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323
생존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  

[경향신문 2005-03-25 18:06]    

〈김순천 르포작가〉

살다보면 심장이 딱 멈춰버릴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내가 안산 신도시 변두리에서 노점상을 하는 박인섭(42)·윤은경(32) 부부를 찾아갔을 때도 그랬다. 며칠 전까지 그곳 길거리에서 자장면을 팔고 있던 젊은 부부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신도시를 뒤졌는데도 만날 수 없었고 휴대전화도 주인의 사정으로 끊겼다는 신호음만 들렸다.


그동안 그들은 저녁 7시부터 새벽 5시까지 밤새 자장면을 팔면서 여러번 쫓겨다녔다. 구청은 포장마차를 설치하던 곳에 커다란 꽃 화분을 놓았고, 용역을 동원하여 국자며 냄비며 의자들을 모두 실어가버리기도 했다. 점점 신도시 중심에서 변두리로, 변두리에서 더 변두리로 쫓겨나더니 지금은 더 이상 그곳에서 노점을 할 수 없어 어디론가 떠나간 것이다.


28년 단련된 자장면 만드는 기술, 덩치가 크고 호탕한 웃음의 인섭씨와 깔끔하고 부지런한 은경씨. IMF 이후 운영하던 중국집이 망하고 빚을 내 마지막으로 선택한 노점이었다. 일이 힘들어 베개에서 머리를 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무거울 때보다도, 밤새 아들을 혼자 집에 내버려두고 노점을 할 때보다도, 이리저리 쫓겨다니면서 노점을 해야 하는,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없는 불안정한 생활이 제일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던 그들이었다. 그 어려운 틈에서도 자장면이 어느 정도 팔렸을 때는 양로원의 노인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주었던 선한 부부였다. 노점을 하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심장이 무너졌던 것이다.


-IMF이후 신빈곤층 크게늘어-


IMF 이후로 중산층을 포함한 ‘신빈곤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되면서 이런 ‘생존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LG엘리베이터에 다녔던 류홍대씨(33)는 회사가 다국적기업인 오티스에 넘어가자 직장을 나와서 엘리베이터 딜러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그럭저럭 버텼는데 지금은 생활비도 가져오기 힘든 형편이다. 그는 아무래도 겸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생각해 놓은 일이 있냐고 물으니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3살, 4살 된 연년생 아들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생각할 때마다 새벽에도 식은땀 흘리며 깨어나 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서점을 했다가 한번 망하고 빚을 얻어 갈비집을 차렸는데 올해까지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하는 윤명호씨(56)도, 새벽에 남구로역 인력시장에서 일을 구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박대길씨(50)도, 박인섭씨 부부처럼 다 생존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며칠 전에 실업문제 담당자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사람들이 구직을 단념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업이 구해지지 않아 구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공식집계로만 11만명이 넘고,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는 주당 18시간 미만 비정규직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어떤 실업담당 책임자는 하도 문제가 심각하여 앓아누웠다는 말도 들었다. 생존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한 감정, 우울증과 삶의 회의에 시달리고 스트레스로 건강이 파괴된다. 어엿한 성인으로, 인간으로 살아가기 힘들게 된다. 타인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삭제된다. 그 중 일부는 너무 두렵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공격적으로 바뀔 수 있고 이런 두려움 속에 국가주의가 싹틀 수 있다.


-그들의 불안 국가가 돌봐줘야-


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먹고 살길이 없다면, 그것도 자신 혼자만이 아니라 자식까지 있다면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인 ‘생존지점’에 놓이게 되고 그 이상을 넘어버리면 그들에게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 노숙자, 범죄자가 되는 것을 훨씬 넘어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하기 때문에 타인을 파괴하기보다는 자신을 파괴한다.


그들에게는 목숨을 함부로 버린다는 도덕적인 비난도, 아름다운 꿈도, 인간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온갖 행복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런 세상에 대한 불안이고 절망이고 두려움이다. 국가는 그런 ‘생존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의 불안을 돌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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