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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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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에 숨은 사회적 편견! 동성연애자는 틀렸어
*호칭에 숨어 있는 사회적 편견에 관해 비교적 구체적으로 분석한 글이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쓴 한겨레신문 기자 역시 평소 감염인을 '감염자'라고 비하하지요. 웃기는 사람 같으니. 하여튼 이 글을 읽으면서 HIV 감염자 혹은 에이즈 감염자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사회적 편견을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겨레21 기사시각 : 2000/04/13 16:28
(표지이야기) 동성연애자 틀렸어!
지난해 12월23일은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 역사에 소중한 "승리의 날"로 기록돼 있다. 이날 교육부가 "에이즈, 동성연애 등이 늘면서 성도덕 문란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윤리교과서 문구를 2000년부터 삭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부의 방침은 지난해 7월29일 동성애자인권연대 임태훈 대표를 비롯해 33인이 제기한 "교과서 수정신청"을 받아들인 결과다. 임씨는 "동성애를 혐오스럽게 묘사한 내용도 문제였지만 "동성연애"라는 잘못된 표현도 간과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동성애"라는 표현이 적확하다는 얘기다.
호칭은 곧 관점을 대변한다
동성애(자)와 동성연애(자). 불과 한 글자 차이에 왜 이들은 그토록 매달리는 것일까. 남성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의 천정남 사무국장은 "동성연애자라는 호칭에는 온갖 차별과 혐오가 응축되어 있다"고 말한다. 동성애자라는 표현이 하나의 인격체로 이들을 지칭한다면, 동성연애자라는 표현에는 "연애에만 매달리는 성적 존재"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짙게 깔려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90년대 중반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시작될 무렵부터 일일이 각종 언론을 모니터링해왔다. 그래서 "동성연애자"라는 표현을 발견하면 즉각 해당 언론사에 항의를 하곤 했다. 그만큼 "호칭"에 대해 큰 의미를 두는 것이다. 최근 동성애자인권연대는 각종 사전에 나와 있는 "동성연애자"라는 표현을 고치기 위해 노력중이다.
동성애자들 스스로 개발한 자긍심의 언어로는 "이반(異般)"이 있다. 다를 이(異)자를 써서 일반인과는 단지 성적 정체성이 "다른" 존재일 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반은 원래 동성애자 공동체 내에서 쓰이던 은어였다. 동성애자인권동운동단체들이 9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일부에서는 이미 통용되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들에게 적합한 "호칭"을 찾아가는 과정은 곧 인권운동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장애자"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 하지만 장애자라는 용어는 88년 장애인올림픽을 전후해 "장애인"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전국청년대학생연합"의 박지주 대표는 장애자와 장애인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장애자"라고 하면 사람 그 자체보다는 장애를 먼저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편견도 스며 있다. 그에 비해 "장애인"이라는 호칭은 동등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호칭"이 곧 관점을 대변한다는 얘기다. "장애인" 외에 "장애우"라는 표현도 있다. 이 호칭은 87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창립되면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 단체 신용호 사무국장은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며 "그런 의미에서 장애우라는 호칭은 꼭 장애인만을 지칭한다기보다 예비장애인인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최근에는 좀더 긍정적인 호칭인 다능인(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을 쓰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아줌마'를 긍정적 의미로
그렇다면, 장애를 입지 않은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정상인? 아니다. 정상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장애인들은 비정상인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장애를 입지 않은 사람들을 "비장애인" 혹은 "일반인"으로 부른다. 구체적인 장애를 일컫는 호칭들도 변화해 왔다. 벙어리는 농아인으로, 장님은 시각장애인으로, 째보는 언청이로 바뀌었다.
또다른 소수자로는 "혼혈인"이 있다. 순수혈통주의가 뿌리깊은 우리 풍토에서 "혼혈인"이라는 호칭이 정착되기에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들을 일컫는 호칭은 "튀기"라는 국적 불명의 멸시적인 말에서 "혼혈아"로, 다시 "혼혈인"으로 변해왔다.
질병에 대한 호칭 속에서도 다양한 사회.역사적인 맥락을 찾을 수 있다. 문둥병이라는 호칭이 대표적이다. 수십년 동안 이 호칭은 단순히 피부질환의 일종을 일컫는 말이 아니었다.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마땅한 이들이라는 편견이 숨어 있었다. 한마디로 천형이었다. 그래서 이 호칭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숱한 한숨과 눈물이 묻어 있다. 80년대가 돼서야 문둥병은 나병으로 고쳐졌다. 그러나 나병이란 호칭에도 그 부정적인 의미가 온전히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몇년전부터 소록도를 중심으로 나병 대신 한센병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있어 왔다. 그 결실로 올해 8월1일부터 시행되는 "전염병 예방법 개정안"에는 나병이란 호칭 대신 한센병을 쓰기로 결정되었다. 한센병이란 호칭은 병의 원인을 최초로 발견한 노르웨이 의학자 한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이 병에 대한 그릇된 사회적 통념이 바뀌지 않는 한 호칭의 변화만으로 한센병 환자들의 인권이 지켜지기는 어렵다.
여성운동 차원에서 대체된 호칭들도 많다. 윤락녀가 그 대표적인 예. "스스로 빠져서 허우적댄다"는 비하적인 뜻을 담고 있는 이말은 "매매춘여성"이라는 객관적인 호칭으로 대체되었다. "양공주"라는 호칭이 "기지촌 여성"으로 대체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아직도 윤락녀나 양공주라는 표현은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간호원과 간호사
최근 여성민우회는 "편부모 가정"을 "한 부모 가정"으로 부르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호칭은 여성민우회 안의 "한 부모 모임"이 스스로 지었다고 한다. 혼인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미혼모라는 호칭을 독신모로 대체하자는 제안도 있다.
비하적인 의미로 사용되던 호칭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운동도 있다. 최근 "아줌마"가 그런 예다. 지금껏 제3의 성으로 불리며 무성적인 존재로 비하되었던 아줌마를 긍정적인 의미로 쓰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수다와 무식, 그리고 몰염치로 규정지워졌던 왜곡된 이미지를 벗고 아줌마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여성으로 재해석하자는 것이다. 여성민우회 윤정숙 사무차장은 "아줌마들이 가진 내재적인 에너지를 가족 울타리 밖으로 달려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조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특정 직업에 대한 호칭도 시대적으로 변해왔다. 그 예로는 간호사라는 호칭을 들 수 있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허준"에 나오는 것처럼 이들은 조선시대에 의녀로 불렸다. 일제시대에는 간호부라는 호칭이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오랫동안 간호원이라는 호칭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80년대 초부터 간호사란 호칭으로 불리기를 원해 왔다. 단순히 의사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동등한 관계에서 협력하는 전문인임을 강조하기 위한 호칭이다. 또한 이들은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자긍심을 키워오고 있다. 요즘은 의사들도 간호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존중해 주는 경우가 많다. 간호사뿐 아니라 다른 직업에서도 올바른 이름찾기가 진행되어 왔다. 인권에 대한 배려가 커지면서 청소부는 환경미화원으로, 보험아줌마는 보험설계사 등으로 많은 직업들이 호칭을 바꿔 갖게 되었다.
이처럼 호칭에는 사회.역사적인 맥락이 숨어 있다. 때때로 편견이 호칭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거꾸로 호칭이 편견을 강화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 피해자는 소수자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 하고 특정직업을 가진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 아픈 역사는 그들을 지칭하는 호칭 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신윤동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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