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18(화) |
부탁이에요. HIV 양성인을 차별하지 마세요. 차별이 뭔지 아시지요? 요즘은 고급 단어로 사용되고 있던데, 이를테면 마케팅 전량 기획안을 쓸 때 꼭 빠지지 않는 말이 <경쟁 업체와의 차별화>입니다. 좋게 말한다면, 기업이든 개인이든 상대와 비교하여 특별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장점을 '차별화'라고 일컫습니다. 그러나 이런 차원의 차별화나 사회적으로 제도화된 관행으로서의 차별화나 서로 다를 게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차별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 맛을 알지요. 더럽고 역겨운 맛! 저는 차별을 조금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태생적으로 얼굴이 좀 못생긴 한편 어리버리하고 순진해서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 알기 전까지는 저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더군요. 이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10대 때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로 약간 말을 더듬고 날이 흐리면 무릎이 아파서 절게 되는데, 지하철이나 육교의 계단을 걸을 때면 사람들이 한 번은 더 쳐다보고 지나가더군요. 그런데 엊그제 회색으로 염색을 한 후 사람들을 만났더니 그들은 하나같이 저를 어렵게 생각하더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자적인 권위가 느껴진다나요? 어쨌든 서로가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더 이쁘게 하려고 꾸미고, 남성들은 더 멋있게 차림새를 한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던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한달 전 이 점에 대해 깊이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린 것이 머리 염색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저는 더 깊은 실체까지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움은 차별이란 걸 말입니다. 우리의 차별적 관념은 평소 공기처럼 머리 속에 떠돌고 있다가 특정 대상(아름다운 여성이라고 가정하지요.)을 만났을 때 감정에 이어 생각으로 발현됩니다. 아름답다는! 이 관점은 사회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객관성은 사회성입니다. <- 이건 아주 중요한 명제입니다. 객관적인 것으로 포장된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바로 차별이란 그것. 객관적으로 포장된 것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관념입니다. 혹시 성장장애가 뭔지 아시나요? 유전적인 어떤 이유로 육체적 성장이 멈춘 사람을 일컫습니다. 보통 성인이 1950cm 정도면 성장장애라고 하여 장애 2등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유전적인 어떤 이유로 키가 훌쩍 커서 190cm 이상되는 사람에 대해서 성장장애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부러워하지요. 이들 성장장애인들이 하는 스포츠가 농구이고, 이 시대에서 가장 인기 좋은 게임입니다. 그렇다면 키를 객관적으로 재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런데 왜 키가 작으면 장애인이고, 키가 크면 부러움의 대상이 될까요? 이 사회의 가치는 노동력의 가치로 평가되는데 키가 작으면 현장 작업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따라서 키가 작은 사람들은 천대를 받은 채 실업자가 되어 정부의 생계보조로 겨우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편견을 기준으로 키가 작은 사람을 '성장장애 장애인'으로 규정하여 사회적 부조 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결국 키가 작은 사람은 완벽히 차별 속에 갇혀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은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됩니다.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보다 극소수의 성공한 사람과 무능력함 및 무지함 때문에 누가 밥을 먹여줘야 살아갈 수 있는 불쌍한 사람이 그것입니다. 물론, 편견에 불과하며 이 편견이 정부와 자본가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분리정책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무서운 관행입니다. 제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을 때 행인들이 저를 대상화시키고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한 것은 바로 이 편견과 편견이 낳은 차별에서 온 선입견입니다. 하지만 다리가 안 아픈 날에는 제가 100m를 15초에 달릴 수 있음을 그들은 생각치 않을 것입니다. 또 어리버리해도 제 마음 속에는 이 세상을 개혁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도 알고 싶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생각하고 싶지 않겠지요. 온갖 차별로 끔찍하게 일그러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즉 내가 차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남을 차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남을 더 차별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발생한 것이 부러움(자신은 갖추지 못했다는 열등감)입니다. 아니라고요? 그럼, 당신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저 역시 누군가를 부러워한 적은 없지만 어줍찮게 잘난 척은 한 적이 있기에 당신의 수준에 못따라갑니다. 요즘 세계적 추세는 HIV 양성인을 장애인으로 규정하자는 것입니다. 미국와 일본에서는 HIV 양성인을 장애인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게 가능한 까닭은 미국과 일본에서는 내부 장기 장애도 장애인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으로 보는 관점은 두 가지인데, 외부 장애와 내부 장애로 봅니다. 선천적·후천적으로 외부 신체 기능에 장애가 생긴 사람을 외부 장애라고 하며, 당뇨병이나 심장마비 등으로 인해 신체 내부에 장애가 발생한 사람을 내부 장애라고 합니다. 현재 한국은 외부 장애만을 장애로 인정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전체 정부예산 중 단 1% 미만을 사회복지 예산으로 사용하고, 또 이중에서 0.01%만을 장애인 예산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장애인이 증가하면 예산 집행 및 부담이 늘어난다는 데 있습니다. 즉, 내부 장애 장애인이 주체적인 단체를 만들어 정부와 싸우지 않는 이상 절대로 장애인 인정을 안 해줍니다. 참고로 한국은 1945년 건국 이래 2003년까지 단 한 번도 사회복지 예산이 1%를 넘은 적이 없습니다. 왠만하면 깨기 어려운 철의 법칙이지요. 잘 알잖아요. 한국 사람은 점심으로 철갑상어 알을 먹고 저녁에는 유황오리를 먹으면서 잘 살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신경을 안 쓴다는 걸. 저도 오늘 점심을 10만원 짜리 떡뽁기로 해결했지요.^^ 그러므로 HIV 양성인을 장애인으로 규정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고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HIV 양성인을 인정하면 다른 내부 장애도 인정해야 하는데, 이럴 때 장애인으로 신규 등록할 사람의 수는 적어도 500만 명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사회안전망 설치 부대 비용이 얼마나 비싼지 잘 알기에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일본처럼 배포 있는 행동을 못합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에이즈 예방 단체들은 단 한 번도 연구를 한 적이 없는데 대단히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 많은 정부 지원금을 받아서 어디에 써는 건지. 하지만 저는 정부의 이러한 방침을 환영합니다. 앞서 성장장애가 실제로는 장애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차별로 인해 장애인으로 규정되어 앞으로도 오랫동안 장애인이라는 편견에 휩싸여 있어야 하는 것처럼, HIV 양성인이 장애인으로 규정될 경우 '면역저하'하는 비과학적 내부 장애가 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지금보다 더 심각한 차별을 겪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HIV 양성인에 대한 당신의 색안경이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압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 차원에 근거합니다. 1. 에이즈에 대해 아는 게 없다 2. HIV 양성인을 만나 본 적이 없다. 3. HIV 양성 판정을 받으면 내 인생은 끝난다. 그러나 지금 HIV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그 전에는 에이즈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며, 지금 우리 모임을 통해 에이즈에 대해 알았다손 치더라도 어떤 양성인은 놀랍게도 다른 양성인을 만나기를 만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HIV 양성 반응을 보인 걸 인정하기 싫은 것이며 그를 만나면 불안함이 닥칠까봐 걱정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사실이더군요. HIV 양성인의 불안함은 얼마 후 사라지고 다시 안정된 생활로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과학적 범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결코 자기 안에 있는 악마와 싸우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HIV 양성이 아닌 여러분도 생각을 달리 하십시오. 단지 아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걸! 당신의 관점이 당신의 세상을 창조한다는 걸 확신해야 합니다. 편견을 가지면 편견이, 차별을 하면 차별을 당한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 인생의 창조주입니다. 여러분도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차별을 받으면서 살아왔을 겁니다. 차별 받은 게 억울하다고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얕보지 마십시오. 저 같은 사람을 무시해서 코를 세운다고 행복해지진 않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조금도 다를 게 없다면 굳이 사회적 위치와 지위에 의존하여 우월감을 느끼지 마십시오. 우월감은 불행입니다. 차별을 하는 대신 마음을 열고 사랑을 하십시오. 그와 내가 동등한 인격이란 걸 인정하셔야 합니다. 동등한 인격은 동등한 영혼입니다. 아무리 신을 믿지 않더라도 위기 상황이 되면 저절로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나와 내가 아닌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길 권유드립니다. 저는 매일 밤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모임을 방문한 사람들이 명확한 앎과 실천적인 인식을 익히고, 자기 삶의 본능을 일깨워 에이즈의 진실을 더 널리 퍼지게 도와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우리가 드린 기도의 반응입니다. 차별 없는 세상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한 공동의 보조입니다. HIV 양성인이 온전한 인격체로 대접받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의 국민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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