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3(수) |
고려대 여총의 생각/에이즈는 없다 고려대학교 여총에서 발행하는 [석순]의 편집위원이 쓴 에이즈 가설에 대한 글입니다. 어휘 사용과 문맥에서 다소 혼란스러운 면이 보이나, 에이즈가 가설이라는 점은 분명히 꼬집고 있습니다.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하여 이 곳에 올립니다. 바라- WELCOME to AIDS 편집위원 우박아름 iwill84@naver.com WELCOME TO AIDS 어떤 남자가 길에서 만난 여자랑 여관에 가서 하룻밤 잤대. 그런데 다음날 남자가 잠에서 깨보니까 여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화장대 위에 그 여자가 입술에 바르고 있던 루즈만 윗부분이 짓이겨진 채로 나뒹굴고 있었대. 그리고 거울에는…… 시뻘건 글씨로, WELCOME TO AIDS 라고 적혀있었대! 웰컴 투 에이즈는 아주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남아있는 건 그녀의 빨간 루즈, 거울에 큼지막한 글씨가 뜻하는 건 “이제 너도 에즈야”.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기에 앞서, 그래 나는 그냥 소름이 돋아 얼어 있었다. 그 여자는 무슨 심정으로 그 남자를 만나서, 무슨 심정으로 하루를 보냈을까. 루즈로 웰컴 투 에이즈라고 쓰면서 그 여자는 슬펐을까 통쾌했을까 화가 났을까. 그 여자가 남겨놓은 글씨들을 보며 남자는 어땠을까. 이런 생각들이 공포 그 자체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머리 속에 에이즈는 빨간색이다. 에이즈는 벌이다. 에이즈는, 에이즈는.. 무섭다. 그러나 빨간 루즈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에이즈에 대한 괴담은 무수히 많다. 괴담은 효과적으로 공포증(포비아)을 생산해낸다. 대부분의 괴담은 사회적 금기들을 소재로 다루고 상황을 모호하게 설정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내게도 언젠가 저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효과적으로 개인의 행동을 통제하도록 작동한다. 언제나 무서워해야 마땅한 것들은 괴담을 통해 교육되었다. 아기의 원혼이 엄마를 저주한다는 낙태괴담이 그렇고 늦은 밤 길거리에 겁 없이 돌아다니다가는 봉변을 당하게 된다는 빨간 마스크 괴담이 그렇다. 이러한 괴담들은 강력한 하나의 이미지들로 남아 논리보다 앞서 불쑥불쑥 떠오른다. 자발적으로 내면화한 것 같은 공포기제들. 그러나 괴담을 모아보면 나 혼자만의 것인 줄 알았던 특정한 공포 영상들이 뭇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공통적인 것이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에이즈는 단순한 병이 아니다. 처음 에이즈에 관하여 듣고서는, 사회적 가치에 따른 혐오가 생물학적으로 나타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이지 신이 내린 벌 인걸까. 그런데 들을수록 이상하다. 에이즈는 사람마다 발병형태와 강도도 달라서, 어떤 사람은 걸리자마자 증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멀쩡히 살아 생활하다가 노화로 죽는다고 한다. 누군가는 에이즈가 아프리카 원숭이로부터 왔다고 했고 누군가는 성생활이 문란한 아프리카 토착민들이 원숭이와 성관계를 갖다가 원숭이로부터 병이 옮은 것이라는데 정작 에이즈가 탄압하는 것은 동성애자1) 오해의 시작은 이렇다. 80년대 초반 첫 에이즈 환자는 미국의 남성 동성애자였다. 괄목할 만한 것은 그 환자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20여년이 넘도록 에이즈를 동성애에서 비롯되고 동성애를 통해 전파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들이다. 동성애자들에게서 처음으로 발견된 병이고, 성관계를 통해서만 옮는다고 했다. 그런데 지역으로 보면 빈민가에서만 돌아다니는 병이다. 그러면 가난이 에이즈를 전염시키는 것인가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단다. 성행위와 주사바늘을 공용으로 쓰는 것이 전염원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약중독자들이 새롭게 에이즈 위험집단으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마약은 꼭 여럿이서 모여서 하나? 혼자서 자기 주사바늘 쓰는 사람들도 그럼 위험집단이야? 뒤죽박죽이다. 온갖 혐오들이 거진 다 들어맞는 병이다. 이쯤 되면 말이 안 되는 거다. 당신이 알고 있는 / 당신이 알아야 하는 에이즈 오늘날, 인간이라는 종의 삶과 희망을 꺾는 가장 무시무시한 징계는 에이즈이다. -수전손택 Susan Sontag 동성애, 마약, 성교, 기괴함, 피부병, 가난, 혐오.. 에이즈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단어들이 아마 이러한 것들일 것이다. 다른 병들과는 다르게 에이즈는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환자의 모습이라든가, 병의 증상이라 하는 것들은 없고 왠지 에이즈를 ‘발생’시키기라도 할 것 같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병은 어디로 가고 이러한 이미지들만이 난무하는 것일까? 이러한 실체 없음이 바로 에이즈의 실체이다. 정확히 말해서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 결핍증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는 전혀 질병의 이름이 아니다. 에이즈는 질병에 걸릴 수 있는 의학적 조건을 뜻하는 말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면역 결핍에 의해 야기되는, 한 가지 또는 그 이상의 기회감염2) 병원성이 없거나 미약한 미생물이 극도로 쇠약한 환자에게 감염되어 생기는 질환. 네이버 사전 참고 의 발생을 에이즈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HIV검사에서 양성으로 반응하는 사람을 HIV감염인, 혹은 에이즈보균자라고 부른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생물학적 지식들을 총동원하여 생각해보자. 보균인 이지만 평생 보유하고 있는 균과 상관없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에이즈도 이와 마찬가지라서 HIV양성 반응이라고 하여 모두 에이즈 환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HIV와 AIDS는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현재 의학 정설에 따르면 HIV 감염인 으로 살아가다가 발열·오한·설사·체중감소·수면 중 발한· 불면증·심한 피로감 및 식욕부진 등의 에이즈 관련 증상이 나타나면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한다. 그 이후에는 오만 가지 증상들이 에이즈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된다. 체력저하, 기억력 감퇴, 피부병.. 그러다가 어느 한 가지 병이 생기면, 그것이 바로 에이즈 때문에 걸린 병이 되는 것이다. 에이즈 때문에 면역기능이 저하되었으니까. 이것이 최상의 설명이다. 감기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저 증상들이 우리가 그토록 공포에 떨었던 에이즈의 증상 중 유일하게 공통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에이즈가 무서운 이유는 이러한 초기증상 때문이 아니다. 어떤 자료를 참고하더라도 초기 증세 이후에는 다양한 병인에 의하여 ‘결국 죽음에 이른다’고 밖에 설명해주지 않는, 바로 그 ‘알 수 없음’이 이 공포의 핵심인 것이다. 에이즈가 하나의 단일한 질병이 아니라 특정한 증후라는 사실, 즉 에이즈는 이 질병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거나 그 원인을 ‘제공’해 주는 외견상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수한 질병들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은 에이즈가 암처럼 다양한 형태를 지닌 질병보다 훨씬 더 복잡한 정의나 해석의 산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3) 『은유로서의 질병』155쪽, 수전손택, 이후 그리고 실제로도 에이즈를 어떻게 기록하고 정의하느냐에 대해 의사들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내보이고 있다. 심지어 ‘에이즈는 없다’고 주장하는 反체제 과학자들까지 있다. 반체제 과학자라니, 이름부터가 자못 비장하다. 이들은 HIV는 존재하지 않는 바이러스라고 주장한다. 어떠한 개체가 바이러스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입자의 분리가 가능해야 하고 일정한 확대를 통하여 관찰할 수 있어야 하며 스스로 정확한 복사체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HIV는 이 중의 어느 한 조건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HIV바이러스 모습이라고 보여 지는 사진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한 사진인 경우가 많다. 영국의 반체제 에이즈 과학 잡지 ‘콘티누움Continuum’은 상금 1천 파운드를 걸고 HIV의 존재를 증명하는 논문이나 사진을 찾는다고 광고하고 있다. 에이즈가 복잡한 정의나 해석의 산물이라는 것은 에이즈의 잠복기간을 따져 보아도 알 수 있다. 간단한 몇 가지 사실을 놓고 생각해 보자. 에이즈 발견 후 7년이 지난 1988년에 에이즈 잠복기간은 10년에서 15년 사이로 산출되었다. 발견 후 20여 년째인 현재, 에이즈 잠복기간은 당연히 더 늘어났다. 이것은 에이즈가 가설이라고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의미한다. 에이즈에 걸리고서도 건강하지 않느냐, 라는 반문을 제기하면 이런 답이 되돌아 올 테니까 말이다. “아직 잠복기요.” 진실은 무엇일까? 불행히도 에이즈에 관한 한, 무엇이 진실인가를 말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에이즈의 개념 정의에 많은 변화가 있어왔고 에이즈에 관한 통계들 또한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에이즈는 미국에서 발견된 질병이다. 최초의 환자는 1981년에 발견된 미국의 남성이었다. 에이즈 관련 연구와 논문이 의학계에 불어 닥쳤다.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에이즈가 만연한 땅으로 알려진 곳은 유감스럽게도 아프리카이다. 아프리카 민중의 25%가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다고 한다. 정작 아프리카 사람들은 HIV검사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일이 검사를 실시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통계는 어떤 기준에 따른 것일까? 아프리카에서 적용되는 에이즈 개념은 1985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있었던 WHO회의에서 정립되었다. 그에 따르면 지속적인 기침, 10% 이상의 체중 감소, 열, 설사 이렇게 4가지 증상이 보이면 잠정적으로 HIV 감염인 이라고 판정하기로 한다. 에이즈 개념이 생기기 전부터 문제가 되었던 수많은 종류의 토착병, 말라리아 등의 전염병, 그리고 고질적 가난으로 인한 기아현상들이 에이즈 발견 이후 에이즈로 판정되어 집계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집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에이즈 관련 사망자 집계에는 자살한 사람도 포함된다. 면역체계 파괴라는 것이 직접 어떤 특정한 병에 관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에이즈 관련 사망자 통계는 태생적으로 불완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심적인 부담 때문에 자살한 경우조차 면역체계파괴와 결부시켜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수치만 남은 사망자 통계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에이즈는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다. 성적性的 원인이 포함된 전염병은 쉽게 감염된다는 공포, 그리고 성교를 하지 않았는데도 공공장소에서 감염될 수 있다는 기묘한 환상을 늘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4) 『은유로서의 질병』20세기 초, 매독이 “무고한 사람들에게도 감염되는 전염병”이라는 소문이 돌자 미국에서는 공공 약수터에 놓여 있던 금속제 물 컵을 없애버렸으며 미 해군은 10여 년 동안 모든 문의 손잡이를 없애고 회전문을 설치하였다. 감염에 대한 공포는 위험 집단의 사람들을 색출하여 준비된 혐오와 멸시를 퍼붓게 한다. 주로 건강한 전문가들이 구분지어 놓곤 하는 에이즈 위험집단에는 동성애자, 성매매 관련자, 마약중독자, 가난한 자 등이 있다. 이렇게 위험집단을 가르는 것은 위험집단 내/외부의 사람들에게 상이한 태도를 야기 시켰다. 위험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끊임없는 불안을, 위험집단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대놓고 무지한 가운데 공포심만을 키우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아래와 같이 엉뚱하고도 애처로운 질문들이 인터넷 게시판을 메우게 되었으니, “에이즈 안 걸린 사람이 자기가 사정한 정액이 자기 상처에 닿아도 에이즈 걸리나요?” “남녀 둘 다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남자 입에 쪼금 큰 상처가 있는데, 그 상태에서 오럴섹스를 했다면 에이즈에 걸리나요? 에이즈에 안 걸린 사람끼리입니다!” “한 달 전에 ***(성매매 지역을 일컫는 말-글쓴이 주)에 다녀왔습니다. ……만약 여자가 에이즈에 걸렸으면 100% 걸리는 건가요? 그리고 여자가 에이즈가 없으며 몇 %인가요? 걸릴 확률은?? 알려주세요. 정말 불안합니다.” -www.naver.com 지식검색 와 같은 것들이다. 모를수록 두려움은 세세해지고 공포는 깊어지는 법이다. 에이즈 관련 상담 게시판에 가보면 에이즈 공포증에 걸린 사람들의 간절한 질문이 그득하다. 네이버에 가서 검색창에 에이즈를 쳐보자. 거기에는, 여드름이 나고 임파선이 부었는데 이게 에이즈 증상 아니냐, 자위를 해도 에이즈에 걸리냐, 우리 엄마가 발이 붓고 등에 뾰루지가 났는데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에이즈 환자 증상과 비슷하다, 내가 친척 누가, 동생과 키스를 했는데 이거 혹시 에이즈 걸리는 것 아니냐, 등의 질문들이 빼곡하다. 이런 질문들은 하나같이 너무 불안하니 꼭 좀 답해달라는 애원조의 멘트로 끝맺는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부의 사람들이 소위 ‘정상’으로 일컬어지는 범위 외의 성적 시도나 금기에 침범을 하고 나면 혹시 에이즈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병에 대한 고민이 육체적 변화-건강 혹은 고통이라는 측면에서-에서 비롯되는 것과는 다르게, 에이즈 감염에 대한 나의 고민은 나의 행위가 사회가 용인해주는 범위 안에 있는가와 같은 자가검열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해서 아프기 전부터 병을 고민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게 된다. 동성 간 성접촉 이후에 또는 친족범위 내의 누군가와 성적인 접촉이 있은 후에 에이즈에 대해 염려하며 올린 질문들이 많았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제 에이즈는 사회적 금기를 견고히 하는 단죄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공중파 방송이나 언론, 잡지 등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기보다는 에이즈환자의 사진이라든가 신체 특정 부의에 발진한 피부염 등을 에이즈 증상인양 보여주는5)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에이즈 관련 증상으로 이야기되는 질병이나 증상들이 실제로는 에이즈 치료제인 AZT의 부작용으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AZT는 영국계 제약회사 버로우즈 웰컴이 개발한 함양제인데 그 부작용이 너무 커서 자체 폐기된 바 있다. 문제의 부작용이 무엇이냐 하면, 암, 유산 및 기형아 출산, 빈혈증, 백치가 되는 것과 면역성 저하, 그리고 사망(!)이다. 에이즈 증상과 너무 흡사하다. 충격요법을 쓰기 때문에 에이즈에 웬만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이상 쉽게 불안해지게 된다. 여드름이나 작은 뾰루지를 보고 불안했던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래도 그렇지, 도대체 상처가 있는 입으로 섹스를 하면 에이즈에 걸리는 것일까 하는 엄청난 상상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쯤에서 당신이 알고 있는 에이즈와 알아야 하는 에이즈가 따로 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해두어야 하겠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까. 사회적 구성물 에이즈 감염자 관리 체계는 사회가 만든 ‘타자’에 대한 그 나라의 인식과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피검사자가 승낙을 하지 않는 이상 HIV검사를 실시하지 않으며 피검사자는 검사 결과에 상관없이 카운셀링을 받는다. 감염인에게는 사회복지사가 지정되어 각종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게 하며 지역사회의 에이즈 관련 민간단체에 가입하도록 권장한다. 미국에서는 에이즈에 걸렸다고 해서 사회로부터 격리되지도 고립되지도 않으며, 에이즈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생활에 필요한 치료- 치과, 안과, 산부인과 등-에 대해서 불이익을 받지도 않는다.6) HIV/AIDS 감염인을 위한 사회복지 서비스에 관한 연구, 박희숙 물론 법조항에 적힌 것과 현실은 차이가 있겠지만 최소한 한국에는 법조항에 근거하여 보아도 이러한 배려는 없다. 영국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정책 체계가 처음부터 언론과 협조하여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따라서 사회 일반이 에이즈에 대해 공포심을 갖기 이전에 환자의 인권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 관심은 에이즈 환자에게 직접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짜도록 하였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사회복지사, 가정의, 성병전문의, 간호사, 임상심리사 등이 팀을 이뤄 환자와 그 가족의 에이즈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7) 같은 논문 일본에서는 현縣별로 여러 개의 에이즈 전문병원을 설치하여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8)같은 논문 한국은 어떤가.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1985년에 최초의 에이즈 감염인이 확인되었고 외국인들에 대한 강제 검사제도가 마련되었다. 현재 한국의 에이즈 관련 관리 체계가 사회 일반으로부터 에이즈 감염자를 격리하는 식으로 조성되는 데에는 최초 감염인이 외국이었다는 것과 “타지의 몹쓸 병이 침입했다”는 성급한 피해의식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강제조사를 한 경험이 한 몫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에이즈가 이 시대의 역병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병이 되는 데에는 보통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무섭게 퍼지는 전염성과 신체를 기괴한 것으로 바꾸어 버린다는 공포가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어떠한 질병이 역병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은, 그 질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서려있는 피해의식의 정도이다. 즉, 누구에게나 이 질병은 어딘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찾아오는 질병이라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매독이 사람들을 감염시키며 전 유럽을 휩쓸고 다녔을 때 매독은 영국인들에는 ‘프랑스 발진’이었으며, 파리 사람들에게는 ‘독일질병’, 플로렌스 사람들에게는 나폴리 질병, 일본인들에게는 중국질병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에이즈를 다루는 방식과 너무도 흡사하다. 오늘날 한국 사람들에게 에이즈가 미국 동성애자 질병이라면 미국 사람들에게는 아프리카 토착병이니 말이다. 이런 말들은 좀 더 중요한 진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즉, 상상된 질병은 상상된 외국인들과 결부되기 마련이라는 진실을, 아마도 여기에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온 우리가 아닌 자들, 즉 이방인이라는 그릇된 개념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수전 손택 질병을 이방인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사회에 병을 앓는 사람들의 자리는 있을 수가 없다. 다시 한국의 경우를 보면, 에이즈에 대한 각성이 분주하게 일어난 나머지 편견에 입각하여 지정된 ‘위험집단’-동성애자, 성매매여성, 외국인, 마약복용자- 의 사람들에게 강제 검사를 실시하도록 하였으며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 감염자 격리보호제도9)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의 14조에서는, “타인에게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를 감염시킬 우려가 높은 자를 보호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호시설에서 격리 보호 및 치료를 받도록 명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는 폐지되었다)를 운영하였다. 에이즈 검사10) 조선일보 사회면에 따르면, 한국의 HIV판정은 95년까지만 해도 90%의 오진률을 선보였다. 10년이 지난 현재라고 해서 HIV검사 결과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 HIV검사 자체가 신체의 면역능력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에 당신이 감기나 결핵에 걸린 상태이거나 피부병 혹은 근육 질환 등에 사용되는 스테로이드제 약물을 투약 중에 있었다면 양성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게다가 현재 국내에서 1,2차 검사에 쓰이는 웨스턴 블랏 검사는 그 부정확함 때문에 영국 등 몇몇 나라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1,2차 검사 결과 양성판정을 받은 사람이 3차 검사에서는 음성 판정을 받는 일이 많은 현실도 HIV검사의 부정확함을 나타내주고 있다. 는 3차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1,2차 검사결과 양성판정이 나오면 3차 검사 기간인 국립보건원에서 확진판정을 받는다. 3차 검사에서 양성판정이 나오면 보건복지부에서 대상자에게 관리번호를 부여한다. 관리 명부에는 발견상황, 감염경로, 혈액형과 임상증상 등의 병인에 직접 관련된 사항 이외에 성명, 주소, 직업 등의 인적사항도 적는다. 이러한 신원 확인을 거치면 행정적으로 관리 받게 된다. 매 3개월마다 정기상담을 실시하며 필요한 경우라고 여겨질 때에는 수시면담을 받아야 한다. 부르면 가야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주 구체적인 아웃팅 관련 피해들도 많다. 취업을 하려는데 보건소의 의사가 나의 감염사실을 회사에 알리는 경우, 동사무소에 기초생활보장대상자로 신청을 하려고 했지만 직원이 사람들 앞에서 HIV감염인 이라고 크게 말을 하는 바람에 너무 놀라 당황해서 그냥 나온 경우 등등. HIV감염자에게는, 커밍아웃 관련 고민과 아웃팅 관련 피해가 존재한다. 이들은 ‘예비범죄자’ 혹은 ‘걸어 다니는 폭발물’로 여기는 사회이기에 밝히지 않음은 죄책감이 되지만 밝히는 것은 죽기보다 어렵다. 그렇기에 HIV/AIDS감염인은 생물학적 죽임에 앞서 사회적으로 죽는다. 죽는 것보다, 죽기 전까지 어떻게 사느냐가 더 공포인 것이다. 직장 사람들에게 결핵이라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거나, 가족들에게 감염사실을 스스로 밝힐 수 없어 힘들었다거나, 알리면 가정이 쑥대밭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껴 부모님 외에는 모른다거나, 하는 커밍아웃 관련 고민은 이 나라의 에이즈 환자들에게 일상이다. 에이즈 감염자의 성생활과 임신에 관련한 행위는 형사법적11)예방법의 인권 침해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19조(전파매개금지행위) 감염자는 다음 각호의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1. 대통령이 정하는 감염의 예방 조치 없이 행하는 성행위 2.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타인에게 전파할 수 있는 행위 ■제25조(벌칙)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1. 제9조 제 3항의 규정에 위반하여 혈액, 수입 혈액제재, 조직, 정액 또는 매개체를 유통, 판매하거나 사용한 자. 2. 제 19조의 규정에 위반하여 전파매개행위를 한 자. 으로 세세하게 처벌조항이 마련되어 있으며 법적으로 정해진바 없이도 돈을 벌 권리, 사람들의 관계망 속에 있을 권리 등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자신이 HIV감염임을 밝히지 않고 성관계를 맺을 경우에는 전파매개금지 행위에 근거하여 처벌을 받는다. 그렇다면, 자신이 HIV감염인 임을 밝히고 서로 합의 하에 맺은 성관계는 어떨까? 성행위를 통한 에이즈 전염률이 1%에 미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 또한 전파행위로써 처벌 받는다. HIV감염인의 임신, 출산 또한 불법이다. HIV감염 가능성 있는 아이를 낳을 것이므로. 에이즈가 진정으로 의료적 문제일 뿐인 사회라면 에이즈 황자의 인권은 더 많이 보장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에이즈 담론은 온갖 공포증과 오해와 무지, 편견에 구속되어 있다. 이미 에이즈 문제는 의료적 방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이다. 에이즈 감염인을 기본 인권의 소유자로, 복지 서비스 대상자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은 국민을 에이즈로부터 안전하게 하는 것이 일 순위이고 그 다음이 에이즈 환자의 인권인데, 이렇게 가서는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감염자로 분류되는 동시에 인권이 사라지는데 어느 누가 제 발로 에이즈검사를 받을까. 예방을 우선으로 하는 이상, 잠재적 감염자들은 숨어들 것이다. 다시, WELCOME TO AIDS 사실, 웰컴 투 에이즈는 괴담 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이 아니다. 2004년 중국에서는 국가의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처우에 불만을 품은 HIV감염인들이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자신들의 혈액을 담은 주사기를 들고 돌아다니며 아무에게나 주사바늘을 꽂은 일이 일어났다.12)<한겨레> 제538호, 60P 온 중국을 그야말로 공포에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 사건 이후로 중국정부는 에이즈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이다. 가족단위로 주민신고를 할 수 있는 자녀의 수를 한명으로 정했을 때조차도 공급하지 않았던 콘돔을 지금은 동네마다 무료 자판기에 비치해 두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사건이 있었다. 2002년에는 월드컵과 미선이 효순이 사건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월드컵 직전 여수에서는 그야말로 웰컴 투 에이즈 괴담처럼 번진 일이 있었는데, 성매매 여성인 K씨가 자신ㅇ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숨기고 약 5,000여 명의 남성들과 성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 남성들은 콘돔 사용을 기피하였던 터라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 개입으로 이 지역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HIV검사까지 실시되었다. 아주 시끄러워 질 참이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이 사건은 어느 여성의 비양심적으로 범죄적인 행위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채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에 그쳐있다. 양성반응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와 2년 남짓 동거한 애인조차도 음성으로 반응하였다. 그렇다면 에이즈란 과연 있는 것인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HIV검사의 신빈성에 대한 의심정도는 일어날 만하지 않았을까? 정부까지 개입해서 HIV검사를 실시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 검사에서 양성 반응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자 모든 것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으며 놀랄 만큼 조용해졌다. 단, 에이즈예방법에 의거하여 K씨는 실형 8개월을 선고받았다. 여기까지 언론을 통해서 기사화된 이야기이다. 정말 K씨는 자신이 HIV감염인 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성매매 지역으로 걸어 들어가기라도 한 것일까? K씨는 HIV양성 판정을 받고부터 어느 일자리를 구해도 한 달 이상 일할 수 없었다. 보건소 당국에서 달마다 일터로 찾아와 고용주에게 K씨의 HIV감염 사실을 밝혀 번번이 쫓겨났기 때문이다. 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빚은 점점 불어갔고, 결국 K씨는 보건증을 요구하지 않는 음지에서 성매매를 하게 된 것이다. K씨의 이 같은 사정이야 어쨌건 간에, 그녀가 HIV감염인 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모든 언론과 재판장에서는 그녀를 마녀 사냥하듯 몰아가 실질적으로 그녀가 아무에게도 에이즈를 전염시키지 않았음에도 실형 8개월을 선고했다.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파장 앞에서는 그 일이 어떠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인지에 대한 배려가 설 자리가 없었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도, 비판과 옹호의 경계도 없이 한 결 같은 공포와 비난뿐이었다. 에이즈는 이데올로기이다 중세 의학자들은 자궁이 여성의 몸속에서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믿었다. 연금술사들은 다섯 가지 성분만 있으면 금을 창조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지구는 고정되어있고 움직이는 것은 하늘이라고 믿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을 때 지구는 둥글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이런 것들을 알게 되고서 들었던 생각은, 지금도 굉장한 가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에이즈가 가설인지 실체인지, 실체라면 어디까지가 믿을만한 것인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에이즈는 없다고 말하는 과학자/의사들은 갈릴레오들인걸까? 혹은 그저 反체제 성향인들 인걸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에이즈 환자라고 말해지는 사람들이 받는 고통의 많은 부분이 병과 그에 따른 육체적 고통으로 묶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프기도 전에 병 때문에 죽은 듯 살아야 한다면, 그저 불안한 마음에 받은 HIV검사에서 양성으로 판정되어 전과 다름없이 건강함에도 전과 같이 살 수 없게 된다면. 아파서 죽을 것 같기 전에 외로워서 죽을 것 같다면. 문제는 이런 것들이고, 그래서 에이즈는 병이기 전에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에이즈가 이데올로기인지, 병인지에 관해 의학적으로 논하는 것은 교지편집위로서의 위치와 지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위치에서 더 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말은 에이즈가 의학적인 병이든 가설이든 간에, 현실에서는 ‘그것은 죄, 그것은 더러운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상한 공포와 혐오와 낙인과 죄책감과 고립 등등, ‘괴로운 것’들의 점철로 말이다. 에이즈는 하나의 은유이기도 하지만 실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에이즈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면 실질적 병인에 대한 연구와 치료지원과 에이즈란 없다는 주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에이즈란 없다는 말을 하며 동시에 에이즈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라니, 명백한 아이러니이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를 부정하는 두 가지 명제를 모두 만족시키지 않고는 실질적 낙인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에이즈 환자의 삶을 보호할 수도, 환자가 아닌 사람들의 엉뚱한 공포감을 단절시킬 수도, 사회적 단죄기제로서 존재하는 에이즈를 잠재울 수도 없을 것이다. 당신의 옆에 있는 사람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에(오직 ‘에이즈 환자’라는 것만을 남겨놓기 위하여 모르는 사람으로 설정하는 것이 좋겠다) 당신의 건강에 대한 염려와 함께 왠지 모를 찝찝함이 생길 것 같은가? 그것이 바로 에이즈 이데올로기이다. 참고문헌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에이즈 재평가를 위한 인권운동 모임, 『에이즈는 없다』, 휘닉스 박기숙, 「HIV/에이즈 감염인을 위한 사회복지 서비스에 관한 연구」 본 사이트의 저작물은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정보공개라이선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136-701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5가 1번지 고려대학교 학생회관 3층 석순편집위원회 02)929-8062 | kusuksoon at 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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