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자:이정하
♧ 2001/7/4(수) 06:06
가끔은 비 오는 간이 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햇볕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으므로,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
한 점 나뭇잎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대.
비 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어요.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오실 땐
햇볕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마음을
기대게 해주는 은사시나무. 비 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소리.
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려
차창 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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