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306
“링컨은 돈을 위해 일한 변호사였다”  


노예 소유주 위해 변호까지…美, 링컨 대통령 재조명 활발  


미국인들에게 가장 훌륭한 대통령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돈을 위해 일한 변호사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링컨 대통령은 심지어 노예 소유주를 위해서까지 변호를 했다고 한다.

미국 시사주간지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는 최근 링컨의 인간적인 면모를 재조명하는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16대 대통령 링컨은 미국 민주주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문구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을 말한 ‘게티스버그 연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링컨에 대한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 자수성가 해 국가의 지도자 자리에까지 오른 완벽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젊은 시절의 링컨은 알려진 것보다 가난하지 않았고 덜 인격적인 인물이었다.

링컨은 1809년 켄터키주의 한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가난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정규교육을 1년도 채 받지 못하고 8살 때부터 벌목꾼으로 일했다. 어머니는 그가 9살 때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집을 떠나있는 시간이 많아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는 22세 되던 1831년 집을 나와 일리노이주로 무작정 떠난다.

소도시 뉴 세일럼으로 옮겨온 링컨은 대장장이, 가게 점원, 우체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독학으로 변호사가 된다. 변호사로서 그는 정의의 편에 서서 일을 했다기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살인자, 간통사건 피의자, 의료과실 사건 등 의뢰인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맡았으며 학자들은 그가 당시 변호사들의 2배 정도의 사건을 맡아 일리노이주에서 가장 부유한 변호사에 속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그는 당시 노예소유가 불법이었던 일리노이주에서 노예를 소유하려던 사람을 변호하기까지 했다.

정치인으로서도 그는 그다지 정의로운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가 된 뒤 일찌감치 정계에 진출한 그는 젊은 나이에 주 의회에서 4선을 하고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1860년 대통령이 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정치적 경쟁자를 매도하는 편지를 가명으로 지역신문에 보내기도 했으며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과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훗날 노예해방을 주도한 것과 반대로 주 의원 시절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려고 한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링컨의 여성관계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젊은 시절 링컨은 연인과 사별한 후 우울증으로 자살 소동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이후 켄터키주의 부유한 은행가의 딸 메리 토드와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은 불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친구인 조슈아 스피드와 동성애 관계 여부를 둘러싼 의문, 매독을 앓았다는 의심 등 이성관계 등에 있어서도 ‘완벽한 성인’이라기보다는 보통사람에 가까운 면모가 많이 엿보인다.

미국 시민들은 “새로 알게 된 링컨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가 존경심을 깎아내릴 수도 있지만 이번 기사를 통해 훌륭한 업적을 남긴 링컨이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보통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오히려 더욱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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