고 있는데, 15세에서 19세 사이 연령층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하루 6백명이 죽든 9백명이 죽든 이 중에서 최소한 24명은 자살이란 걸 알 수 있다.

자살도 에이즈 사망인가? CDC(미국 질병 통제센터)는 HIV가 CD4를 공격하고 있으며 그 결과 CD4의 왕성한 활동을 피해 체내에 은닉 중이던 자살 바이러스 혹은 유전자가 다시 활동을 재개하여 HIV 양성인을 자살에 이르게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에이즈 과학자들이란 영양실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있다고 주장하는 해괴한 사람들이 아닌가.

또한 9월 12일 기사는 청소년층이 자살하는 이유가 “인간관계의 문제와 가정불화, 빚, 스트레스, 학업문제, 우울증 등이 꼽히고 있다. 폭력과 범죄, 사회경제 상황과 인권유린이 스트레스의 요인이다.”고 진단한다. 중국에서 20대 청년층의 자살율이 그렇게 높은 이유 역시 남아공과 다를 바 없다. 중국은 시장경제의 물결 속에서 실업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으며, 시골에서 상경한 젊은 노동자들은 월급 없이 단지 밥만 먹여줘도 하루 12시간 노동을 감내해야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봉착해 있다.

그러한 바 다시 질문을 던진다.

1. HIV 음성인 사람도 남아공에서 자살하면 에이즈 사망이고, 중국에서 자살하면 그냥 ‘자살’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2. HIV 양성인 사람이 한국에서 자살하면 에이즈 사망이고,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 비교적 부유한 북유럽 국가에서 자살하면 그냥 ‘자살’로 보는 이유는 왠 말인가?

3. 한국 에이즈 재평가를 위한 인권모임 회원이라면 전부 다 알 듯이, 아프리카에서는 HIV 검사인 엘리자 검사 1회 비용이 10달러에 달한다면서 HIV 검사 없이 다만 ‘임상적 정의’로 ‘너 어디 아프냐? 그럼, 에이즈야.’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CDC의 규정, HIV 음성일 지라도 CDC 수가 200 이하인 자는 에이즈 환자로 본다는 이상한 규정을 잣대로 사용해도 아프리카 대륙 사람의 90% 이상이 에이즈 환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HIV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이 음성인 사람보다 CD4 수치가 높은 것은 널리 알려져 있고, 우리 모임의 HIV 양성인들 평균 CD4 수치는 500 이상이다. HIV 양성 판정을 받은지 10년이 된 사람의 CD4 수치가 1,000이라면 달리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게다가 아프리카에서는 CD4 검사도 하지 않는데 아무 근거 없이 에이즈 환자로 규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4. CDC에서는 에이즈 사망을 ‘말라리아, 결핵’ 등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세계적인 에이즈 지역으로 간주되는 아프리카 대륙, 동남 아시아 등은 몇 백년 전부터 말라리아, 결핵의 온상지였다. 제약회사에서 말라리아 치료제로 사용하는 [키니네]가 원래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말라리아 치료제로 사용하던 키니네라는 나무의 화학적 분자식을 찾아내어 개발된 것이란 걸 안다면 이들 질병이 얼마나 오랫동안 원주민들을 괴롭혔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문제는 말라리아나 결핵이 감기와 같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구에서도 19세기에서 20세기 초만 해도 이들 질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다. 그러나 상수도관의 설치, 영양상태 호전에 힘 입어 지금은 더 이상 말라리아 환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CDC에서 해야 할 일은 아프리카 대륙 사람들의 보건 환경 및 위생의 현대화를 서두르고,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이 없도록 충분한 식량을 제공하는 일이 첫째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을 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무관심한 이유를 에이즈 예방 활동가들이 대신 설명해야 할 것이다.


HIV 양성인의 자살을 조명해야 하는 이유

한국에는 순수하게 ‘에이즈 예방 활동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없다. 외국에서 활동 중인 에이즈 예방 활동가의 모습을 본다면, 이들은 진정으로 선량한 의도에서 에이즈 예방을 위해 무급으로 자원봉사하거나, HIV 양성인의 인권 향상을 위해 정부와 제약회사에 맞서 투쟁하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월급을 받고 고용된 사람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중 단 한 명도 HIV 양성인의 인권 향상을 위해 대정부 투쟁이나 제약회사에 맞서 투쟁을 한 적이 없다. 단지, 에이즈 재평가 조직만이 이 일을 도맡아 해왔을 뿐이다.

우리는 이번에 발생한 HIV 양성인의 자살 사건을 접하고 큰 충격과 비참한 감정을 감출 수 없다. 그의 죽음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져가고, 3개월마다 HIV 양성인의 사망률을 집계하여 발표하는 국립보건원 눈에는 또 한 명의 ‘에이즈 사망’으로 비춰질 뿐이다. 에이즈 예방 단체에서는 이 허구의 통계를 제시하며 HIV 양성인에게 약을 먹으라고 권유할 것이며, 숱한 에이즈 공포증자가 새로 나타나게 될 게 분명하다.

이 시점에서 그의 자살을 과학과 인권의 시각에서 새로 조명하며, 삶의 존엄성을 되살려주는 것은 순전히 우리 모임의 몫이다. 한 명의 HIV 양성인이 자살할 때마다 그의 죽음 뒤에는 자살 미수로 그친 다른 열 명의 HIV 양성인이 존재하고 있으며, 자살에 성공했다고 할 지라도 평범한 교통사고로 알려지게 될 죽음의 진실을 환기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의 자살이 비단 한국에서만 빚어지는 게 아니라, 에이즈 식민지 국가 어디에서나 빈번하는 새롭지 않은 비극이란 점도 알 필요가 있다. 남아공처럼.


HIV 양성인에게 부탁한다.

자살을 권리로 인정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삶은 포기할 수 없는 고귀한 그 어떤 것이다. 또한 정말로 힘들고 지쳤을 땐 그대의 영혼이 육체를 포기할 것이다. 자살이 아니라, 편안한 휴식과 함께 삶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위하여.

우리는 배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공부할 과목은 우리의 가슴과 감정이다. 가슴으로 사랑하고, 감정을 억제하여 뜻한 바 있는 희망을 실현하는 것이 삶이며,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우리가 가진 많은 능력들이 무의미하다.

바로 이것이다. 태어날 때가 되어서 태어난 것이며, HIV 양성 반응을 보일 때가 되어서 HIV 양성 반응을 보인 것이다. ‘때’는 언제나 변화를 가리키며, 변화해야 할 시점이 다가왔음을 말해준다. 기존의 낡은 관념과 시각으로 새로운 세상을 살기란 불가능하다. 이것이 자살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사회에서 HIV 양성인의 행동을 아무리 크게 제약하고, 억압한다고 할 지라도, 그것은 인간 본연의 마음가짐인 사랑과 희망을 이루는데 훨씬 도움이 되는 도구이기도 하다. HIV 양성인이 새로운 마음을 가졌을 때 참된 자아는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아무도 HIV 양성인을 죽이지 못한다. HIV 양성인을 죽이는 건 HIV 양성인 그 자신 뿐이다. 에이즈는 없다. 이 과학적 사실은 절망에 잡혀있고, 불안에 떨고 있는 당신이 고통의 장막을 찢고 인생의 목적을 더욱 명쾌하게 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렇다. 어느 누구도 당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박탈당한 자유의 일부분을 채워줄 수 없다. 물은 목마른 사람이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삶을 초월할 줄 알아야 하며, 이 초월적인 자아를 체험하는 것이 우리 삶의 본분일 수 있다. 어머니 자궁에서 산도를 통해 세상에 나올 때 우리는 이미 숨 막혀 죽을 뻔한 경험을 했으며, 이번이 숨 막힐 정도의 비애감과 서러움을 느끼는 두 번째 단계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는 건 시간이 좀 지나면 알겠지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그 동안 갑갑할 뿐이다.

그렇기에 자살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의 HIV 양성인인 크리스티 매기어는 에이즈의 진실과 대안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고 있으며, 그녀에겐 행동만이 삶이며 최선의 선택이다. 즉, HIV 양성인에게는 두 가지 중요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개인에 파묻혀 조용히 살 것인가 아니면 인권 향상을 위해 행동할 것인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신은 인권이 인간 본연의 심성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내면에 귀 기울여서 듣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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