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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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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대통령 암살 의혹
케네디 대통령 암살 장면을 담은 필름과 관련문서 일부는 1970년대 공개됐습니다.
케네디 암살이 일어난후 미국정부는 워렌대법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워렌위원회를 통해 케네디 암살사건을 1964년부터 1년간 조사하게 합니다. 워렌위원회는 1년간의 조사끝에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짓는 워렌보고서를 미국정부에 보고하게 됩니다.
그러나 워렌위원회는 처음부터 리하비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라는 전제하에 짜맞추기식 조사를 했다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당시 퍼레이드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증인들의 주장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많이 논란되었던 케네디 대통령이 뒤에서 날아온 총알에 머리를 맞고 사망한 것이 아닌 뒤와 앞쪽에서 날아온 총알에 사망한 것이고 총알도 워렌위원회가 인정한 3발이 아닌 5,6발정도 였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마탄론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탄론이란 워렌위원회의 주장대로 3발의 총알이 발사되었다는 가정하에 첫발은 빗맞아서 티그라는 사람을 부상시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케네디 대통령의 목을 관통합니다. 마지막 총알은 케네디 대통령의 머리에 맞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두번째 총알로 케네디의 목을 관통한 총알은 케네디의 목과 손에 부상을 입힌후 앞좌석에 잊는 테사스 주지사의 몸에 박혔다는 겁니다. 소총탄 한발이 케네디와 텍사스 주지사의 몸 일곱군데에 상처를 냈다는 것이죠... 군대를 갖다오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그말을 밎을지 몰라도 군대에 가서 사격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그말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수 있죠... 총알 한발이 한사람도 아닌 두사람에게 일곱군데의 상처를 낼수 있다는 것은 매우 믿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당시 언론을 통제하고 있던 미국정부는 워렌보고서의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당시 케네디 암살장면을 찍은 필름도 나중에 발견되는데 제프루더라는 사람이 8mm소형카메라로 찍은 필름에는 케네디 대통령이 앞에서 날아온 총알에 목을 맞아 두손으로 목을 감는 장면과 뒤에서 날아온 총알이 케네디의 머리를 관통하면서 뇌가 쏟아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케네디의 시신은 베네스다라고 하는 육군병원으로 옮겨지면서 검시를 하게되는데 당시 시체부검을 하는중에 군에서 나온 사람들이 검시를 감독 하였으며 나중에 케네디 대통령의 뇌가 사라지는 사건까지 일어납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뇌는 사망원인에 대한 매우 중요한 부분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의문점이 많은 사건을 뉴올리언스의 지방검사였던 짐 개리슨이라는 사람이 1968년 케네디 암살사건을 조사하게 됩니다. 당시 케네디 암살사건과 관련된 사람중에 뉴올리안스의 유명인사였던 클레이 쇼(본명:클레이 버틀란드)라는 사람을 기소하면서 시작된 이재판에서 짐 개리슨 검사는 케네디 암살은 리하비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 아닌 케네디의 정책노선에 반대한 미국 군부와 남부의 이익집단이 만들어낸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주장합니다. 재판과정에서 라이프사에 있던 제프루더 필름을 재판과정에서 공개하면서 단독범행이 될수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2,3개조가 당시 암살현장의 앞쪽 담장과 뒤쪽 건물에 배치되어서 교차사격을 하였으면 총 7발정도가 발사되었다고 합니다. 클레이 쇼는 CIA요원으로 이들의 암살 작업을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재판은 클레이 쇼의 무죄로 케네디 암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재판은 끝나게 됩니다. 짐 개리슨은 재판에서도 주장했듯이 암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미국정부가 워렌보고서와 케네디 암살관련 문서에 대해 2029년까지 비밀로 분류한 것을 지금 당장 공개하라고 했지만 공개될수 없었습니다.
짐개리슨의 재판의 영향으로 미국국민들은 케네디 암살이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범이 아닐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케네디 암살사건은 1974년 하원 암살진상 조사위원회가 다시 조사하게 되지만 이들도 진실을 밝히지 못한채 케네디 암살은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범이 아닐수도 있다라고 하면서 케네디 관련 비밀문서를 공개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위원회의 조사도 끝나게 됩니다. 당시 조사위원회는 케네디 암살과 관련된 비밀문서의 일부를 볼 수 있었지만 문서의 대부분은 지워지거나 중요단어는 알아볼 수 없는 훼손된 문서를 보게 됩니다.
케네디 암살사건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1991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JFK'에서 케네디 암살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후 부터였습니다. 그이전에 케네디 암살과 관련된 영화는 거의 제작될수 없었습니다. 헐리우드와 군산복합체의 밀월관계에 의해 케네디 암살 사건은 분명 미스테리임에도 영화속에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케네디 암살사건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은 있어도 정면으로 다룬 영화는 없었습니다.
1991년 영화'JFK'가 개봉되자 미국은 다시 음모론에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는 미국정부의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해 케네디가 암살되었다고하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면서 미국국민의 60%가 이 음모론을 신뢰한다고 여론조사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미국정부도 케네디 암살과 관련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국민들의 압박에 케네디 관련 문서를 일부 공개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기도 했지만 비밀문서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관련 문서는 지금 현재 미국정부가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관하고 있고 2029년 공개라고 돼 있습니다. 2005년 공개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마, 일부파일에 대한 공개정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비밀문서에도 등급이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는 그대로 둔채 일부 문서만 공개하는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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