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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바라 (bompt@jinbo.net)
2002/7/24(수) 04:01 (MSIE5.0,Windows98,DigExt) 211.49.136.220 800x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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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추상에 대한 빈곤
"문명인일 수록 추상을 이해하는 인식능력이 높다"
어느 박식한 대학 교수가 한 말입니다.
하지만 교수의 이 말이 조금이라도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문명인의 관점에서 보건대,
비문명인일 수록 추상을 이해하는 인식능력이
오히려 뛰어나다는 건 남겨진 고대 문명을 통해 반증할 수 있습니다.
점점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혈거인이 동굴에 새긴 그림들은 비교하건대,
현대미술의 일반적인 추상화보다 휠씬 훌륭한 미적 가치를 담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미술은 거짓말이다"라는 슬로건이
현대미술에 대한 유명한 안티 테제(정치적·사회적 운동의 기본 방침이 되는 강령)가
되었던 건 겨우 20여 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질적 차원은 과거 30년 전보다 월등히 발전했지만,
그럼에도 의식은 오히려 과거 30만 년 전보다 퇴보한 듯한
우리 시대의 추상에 대한 논리는 抽象이 가진 원래의 철학적 의미인
사물이나 대상으로부터 어떤 성질이나 공통성이나 본질을 추출하여 파악하는
사고 작용의 빈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미술에서 추상은
설치미술(회화나 조각을 전시할 분식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메시지 전달을 위해
색다른 진열방식으로 보여주는 미술)에서 더욱 현격하게
형식과 내용의 변증법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1980년 전세계적으로 파란을 일으킨 작품으로 손꼽히는 [오아시스]는
일정한 규격대로 공장에서 만들어진 양변기를 전시장에 갖다 놓은 것입니다.
비평가들은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라고 극찬했지만,
사실 [오아시스]는 단지 변기통에 불과합니다.
양변기라는 형식은 있지만, 내용은 없기에 화장실의 그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입니다.
더 적나라한 사례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일하는 청소부가
수거한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은 그것입니다.
이 사건(?)은 쓰레기통을 전시하면서 멋있는 제목을 갖다 붙인 어느 설치미술가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이처럼 현대미술의 상식을 뒤집는 작가주의의 본질은 비상식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또 상식이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또는 가져야 할 지식이나 판단력을 가리킨다면,
현대 미술의 비상식은 비사회성, 비인간성, 비철학성이란 토대에 의해 규정됩니다.
이와 같은 추상주의는 30만 년 전의 추상주의와는 성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30만 년이라는 시간의 거리에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이질감이 존재하는 까닭은
혈거인들의 추상이 경제적 토대에 규정되어 인간의 길흉화복을 기원하는
원초적 의미를 담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회성, 인간성, 철학성이 적절히 조화된 상식적 논리입니다.
"미술은 정치적 행위이다"고 선언한 피카소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날 현대미술이 거짓말이라는 딱지를 달고 다니는 정확한 이유는
현대미술의 붙박이 장롱이라고 할 추상주의가
진실인즉슨, 미국 CIA 등 정부기관에 의해 의도적으로 부채질되었던 현실에 있습니다.
현실과 괴리된 추상주의는 인간의 의식을 편협하게 만들고,
민감한 정치적 주제로부터 인간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이미지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거시적인 구조에서는 사회화 과정이라고 하며,
심리학적인 차원에서는 세뇌라고 하고,
정치적인 용어로는 '무의식의 동의'라고 부릅니다.
마치, 광고 효과가 무의식에 이미지를 심어 무의식적으로 그 상품이 '좋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의식은 문명이라는 사회생물학적 혹은 인류학적 편견을
유일한 잣대로 놓고 판단하더라도,
의식 그 자체의 개념(어떤 일·현상·대상 등에 대해 생각이 미치어 대상으로서
알거나 깨닫거나 느끼는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추상은 빈곤함으로 가득 넘쳐 흐릅니다.
지금까지 미술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어떤 예를 들더라도 이보다 더 좋은 반증을 할 수 있습니다.
에이즈에 대한 추상 역시 빈곤의 연장선상입니다.
우리 모임을 방문하는 이용자들은 거개가 머리 속에 추상의 빈곤을 갖고 있습니다.
즉, 그 동안 생각하는 방법이나 이루어낸 생각을 증명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임에서 가장 먼저 추천하는 것은 에이즈에 대해 달리 생각하는 것이며,
대화와 토론을 통해 자기 스스로 이 생각을 추론하고 증명하는 방법을 일깨우고자 합니다.
[에이즈를 고발한다] 코너와
[명확한 토론 광장]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요 며칠 이 게시판이 구역질 날 정도로 난잡했습니다.
이제 게시판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이 모임과 이 게시판과 이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정상적인 의식(이성)이 비정상(추상의 빈곤)의 광기를 배재할 수 있다는
미셀푸코의 말을 기억합시다.
그 광기는 순전히 무지에 의한 에이즈 신봉입니다.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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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토론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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