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95 |
성매매, 근절도 좋지만 피해여성 인권에 관심을 말 성매매 특별법 시행 100일…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여성들 이정은 기자 leeche2001@hotmail.com 2005년 1월 1일자로 마·침·내 성매매특별법이 시행 100일을 넘어섰다. 지난 3개월 간, 성매매특별법을 할퀴고 간 수많은 논란들을 되짚어보며 그간 이 사회가 얼마나 성매매 여성들의 현실에 무관심했었던가를 아프게 기억해 본다. 법 시행 초기, 대부분의 언론이 앞다투어 소개한 것은 성매매특별법이 '만들어 낼(것으로 기대하는) 악영향'이었다. 이들은 성산업의 업주를 인터뷰하고, 성산업 주변에 기생하는 상가를 취재하면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범죄자들의 엄살을 여과없이 전달했다. 성매매 여성들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을 때에도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성매매 합법화 논란에 불을 지폈다. 당시 일부 남성들이 '성매매특별법으로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했다'며 위헌 소송을 들먹거린 일까지 기억을 넓히면 그저 실소가 터져 나올 뿐이다. 예상치 못한 역풍에 "법 제정할 때는 별 소리 없더니…"라며 볼멘소리를 뱉어내던 여성부와 다시함께센터 등 여성단체는 궁여지책으로 성매매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지옥 같은 '피해' 사실과 탈성매매 여성들이 꿈꾸고 있는 (천국 같은) '희망'을 대조적으로 드러내 보이는데 주력했다. 성매매특별법이 담고 있는 성매매 '근절'주의의 당위성을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왜 그랬을까? 모두 알고 있듯, 성매매보호법은 출석의원 172명 중 기권 1명, 찬성 171명, 성매매처벌법은 출석의원 174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된 법안이다. 그 배경에는 군산화재라는 대형 참사가 있었다. 이 끔찍한 화재사건은 당시 '성매매'가 무엇인지에 대한 감조차 없었던 한국 사회에 일사천리로 성매매특별법을 만들어 내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태생적으로 성매매 여성들의 '피해'에 천착해 만들어 진 이 법은 결국 그 적용 대상이나 정당성조차 '성매매 피해여성'에게로 한정시키고 말았다. 왜 '피해'를 내세웠나 성매매특별법 시행 하루 전인 9월 22일, 여성부와 정부 각 부처가 주최한 '성매매 방지 캠페인' 행사를 돌아보자. 유명인사들의 인사말이 이어지며 그저 밋밋했던 이날 행사 중간, 돌연 대형 모니터를 통해 탈성매매 여성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과거의 처참한 경험을 토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모니터 속 여성들은 얼굴을 모자이크로 가린 채 '나는 이렇게 당했다'며 '피해'를 하소연하고 있었다. 한껏 축제 분위기였던 객석은 곧 숙연해 졌다. 그러고 보니, 그보다 한참 앞선 9월 1일, 개소 1주년을 맞은 다시함께센터(성매매 피해여성 자활지원 센터)의 축하행사장에도 탈성매매 여성들이 등장했었다. 하지만 이 날 여성들은 (앞서 경험담을 말해야 했던 여성들과는 정반대로) 신나는 음악에 맞춰 율동과 수화를 선보이며 분위기를 돋구는 역할을 맡았다. 물론 사진 촬영은 금지한 자리였다. 그러나 이 단체를 지원하는 서울시의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탈성매매 여성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는 이렇게 변했다'를 내보이는 것은 어쩐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성들은 이날 행사를 위해 일주일을 넘게 연습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 중엔 쉼터에 입소한 지 갓 한 달이 넘었다는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성매매특별법'이란 단어가 귀에 익숙해 질 때쯤 몇몇 언론들이 '집중 기획'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 대부분은 성매매 여성이 겪었다는 갖가지 자극적인 피해상황을 늘어놓는 것이었는데 예컨대 '청소년기 가정의 불화로 방황하다 티켓다방에 발을 들여놓았다'로 시작해 '여러 업소로 팔려 다녔고, 업주의 감금과 폭행 속에 임신과 낙태를 반복했다'로 이어져 '하지만 탈성매매하고 쉼터에 오니 너무 좋다'는 내용의 기사들이었다. 이런 기사들은 이후에도 약속이나 한 듯 줄을 이었다. 기자가 성매매 업소를 체험하는 내용이나(한겨레 21), 성매매 업주들과 술 한잔하며 나눈 이야기(주간 한국) 등의 버젓이 지면에 등장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 졌다. 기자는 성매매 여성들의 피해 사례가 '거짓'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시 많은 성매매 여성들이 업주의 감금과 폭행 속에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사실조차 모른 채, 혹은 알고 있어도 정부나 경찰을 믿지 못한 채 성매매의 구조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도 그런 여성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말』지도 성매매특별법 시행 초기 성매매 여성들의 피해를 강조하는 기사들을 담는데 주력했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설마 여성들이 그런 피해를 당하면서까지 남아 있었겠는가'하며 피해 사실 자체를 긴가민가하고 있었고, 특히 성구매자들, '성매매'를 '성관계'로 이해하고 있는 대다수의 남성들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당시의 판단이었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쇼'인가 다만 그 절박함에서 한 걸음 물러선 지금, 성매매 여성의 피해만을 '강조'한 성매매특별법이 갖는 한계는 없었는지, 그것이 오히려 성매매 여성들의 탈성매매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만약 그 작업이 여전히 성구매자들의 각성을 위해서 유효하다고 주장한다면 가해자에게 '피해'를 이해시키기 위해 피해자를 이용하는 것은 또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를 묻고 싶다) 애초 법 제정의 목적이었던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은 또 어떤 식으로 존중받고 있는가. 성매매특별법의 정당성을 살리기 위해 반복해 온 작업들이 성매매 여성은 물론, 탈성매매 여성의 인권마저도 성매매 '근절' 담론 뒤로 미뤄두게 한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시함께 프로젝트' 쉼터 연합바자회 개최> 추진배경 : 최근 성매매특별법 시행 후 성매매 종사여성들의 성매매 양성화 주장 등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인 논란이 지속되는 상황과 관련, 쉼터에서 성공적인 자활을 진행하고 있는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밝고 희망적인 모습 공개를 통해 다른 성매매 종사여성에 대한 자활의 동기 부여 및 사회적 공감대 확산 도모 지난 12월 20일 기자의 이메일함에 전송된 보도자료의 일부다. 부제는 '꿈을 찾는 사람들의 희망 나눔 바자회'였다. 서울시의 4개 쉼터가 연합해 준비했다는 이 바자회는 '추진배경'에서 드러나듯 온전히 성매매특별법의 당위성을 포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자회에 참가한 탈성매매 여성들은 "쉼터에서 배운 것"이라며 "이틀 밤을 꼴딱 세워 만들었으니 꼭 사달라"고 말했다. 탈성매매 여성은 대중에게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보호돼야 한다. 물론 본인들이 이를 원하고 있다. (여전히 업주의 협박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바자회에서 이들은 마스크 하나 없이 물건을 팔고 있었다. (장소가 후미진 곳이었으니 망정이지) 매일매일 학원에 다니랴, 아르바이트하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랴 바쁜 이들이 왜 이런 자리에 불려 나와 있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한 날은 탈성매매 여성들이 한데 모여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물론 탈성매매 여성들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비슷한 아픔을 겪는 친구들이 좀더 사회적 지원을 받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다고 설명했지만, 이들은 생전 처음 보는 기자들 앞에서 과거 성매매 경험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야 했다. 최근 입시 철을 지내면서 몇몇 쉼터들이 탈성매매 후 대학에 들어간 여성들의 '모범' 사례를 경쟁적으로 소개하는 일도 주목할 만 하다. 성매매 여성이 진술한 사례가 '피해'로 인식되고, 이들이 탈성매매 후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이것이 본래 성매매특별법의 취지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 일들이 '보여주어야 하는 사례'가 되면 곤란하다. 왜 우리는 여전히 성매매 현장의 착취구조를 폭로하고, 탈성매매 후 성공적인 삶을 대조적으로 드러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가. 그것은 누구를, 또 무엇을 위한 것인가. '성매매 여성=피해자' '성매매=근절' 공식을 새로 풀어야 여전히 혼란스럽다. 여의도 앞에서 단식 농성단을 꾸렸던 성매매 여성들은 60여 일 동안 칼바람 맞으며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그 대열에서 빠진 여성들은 소복을 입고 여성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스스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여성들, 성매매를 계속해서 생계를 꾸리게 해달라는 여성들의 주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들의 주장이 업주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매도하고 무시해버리면 되는 것일까. 그렇다해도 왜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됐는데 150만으로 추정된다는 성매매 여성들이 모두 신고하고 법의 보호망 속으로 뛰어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이들 역시 어쩔 수 없는 누군가의 억압 속에 있는 것일까. 성매매특별법 시행 후 탈성매매한 여성이 전체 성매매 여성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다. 마·침·내 성매매특별법이 시행 100일을 맞이했다. 그 동안 성매매특별법은 그 시행의 정당성을 보장받기 위해 성매매 여성들의 '피해'에 초점을 맞추는 데 주력해 왔다. 그렇다면 이제 그 관점을 조금 옮겨 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억압과 착취에 고통받고 있는 성매매 여성들이 탈성매매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데, 그런 피해를 가한 업주를 처벌한다는데 반기를 들사람은 이제 없다. 지금 여론의 화살은 '성매매를 하고 있는 여성들'을 향하고 있다. 탈성매매를 전제 한 여성이 아닌, 성매매를 하고 있는 여성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이제 이들을 위한 또 다른 관점이 등장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정말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을 위한다면 말이다. 탈성매매한 여성들은 성매매 현장의 피해에 대해서 목놓아 외치고, 탈성매매 후 여성단체가 제공한 쉼터에 대해서는 찬사를 늘어놓으면서도, 탈성매매를 결심하기까지의 고민과 탈성매매 과정의 힘겨움에 대해서는 몇 마디 이어가지 못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내가 지금 그 안에 있었다면 집회를 하는 여성들보다 더 절절히 생존권을 주장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탈출을 시도했다 다시 잡혀와 섬으로 팔려 가는 여성들을 보면서 겁이 났다"거나, "선불금 외에도 신용불량, 사채 때문에 탈성매매하자는 엄두가 안 났다"는 이야기 역시 수도 없이 들어왔다. 아예 수십 년간 성매매 구조 안에서 삶을 꾸려온 여성도, 아이 둘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성매매를 하는 여성도 있었다. 이들은 성매매에 유입됐을 때의 갖가지 사정만큼이나 다양한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탈성매매를 주저하고 있었다. 그 때문이다. 현재 남아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에 대한 '맞춤형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탈성매매 단체의 활동가들은 종종 '성매매 현장에서 건강한 여성이 탈성매매도 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성매매 현장에 있는 성매매 여성들이 씩씩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업, 설혹 이를 위해 단기간 성매매가 유지될수밖에없다하더라도,'성매매=여성착취=근절'이라는 공식에 살짝 금이 가더라도, 그 작업을 위해서라면 이런 명분 따위는 조금 유보할 수도 있다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성노동자 스스로 인권 지켜나가는 시대" 지난 11월호 『말』지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연구원의 원미혜씨는 "오늘의 성매매 '근절' 담론이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경험을 배제시키고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목소리만을 내게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는 나타냈었다. 최근 이화여대 변혜정 교수 역시 "피해의 의미와 맥락을 분석해서 여성들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성매매 피해로 인한 탈성매매인지 아니면 현 피해 상황의 변화/피해의 종식인지, 아니면 낙인의 종식인지 각각의 여성들의 차이를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무조건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의 규정에 가두거나 성매매를 '근절'의 대상으로 지정하고 성매매 문제의 해결을 꾀하기 보다, 우선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에 공감하고 대화하려는 작업이 선행되었어야 한다는 공통된 지적이다. 이번 기사를 준비하며 지난 자료들을 들춰 보다, 손으로 쓴 기자 회견문을 발견하고 오래된 편지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다시 읽어보았다. 지난 10월 부산 완월동, 인천 옐로하우스의 성매매 여성들이 여성단체와 함께 탈성매매 프로젝트를 해보겠다고 기자회견을 자청했을 때 사용된 보도자료였다. 모처럼 여성단체와 성매매 여성들이 손을 잡았다는 격양된 분위기 속에서 축배를 드느라 잠시 미뤄두었던 이들의 주장이 이제서야 눈에 밟히고 또 밟힌다. "우리는 현행법에 대응하고자 하는 단체가 아니며 '탈성매매'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시설과 교육은 생계수단 마련과 함께 전업을 돕는 것이 병행되어야 하며 그 목적이 어떠하든 '개개인의 자발적 의지'로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매매특별법의 원래 취지와는 다르게 저희 성노동자들이 오히려 법의 희생자가 되고 있습니다. 성노동자들의 복리후생이 법의 시행 이전에 이미 마련되어야 함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은 형식뿐인 정부대책은 저희가 새로운 삶을 시작함에 있어 아무런 방안도 되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성노동자의 목소리가 스스로의 인권을 지켜갈 수 있는 시대를 기대합니다. 탈성매매의 가장 빠른 지름길은 정부와 업주가 우리들의 복지후생에 적극 참여, 동참하는 길뿐입니다." 2005년 01월 19일 이정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back ▲ top 이 기사에 대한 네티즌 의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