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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바라
2002/4/6(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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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동의합니다.
저는 그가 나약했기에 자살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이즈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는 힘을 낼 수 있는 그 어떤 대안도 갖질 못했다고 봅니다.
마치, 일주일 전 1급 장애인인 최옥정씨가 자살을 했던 것처럼.
물론, 그녀는 남한의 사회보장제도 아래서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살이라는 자신의 선택이 과연 정당한가를 놓고 고민했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지난 10여년 동안 '자살'이라는 화두에서 단 한 번도 자유롭지는 못했겠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여자친구와 깊이 사겼다는 바로 그 점이
그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울 쳤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에이즈 이데올로기는 사람을 나약하게 만듭니다. 숫제 바보로 만들지요.
혹은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될 환자로 둔갑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이들이 나약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고민한다는 것 그 자체가 삶에 대한 끈질긴 집착의 반증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들의 자살은 뒤르켐이 지적한 바 그대로 '사회구조적인 타살'입니다.
그것은 역설적인 표현도 아니며, 이들이 죽음을 통해 이 세상에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돌이켜 생각해볼 때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판단합니다.
최강님의 표현은 원래 그런 뜻이 아니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어쨌던 에이즈 포비아들의 자살은 결코 나약했기 때문이 아니며, 만일 이들의 돌이킬 수 없는 죽음 앞에 '그건 그의 나약함에 원인이 있어'라고 한다면, 그건 에이즈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흐리는 논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포비아들의 자살에 대한 민간 에이즈 기관들의 뻔한 동정심처럼.
지금까지 전개한 제 생각이 정당하다면, 최강님의 주장에 덧붙이면 논리 그 정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최강님이 말씀하셨듯 최소한 우리 모임의 포비아라면, 혹은 감염이라는 꼬리표를 단 사람이라면 과감히 자기 운명의 결정권을 강력하게 발휘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이건 오래 전에 쪽 팔리는 문제를 떠난 것입니다. 아직까지 에이즈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건 순전히 그가 -그렇게 마음 고생하며 살고자- 선택한 길입니다.
요 며칠 동안 이 문제에 대해 그 누구보다 더 깊은 고민 속에 살았습니다. 에이즈 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제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들 때문에. 하지만 이 고민은 매우 유효적절하고 의미있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도움을 청하고 또 실천할 의지가 있는 사람만이 에이즈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것입니다. 그 이상은 저의 한계가 아니라 제 역량을 벗어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구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 실천할 의지가 없는 사람을 도울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두드려라. 그럼 문이 열릴 것이다." 우리 모임의 문턱은 아예 있지도 않습니다. 두드리면 문을 열어줄 사람은 많습니다. 최강님이 벌컥 문을 열어줄 것입니다. 에이즈 이론이 궁금하다고요? 제가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답변해드리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낮과 밤을 잊어가며 에이즈 공부를 했습니다. 이외에도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또 원하는 답변을 해드릴 수 있는 분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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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슬럼프는 빨리 지나갔습니다. 우울해하며 지내기엔 제 시간과 정열 그리고 믿음이 너무 아까웠고요. 제가 신속히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모임에 최강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올리신 글도 저의 운동신경(?)을 각성시켜 이 전의 무력함을 비웃게 만들더군요.
이번에 양성판정을 받은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의 미비점을 보완할 수 있는 몇 가지 시스템을 고안해보았습니다. 일종의 정신 능력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인데, 집에서도 손쉽게 혼자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미 강산님에게는 권유를 했고, 오늘밤 잠자기 전에 해보았을 거라고 여겨지네요.
즐거운 하루가 되십시오.
참, 다른 사람들은 최강님의 닉네임을 다 본명으로 알고 있던데.. 너무 강해서 ...^^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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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토론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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