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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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28(월)
오마이뉴스] 에이즈는 사회적 과대망상?  

원문] http://www.ohmynews.com/article_view.asp?menu=s10600&no=122174&rel_no=1&searchtext=에이즈

에이즈는 사회적 과대망상?
<에이즈는 없다>를 읽고

   이재환(fanterm5) 기자  


며칠전 도서관에서 책 하나를 빌려왔다. 한국에이즈재평가를위한 인권모임에서 발간한 <에이즈는 없다>란 책이다. 제목만으로도 폭발성이 강해 보이는 이 책은 '에이즈는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책 내용의 사실여부를 떠나,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이즈가 정말 실존하는 병이 아니라면?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 책은 에이즈를 예방한다는 약들이 사실은 부작용이 심각한 약들이며, 이 약을 복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정말로 에이즈가 없다면, 간혹 텔레비전에 등장해 에이즈의 고통을 말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한다는 말인가?

직업적으로나 천부적으로 '의심'을 밥먹듯이 하고 있는 나로서도 도저히 이 문제를 판단할 방법이나 어떤 기준도 갖고 있지 않다. 또 거의 전무한 의학 지식탓에 이 책의 진위 여부를 가려낼 어떤 수단도 갖고 있지 못한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아니, 이들의 주장에 일말의 진실이라도 포함되어 있다면? 이런 원초적인 질문과 마주하면서 갑자기 왜 과학자들이 한번도 에이즈란 질병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 졌다.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증세가 있는데, 그냥 믿어라'라는 식의 논리를 믿어야 할지, 이 책의 주장대로 '에이즈라는 과학적 미신'을 타파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 헷갈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는 점과 에이즈 과학에도 어떤 비논리적인 요소가 숨겨져 있지는 않나하는 의구심이다.

"에이즈 앞에만 서면, 잔인해지는 인간"

한 보도에 따르면, 얼마전 인도에서 에이즈에 걸린 여인을 집단 구타해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기만 살겠다고, 무고한 여인을 무참히 학살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여인에게 죄가 있다면, 그건 병(에이즈)에 걸려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우리는 암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해서 그 사람을 폭행해 죽였다는 엽기적인 사건을 본 적도 또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유독 에이즈나 심각한 전염성을 지닌 질병에 대해서는 돌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 사스에 대한 공포, 에이즈에 대한 공포로 사람들을 격리하기도 한다. 격리란 사회적 고립을 뜻한다.

때로 사회적 '격리'는 인간을 황폐화 시킬 수 있다. 이 말은 곧 아무런 질병이 없는 사람도 사회적인 격리와 고립감을 느끼면 그에 따른 새로운 질병(정신적인 공황 상태)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건 어쩌면 인권에 대한 심각한 '학살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에이즈 과학자들은 에이즈를 바이러스로 규정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서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에이즈가 설령 존재하는 병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과의 타액을 통한 접촉(성관계)만 없다면 최소한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이런 편견은 사스의 경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얼마전 마스크를 쓰고 난리 법석을 떨던 사람들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메우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사스는 외출후 집에 돌아와서 손발만 깨끗이 씻어도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병에 대해 엄청난 호들갑을 떨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앞에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질병과 죽음이 두렵고 무서운 존재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가 죽음과 질병을 두려워 하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우리가 질병과 투쟁하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 육체적인 건강을 통해 행복을 누릴 '권리'를 찾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때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다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만 건 이상의 자살보도를 접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자살이 너무 흔한 일이어서 그 자체가 기삿감으로 대접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역으로 생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래서 그 두려움은 신이 준 선물이기도 한 것이다.

"에이즈는 사회적 질병"

우리가 에이즈에 대해 더욱 두려워 하는 것은, 에이즈란 질병이 존재한다면, 누구도 이 병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일평생 섹스를 단 한번도 안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또 평생 동안 수혈을 받지 말라는 보장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제 더이상 에이즈를 도덕적인 잣대와 동성애자와 같은 성적 소수자에 대한 '다수의 횡포논리'로 다루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성적으로 개방된 사회에서 이성에 대한 무분별한 성접촉이 에이즈를 불러온다는 식으로 몰아 가면서 이들을 도덕적으로 매장 시켜서도 안된다.

또 이 책의 주장대로 에이즈가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인 질병이라면, 또 에이즈 과학이 증거가 빈약한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이제는 툭 터놓고 이 질병에 대한 재평가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에이즈는 더이상 타락에 의한 질병도 아니고, 성적소수자에 의해 유포되는 몹쓸 역병도 아니며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사회적인 질병"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때인 것이다.

또 하나 이 책은 일부 제약회사들이 만들어 낸 에이즈 치료제의 부작용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모든 약에는 일정한 부작용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제 의학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상식으로 통한다.

에이즈에 대한 재평가에 앞서, 에이즈 치료제의 부작용 또한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에이즈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치료 방법을 내 놓아도 늦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책에 따르면 수많은 에이즈 환자들이 에이즈 치료약을 전혀 복용하지 않고도 수년 동안 특별한 증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03/07/16 오후 4:11
ⓒ 200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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