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6(목)
에이즈 공포증자를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에이즈 공포증자를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이 사회에는 대단히 악의적이고, 가장 천박하고 저열한 수준의 수수께끼가 있다. '에이즈'라고 불리는 이 수수께끼는 인간의 정신을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고귀한 삶을 비천하고 지옥같은 감정의 늪으로 끌어당긴다.

인간 세상에서 이보다 더 더럽고 추악한 늪을 찾아보기 힘든데, 일단 이 늪 속에서 빠져들면 주위의 적극적인 도움 없이는 헤쳐 나온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며, '절망'이라는 악마의 주술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혹은 그녀는 행복한 삶을 포기해야 하며, 살아가는 것과 삶 자체를 너무나 두려워한다는 것이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했던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일견 대구 지하철 참사와도 비견되는 이 끔찍하고 가혹한 괴로움은 우리 몸의 세포 하나 하나마다 삶과 죽음의 곡예를 내지르고 있고, 수수께끼는 마치 지성을 가진 생물인양 교묘하게 우리의 뇌와 마음을 압박하고 목 조르는 지금, 바로 지금. 또 한 명이 자살했다. 아니, 자살로 위장한 살해를 당했다.

에이즈라는 저 빌어먹을 쓰레기 가설로 인해!

에이즈 가설에서 자살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단테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곡의 지옥편에서) 죽어 마땅한 사람들은 에이즈 공포에 휩싸인다. 단지, 몸에 빨간 뽀드락지가 생겼거나 감기에 걸렸고 또는 고통스러운 나머지 입맛이 없어져서 몸무게가 좀 줄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게 바로 우리 사회에서 사형선고를 내리는 기준이며 에이즈 가설의 위대한 정체이다. 수수께끼는 의외로 쉽게 풀린다.

사실 남한에 존재하는 각 에이즈 예방 기관에는 '당신은 10년밖에 못 살게 된다'는 걸 입증(?)하는 에이즈에 대한 글, 그림 등 각종 자료가 풍부하다. 나는 이 풍부한 자료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이 앞선다. '아~ 에이즈 재평가 모임에도 저 정도 수준으로 자료를 생산하고 가공할 수 있는 돈과 뛰어난 인력이 있었다면….' 분명히 변화가 있을 거라고 확신을 가진다. 더 이상 에이즈 문제로 인해 초조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 자살하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솔직히 말해서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내겐 묻고 또 묻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별로 없다.) "에이즈 예방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아~ 에이즈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가?" 가급적이면 즉석에서, 차분하게 답변해주기를 원한다. "HIV 검사를 받아보세요'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번에 자살한 사람도 HIV 검사를 받은 뒤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살을 했다. 아내는 욕실에서 목을 매고 목숨을 끓은 남편을 보고 경악, 슬픔, 괴로움, 막막함, 절망 등 백마디 단어로도 형용하기 힘든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에이즈가 있다는 가정 하에서 저질러진 일대 사건이다.

나는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의 관계자와 함께 연맹 사이트에서 논쟁을 벌인 바 있다. 이때만 해도 그들은 참 순진했다. 감히 반체제 에이즈 활동가와 토론을 하다니! 덕분에 그들은 토론이 무엇인지 톡톡히 배웠고 나는 가르쳤다. 이 토론에서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소위 에이즈를 일으킨다는 HIV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은 뒤에 나와의 토론을 삭제했다) 그는 반문했다. "그래도 에이즈는 존재하지 않습니까?"

                                                        과연 그럴까? 과연….

이 거대한 우주에는 지구라는 행성이 존재한다. 지구에는 60억에 달하는 인구와 함께 이루 셀 수 없는 종류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함께 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한다. 온갖 질병을 일으키는 것들과 함께 살다니! 그래서 이들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퇴치를 삶의 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좋다. 좋아. 다 죽여버려라. 그러나 일단 알고 죽여라. 지구에서 가장 먼저 발생한 생명체는 박테리아다. 따라서 진화론에 따른다면, 박테리아는 인간의 선조인 셈이다. 그 다음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지구가 정상적으로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90년대에 과학자들이 사막에 지은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인공 환경이 실패했던 이유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부족에 있었던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한 가지 더 알아볼까? 인간의 몸무게 중 10%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무게이다. 즉, 우리는 박테리아, 바이러스와 함께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으며, 이것이 건강한 삶인 것이다.

이렇게 건강한 삶을 구성하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중에는 약간 특별한 녀석이 있다. 이름하여, 리트로 바이러스. 분자 생물학자 중 일부는 리트로 바이러스가 암을 일으키는 등 주요 발병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70, 80년대에는 리트로 바이러스를 때려 잡기 위한 연구가 국가 정책 사업이었고, '암과의 전쟁'이라는 미명 아래 엄청난 예산(국민의 세금)이 책정되었다. 그러나 국민이 피땀 흘려서 벌어 납부한 세금은 모두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리트로 바이러스는 죄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랬다. 리트로 바이러스는 암을 일으키지 않았다. 게다가 이 바이러스는 외인성이 아니라 내인성이었다. 즉, 밖에서 침투한 게 아니라 태아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사실상 우리 몸의 일부였다. 이 쪼끄만 녀석이 왜 존재하며, 뭘 하는 건지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양보하고 또 양보해서 리트로 바이러스 중 일부가 인체에 해가 된다고 할 지라도, 그 증상은 아주 가벼운 감기 증상 이외에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은 '리트로 바이러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터 듀스버그 박사에 의해 명백히 증명된 사실이다.

그런데 리트로 바이러스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일군의 과학자들은 이 바이러스에 색다른 이름을 갖다 붙였다. HIV라는! 문제는 리트로 바이러스가 이미 분리가 된 바이러스라는 점이다. 형태, 성격, 모양 등 신상명세서가 다 알려져 있다. 마치, 주민등록증에 찍힌 지문처럼.

하지만 HIV는 분리가 되지 않았으며 또 분리가 되지도 않는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HIV 사냥꾼(에이즈 과학자)들은 '바이러스는 분리할 필요가 없다. 분리란 개념은 낡은 것이다."고 강변한다. 심지어 HIV/AIDS 가설을 부정하는 반체제 에이즈 과학자들을 "엉터리"라고 몰아 부친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묻겠다. 1982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월터 길버트 박사가 엉터리인가? 1993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케리 뮬리스 박사는 천박한 괴짜인가? 1978년 바이러스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로버트 코흐상을 수상한 하인즈 루딩거 산거 박사는 미친 사람인가? 전자현미경 사진 분야의 세계 1인자인 에티엔느 데 하벤 박사는 또라인가? 단백질 억제제를 디자인했고 이 부분에 특허권을 갖고 있는 등 20년 이상 에이즈를 연구했던 데이비드 라스닉 박사는 형편없는 작자인가? 버컬리대의 피터 듀스버그 박사나 산화 이론의 대가인 엘렌니 박사는 잠꼬대나 하는 인간인가?

위에 열거했던 인물들은 모두 에이즈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나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들을 "엉터리"라고 모욕했던 조영걸 박사는 반드시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조영걸 박사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PCR 검사를 개발했던 사람이 바로 케리 뮬리스 박사이다.

나는 집요한 사람이다. 앞서 에이즈 예방 기관에 부탁했던 질문을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할까한다. '당신들은 정말로 에이즈가 있다고 확신하는가? 어떻게, 무슨 수로 확신하고 있는가? 그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가? 왜 공개 토론을 회피하는가?"

나는 에이즈 예방 기관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이 에이즈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참 좋은 세상, 참 좋은 세월에 태어났다. 지금이 에이즈 지옥 세상이기 때문에 헛소리를 해도 미쳤다는 비난을 받지 않고, 가설을 정설로 주장하는 등 그로 인해 에이즈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발생해도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적어도 백만명 이상이 진지하게 자살을 계획했고, 이중 일부는 실제로 밧줄에 목을 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에이즈 가설에 속았다고 선언하라

시대는 변하고, 역사는 발전한다. 무려 600만명이 한꺼번에 살해당한 홀로코스트, 수십에서 수백만명이 일시에 학살되는 인종청소, 적어도 수천만명을 죽음과 절망의 관념으로 중무장시키고, 세포를 살해하는 치료제(?)를 팔고 있는 에이즈 가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엄연히 주인행세를 하고 있어도, 언젠가는 꼭 야만과 저주는 물러갈 것이다.

에이즈 재평가는 시대적 과제이다. 이 과제를 수행하는 나는 문제를 회피한 채 "미친 놈"이라고 욕질을 해대는 일부 에이즈 예방 활동가, "죽여버리겠다"고 삿대질을 하는 익명의 협박꾼들보다 오늘도 자살을 계획하고 또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속이 타고 썩는다. 새로운 자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머리를 망치를 얻어맞은 것 마냥 그 자리에 서서 얼어붙고, 축 늘어진 오징어 다리처럼 벽에 쓰러져 한 동안 멍한 상태가 된다. 이게 도대체 뭘 하자는 건가!

이 글을 읽고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 문제에 관해 심각하게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에이즈 예방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틀림없이 마음 착하고 제법 똑똑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에게 권유한다. 대형 서점에 가면, 우리 모임에서 출간한 [에이즈는 없다]가 있다. 그 책을 사서 읽어야 한다.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빨간 밑줄을 그어라. 모르는 게 있으면 내게 물어보면 된다.

그런 다음 마음의 준비를 하기를 기대한다. 이왕이면 빠른 시간 안에 사직서를 제출하면 더욱 좋다. 사직서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게 가장 좋다. 미국의 에이즈 예방 기관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어떤 사람이 바로 이 행동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에이즈 가설에 속았다." 당신의 양심적인 선언이 수많은 에이즈 공포증자를 수렁에서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자살 사건이 있기 전 나는 우연히 알고 지내던 어떤 여성으로부터 자신의 형부가 HIV 양성 판정을 받고 자살을 했으며, 그 충격으로 인해 어머니가 암에 걸려 피눈물나는 투병 생활 끝에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HIV 양성인과 에이즈 공포증자의 자살은 단지 그만의 자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까지 불러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자살한 그 사람의 아내와 어머니, 형제, 친척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에이즈 가설이 불러일으킨 지옥 같은 상황은 전 국민적인 문제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제발 부탁한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아니, 죽이기 전에 그 이유라도 알고 죽어야 되지 않는가? 아무리 야만적인 국가라고 할 지라도 사형수에게 '죽어야 될 이유'를 알려준다. 그러나 HIV가 존재한다는 논문 한 장, 레퍼런스 하나 없는 것들이 도대체 왜 "고열이 있고, 몸무게가 빠지는 건 에이즈 증상이니까, HIV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하는가? 그 권유가 죽음보다 더 끔찍한 사형선고라는 건 아직도 모르고 있다면 에이즈 예방 활동가들의 의식은 황폐한 겨울 땅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에이즈 공포증자들은 HIV 검사를 받아보라는 권유만 받고도 벌써부터 자살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서 긴 밤, 겨울이 지나가기를 원한다. 자살한 사람들의 원망과 피를 먹고 자란 새싹은 희망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에이즈에 대한 각성과 올바른 인식, 토론이다.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