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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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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가설과 전염병의 시대, 각기병의 신화
에이즈 가설과 전염병의 시대, 각기병의 신화
참 좋지 않은 시대에 태어났다. 우리는 굉장히 재수없는 사람들이며, 철학의 빈곤 속에 살고 있다. 또한 영양의 빈곤을 안고 실존한다. 갑자기 미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에이즈 공포증에 휩싸인 사람들에 대해 의사들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에이즈 공포증자들은 HIV 검사에서 음성을 받아도 의사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의사의 정상 진료마저 방해한다.
게다가 HIV 검사 결과를 신경질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은 계속 HIV 검사를 받는 'HIV 검사 쇼핑족'으로 전락한다. HIV 검사를 계속 받아보라. 언젠가는 반드시 양성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며, 그토록 원하던 동기(?)를 갖게 될 것이다. 자살이든 희망이든! 그리고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혹자는 오늘날이 전염병의 시대라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진보적이고 명망있는 의사들로 필자가 구성된 [새로운 의학/새로운 삶]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의 필자 중 한 명인 김영치 씨(서울대 의대 초빙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출혈 · 고열 · 구토를 일으키면서 90%의 감염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맹독성 바이러스다."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 사람의 90%가 에볼라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영치 씨는 의도와 무관하게 진실을 오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염병에 관해 어떤 의학적 견해를 밝힐 생각이 없다. 이것은 매우 민감하며 감수성이 높은 문제로서 언젠가 반드시 검증될 문제다. 하지만 전염병이라고 간주되거나 한때 너무나 확실하다고 주장된 세기적 현상 중에 전염병이라던 증상의 대부분이 거짓말로 드러났다는 점은 명백히 알고 있다. 이 거짓말은 정치적 배경을 둔 의사와 과학자들의 사회적 합의와 타협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이 산물을 부정하거나 폭로하는 것은 무시되거나 배신자로 간주되었다. 아주 아주 많은 사람이 죽었던 각기병도 마찬가지다.
각기병은 병이라고 볼 수 없다. 비타민 B1 결핍 증상이기 때문이다. 병과 증상은 서로 다른 차원이다. 이것은 영양실조를 병이라고 하지 않고 '영양결핍 증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영양실조는 비타민 결핍 증상을 포함한다. 따라서 영양실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너무 못 먹어서 발생하는 현상과 잘 먹지만 비타민 등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물을 섭취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현상 등. 외국의 영양학자들은 필수 비타민이 부족한 비만인 사람을 '영양결핍 상태'로 규정한다.
그런데 19세기와 20세기 초만 해도 의사와 과학자들은 각기병을 '전염병'이라고 믿었다. 이 신화적인 패러다임의 토대는 단순하다. 일정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권태감과 감각 이상, 식욕 부진, 순환기와 소화기계의 증세, 부종 등을 나타내다가 이윽고 심장이 비대해지고 각기충심을 일으켜 결국 회복되지 못한 채 사망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특정한 원인균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특정 병인론에 기초한 이들의 믿음은 코흐의 법칙으로 문제의 바이러스를 분리하는데 집중되었다.
이 시점에서 묻건대, 좋은 의사란 무엇일까. 월시 맥더모트는 좋은 의사란 믿을 만한 의사이고 믿을 만한 의사란 자기 수양이 된 의사를 뜻한다고 했다. 그러나 비타민 B1 결핍 증상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좋은 의사를 만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한결같이 속수무책 죽어야했으니까. 이 와중 정말로 멋진 두 명의 의사가 등장했다.
영국에서 의학을 공부한 일본 해군 의무대 담당관이었던 다카키 가네히로 박사와 네덜란드의 군의관인 크리스티안 에이크만 박사였다. 두 사람 다 해군의 높은 사망률 때문에 고전하던 일본과 네덜란드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각기병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었지만, 이 두 사람은 같은 결론을 내렸다. 모든 동식물의 생명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인 비타민 B1 혹은 티아민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섭취하면 각기병이 치료된다는 그것이다. 하지만 1929년 에이크만이 노벨상을 받기 전까지 이 사실은 무시당했으며, 의학협회지에도 실리지 못했다.
티아민은 도정하지 않은 쌀이나 현미에 있다. 맛을 위해 겨를 벗겨내면서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물질이 사라졌으며, 이 물질이 결핍된 음식을 섭취하면서 각기병에 걸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염병이라는 오명을 벗어낸 각기병. 그러나 당시 의사들의 선입견에 가득 찬 오판으로 죽어야 했던, 혹은 전염병자로 격리 수용되어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말이 없다. 의사와 과학자들은 에이크만에게 노벨상을 수여한 것으로 단 한 마디 반성과 사과도 없이 자신들의 비겁함과 무지함을 감추었다.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놀랍게도 당시 의학은 과학을 통해 질병의 본질과 원인, 치료법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환상에 도취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는 듯이.
상상해보라. 만약, 각기병 환자에게서 원인균이라고 간주되는 바이러스를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제약회사는 항각기병 바이러스 약을 생산했을 것이며, 이 유독한 약을 먹은 각기병 환자는 더 큰 고통과 함께 틀림없이 절망에 목숨을 저당잡혀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당시 과학자들은 동물실험에서 각기병의 전염성을 증명하지 못했다. 에이크만 역시 각기병이 전염병일 거라고 확실히 믿고 오랫동안 동물실험을 했으니 두 말할 필요가 있을까. 나중에 정신 차린 게 천만다행이다.
아무튼, 이제와서 각기병의 역사에 대해 문제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좀 바보인 게 분명하다. 집이라고 불리는 큰 네모 상자와 가구라는 작은 네모 상장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진화한 원숭이. 그러나 각기병의 문제는 지금도 아주 크다. 특히 HIV 양성인과 에이즈 공포증자에게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생존권의 문제가 되고 있다.
"2000년대를 맞이한 우리 세대에서도 각기병은 여전히 전세계 사람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특히, 오랜 기간 동안 빈약한 식단을 유지해온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각기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밖에도 알코올 중독자,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인용자: 우리들 중 많은 수가 인격장애를 앓고 있지 않은가.), 교도소 수감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빈곤한 사람들이다." 뉴턴은 어쩌다 미쳐버렸나/ 짐리브슬리 · 조지 바이로/ 가람기획/P215
불행한 시대, 등이 훤 나무만이 우리의 허리뼈를 대변하는 현실에서 구토를 하지 않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다. 각기병처럼 바이러스도 분리해내지 못했으며, 각기병처럼 동물실험에서도 실패했다. 그러나 오직 AZT로 대표되는 유독한 약물만이 살아남아 호러물에나 어울리는 공상 과학을 연출하고 있으니, 미친 딜레마가 따로 없다.
어쨌든, 딜레마란 그 각각이 만족스럽지 못한 대안 중에서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곤란한 경우를 일컫는 그리스말로서 HIV/AIDS 가설과 관련되어서는 삶의 질과 관계되는 가치 판단이 개입된다. 만일,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의 해결에 적용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면 딜레마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HIV 양성인이든, 에이즈 공포증자이든 언제나 우선 순위인 최선의, 최상의 대안을 선택해야한다. 이것은 에이즈 이데올로기라는 사회구조적인 문제 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이다. 해서는 안 되는 것과 해도 좋은 것에 대한.
실존은 회의주의를 의미하며, 사회의 구조와 이 구조에서 가장 야만적인 이데올로기인 에이즈 가설의 딜레마를 명확히 인식할 마음이 없다면 어차피 불행함은 순전히 당신의 몫이다. 영어를 잘 하고 싶은 당신을 위해 우리가 대신 영어단어를 외울 수는 없지 않는가.
AZT를 먹을 것인가. 의사들은 유독한 약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식이요법을 하거나 마음 편하게 살 것인가. 당신은 지금 건강하다.
HIV 검사를 할 것인가. 의사들은 검사법의 허위성 때문에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
에이즈 딜레마에서 벗어날 것인가. 당신은 단 하루라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알아서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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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를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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