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46
동성애자 홍석천 사랑이야기!  

홍석천씨의 이야기를 통해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좋은 계기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 역시 한때 에이즈 포비아였더군요.

여성중앙 2002년 2월호  
 
지난 9월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동성애 경험을 고백해 화제가 되었던 탤런트 홍석천(30세). 동성애자로 살며 그가 느꼈던 고뇌와 네덜란드인 동성친구와의 사랑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지난해 연말 출간된 그의 수기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취재 · 안용호 기자  

지난 한 해 동안 연예계에는 굴직굴직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연예인 부부의 이혼, 톱탤런트와 미남 야구선수와의 결혼 등. 그 중에서도 세인들을 가장 놀라게 했던 사건 하나를 꼽으라면 당연히 탤런트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들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언급 자체를 금기시했던 우리 사회에서, 그것도 연예인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의 동성애 고백은 연예인으로서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회의 반응은 의외로 홍석천을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커밍아웃 이후 ‘동성애’에 대한 토론이 TV와 신문지상에서 이루어지고, 언론은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을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도중하차하는 불이익도 겪었지만, 홍석천은 커밍아웃을 통해 부끄러움 없는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다.

커밍아웃 이후 그는 주로 뮤지컬과 인터넷 방송 등에서 활동했다. 시트콤이나 연예정보 프로그램 등에서 얼굴을 보이기도 했지만, 예전처럼 브라운관에서 그를 자주 볼 수 없게 되었다. 오랜만의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 그는 지난 지난 3개월 동안 자전수기 집필에 몰두했다. 동성애자로 살아온 자신의 서른 살 삶의 흔적을 글로 남기고 싶었던 그는 못다했던 가슴속 이야기를 책을 통해 모두 털어놓았다. 그의 자전수기 『나는 아직도 금지된 사랑에 가슴 설렌다』는 2년 동안 사랑을 나누었던 네덜란드인 남자친구 토니와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

2년 전 홍석천은 한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토니’라는 네덜란드인 남자친구를 만난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고 첫눈에 사랑을 느낀 두 사람은 그날 밤을 함께 지새며 불꽃같은 사랑을 나눈다. 여기서 낯선 외국인 친구와의 첫날밤을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자칫 추하게 보일 수도 있는 동성간의 행위를 마치 아름다운 영화 장면처럼 써 내려가고 있다. 한국에서 광고회사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던 토니는 게이가 아니었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다. 그 사실을 안 홍석천은 토니의 아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며칠 밤을 괴로워하며 지샌다. 토니가 아내와 이혼한 후 홍석천은 더욱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결국 두 사람은 한 집에서 부부처럼 함께 살며 사랑을 이어간다.

푸른 바다 속에서 하나가 됐던 토니와의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

“캄캄한 방에 촛불 하나. 보첼리의 ‘time to say goodbye’를 들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있다. 이곳은 그와 나만의 천국이 되어버렸다. 방 안의 모든 것들이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해주었다.(수기 중에서)” 토니와 함께 살면서 그는 자신의 가슴속 이야기를 하나 둘 털어놓는다. 어린시절 서로 고추를 만지고 장난쳤던 아홉 살의 형 얘기, 아이들과 발가벗고 놀면서 자신도 모르게 맨살의 접촉을 느꼈던 기억.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중3 때 도서관 뒤 으슥한 창고에서 학교 불량배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리는 부분이다. 입 속에 성기를 넣는 치욕을 당한 그는 모욕감과 두려움에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IMF 한파는 달콤한 사랑에 취해 있던 두 사람에게 시련을 가져온다.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당하면서 토니는 방황하기 시작했고, 그런 토니의 마음을 잡아주기 위해 홍석천은 남자친구의 고향인 네덜란드로 함께 떠난다. 네덜란드에서 만난 토니의 부모는 아들이 데려온 동양인 남자친구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토니의 형과 형수도 동성끼리의 사랑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이해해준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없는 네덜란드에서 홍석천은 모처럼 영혼의 휴식을 즐긴다.

네덜란드 여행에서 돌아온 홍석천이 갑자기 몸의 이상을 느끼고 에이즈 검사를 받는 장면은 동성애자들의 아픈 뒷모습을 엿보게 해준다. 연예인이란 신분이 노출될까봐 애를 태우다가, 정상이라는 검사 결과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 출연하던 시절, 오랜만에 빈 촬영 스케줄을 이용해 떠난 애인 토니와의 태국여행도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각각 네덜란드와 한국에서 출발해 만나기로 한 두 사람의 여행은 홍석천이 공항에 여권을 갖고 나가지 않아 엉망이 된다. 어렵게 찾아간 태국의 한 섬. 먼저 와 있다는 징표로 빨래줄에 입던 옷가지와 즐겨 읽던 잡지를 널어놓은 토니의 사려 깊은 행동에 홍석천은 감동한다. 낯선 이국의 섬에서 어렵게 만나, 바다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사방에선 풀벌레와 파도와 달빛과 모래 알갱이들이 내는 오묘한 소리의 하모니가 울려 퍼졌다. 하늘에선 보름달이 은은한 빛으로 사방을 어루만졌다. 토니의 윤곽이 어렴풋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 감촉은 어렴풋하지 않았다…(중략) 우리는 뒹굴며 서로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채웠다. 하나가 된 우리의 육체는 어느새 바다 속에 들어가 있었다.(수기 중에서)”

두 사람의 낭만적인 사랑은 토니가 일자리를 찾아 뉴욕으로 떠나면서 비극으로 바뀐다. 토니가 먼저 뉴욕에서 직장을 얻는 동안 홍석천이 한국에서 돈을 벌고, 자리를 잡은 후 함께 뉴욕에서 산다는 꿈같은 계획. 두 사람의 꿈은 뉴욕에서 토니가 다른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깨지고 만다. 혼자가 된 홍석천은 한국에서 토니를 그리며 살아간다. 시드니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토니와의 금지된 사랑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수기는 끝을 맺는다. 그의 수기를 읽고 나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동성간의 섹스 장면, 동성친구에 대한 애틋한 느낌들이 생소하기도 하지만, 가식 없는 솔직한 고백이라 쉽게 동감할 수 있다. 집필을 막 끝내고 만난 자리에서 홍석천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지니고 있던 계획 하나를 이루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지만 지면이 모자라 다 싫을 수 없었던 게 아쉽다는 말도 덧붙였다.

커밍아웃 이후 홍석천은 동성애자 인권운동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캐럴음반을 낸 그는 앨범 수익금을 동성애자 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책 집필을 마친 직후 그는 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남자친구 토니와의 추억이 남아 있는 태국에서 그는 금지된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진 않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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