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9
반체제 에이즈 과학자, 케리 뮬리스  

원주 의대 예병일 교수가 쓴 글입니다.
반체제 에이즈 과학자인 케리 뮬리스 박사의 과학적 공로와 그의 괴짜같은 삶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괴짜 과학자의 중합효소 연쇄반응 발견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현대과학에서는 도저히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학자중 한 명이 1993년 노벨 화학상을 뮬리스(Kary B. Mullis, 1944∼ )이다. 그에게 노벨상을 가져다 준 연구업적은 원하는 DNA만을 선택적으로 증폭시킬 수 있는 방법인 "중합효소 연쇄반응을 고안한 공로"였다. 현재 이 방법은 화학은 물론, 생물학, 의학, 고고학, 수사학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이 방법이 사라진다면 컴퓨터가 사라진 것 이상으로 온 세계에 혼란을 야기시킬 것이 예견될 정도로 그 파급효과가 엄청나게 전세계에 퍼져 버렸다. 대단한 이론을 내포한 심오한 진리라기보다는 아이디어를 이용한 단순한 실험방법에 불과하지만 이 방법은 여러 가지 분야에 응용될 수 있음은 물론, 이 방법을 개량하면 또 다른 새로운 실험방법을 고안하는데 쉽게 이용될 수 있기에 1985년도에 뮬리스의 머리에서 고안된 이 방법은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최근 10년간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으로 기록될 정도로 과학은 물론 사회분야에까지 널리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뮬리스가 유명해진 다른 이유 한 가지는 그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이지만 그의 행동은 기이하기 이를데 없다는데 있다. 괴짜 과학자에 얽혀 있는 이야기들을 살펴 보며 우리도 이와 같은 단순하면서도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훌륭한 연구에 관심을 가져보도록 하자.

중합효소 연쇄반응의 필요성

중합효소 연쇄반응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우선 분자생울학의 기본적인 내용을 몇 가지 설명하겠다. 최근 매스컴에서 자주 대하게 되는 단어가 바로 "유전자" 또는 "DNA"라는 단어인데 현대의 생명과학에 있어서 이 단어를 빼놓으면 이야기가 안 될 정도로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그런데 유전자나 DNA가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로서의 기능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인간에게 꼭 필요한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단백질이 바로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DNA는 유전자의 기본 단위를 가리키는 말이며 인간이 가진 유전자 전체는 30억개의 DNA가 연결되어 구성되어 있다. DNA는 인과 당(탄수화물), 염기가 연결된 모양을 하고 있으며 염기에는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 등 네 가지가 있다. 따라서 염기의 종류에 따라 DNA는 네 가지 종류가 있고, 이것이 길게 연결되어 인간을 구성하는 유전자를 형성하게 된다. 30억 개의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개수는 정확히 확인하기는 불가능하지만 현재까지 약 8만 개 이상이 알려져 있고, 현재 진행중인 인체 게놈 프로젝트가 끝나는 2003년 경에는 약 10만개 이상의 단백질이 알려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수백에서 수만개의 DNA가 한 덩어리를 이루어 단백질을 만들게 되는데 이와 같이 단백질 한 개를 만들 수 있는 DNA의 부분을 영어로 진(gene)이라 하고, 30억 개의 인간 DNA 전체를 영어로 게놈(genome)이라 한다. (우리말로는 진과 게놈을 모두 유전자라 하므로 구별이 어렵다) 세포 또는 혈액 등에서 DNA를 분리하는 경우 30억개로 구성된 게놈전체가 분리되므로 이렇게 큰 DNA는 다루기도 어렵고, 또 단백질의 기능이나 조절 기전들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단백질 한 가지를 만들 수 있는 수백에서 수만개 크기의 DNA만을 연구해야 하는데 30억 개나 되는 큰 게놈으로부터 작은 부분만을 분리하기도 어려우므로 단백질과 관련된 진(gene)을 연구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인체 조직 1g에서 게놈 유전자를 분리하면 1mg을 얻을 수 있고, 이 1mg의 게놈 유전자 내에는 30억 개의 DNA가 존재하고 있다. 만약 연구자가 연구하고자 하는 진의 크기가 3000개짜리라면 분리한 1mg의 DNA 속에는 원하는 DNA가 1mg의 100만분의 일밖에 들어 있지 않은 셈이 된다. 즉 우리가 원하는 작은 DNA만을 얻으려면 분리하기도 힘들거니와 그 양도 너무나 적어서 연구에 이용하기가 어렵게 된다. 따라서 필요로 하는 부분만을 선택적으로 얻는 것이 아주 중요하며 이와 같은 어려움을 해결해 준 해결사가 바로 뮬리스이다.

중합효소 연쇄반응법 고안

뮬리스가 중합효소 연쇄반응 방법을 고안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가진 것은 1983년이었다. 위에서 기술한 것과 같은 필요성에 대해 뮬리스도 같은 인식을 하고 있었으며 그는 우선 전체 게놈으로부터 필요로 하는 작은 DNA를 분리해 내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우니 전체 게놈으로부터 필요로 하는 작은 DNA만을 증폭시켜 그 숫자를 늘이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단순히 DNA를 합성하는 기전이 밝혀져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여기서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 몇 가지를 되새겨보겠다. 세포가 분열기에 들어서면 세포 내의 염색체 수가 두 배로 되었다가 세포가 나누어지면서 각각 염색체를 반씩 나누게 되는데 이미 두 배로 된 것이 나누어지므로 원래의 염색체 수와는 차이가 없다.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자식은 부모의 염색체를 각각 반씩 물려받게 되므로 부모와 비슷한 형질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염색체란 DNA의 덩어리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인체의 30억 개 유전자는 23쌍의 염색체에 나누어져 분포하고 있다. 즉 염색체를 이어받는 것은 유전자를 이어받는 것과 같은 뜻이다. 콘버그(Arther Kornberg, 1918∼ , 1959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와 같이 뮬리스보다 앞선 시기에 분자생물학을 연구했던 학자들은 고맙게도 DNA가 복제되는 과정을 이미 밝혀 놓았다. 그들의 연구에 의하면 세포가 분열하는 시기에 염색체의 수가 두 배로 된다는 것은 유전을 담당하는 물질인 DNA가 두 배로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DNA 복제과정은 세포분열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DNA 복제는 인체가 성장하며 몸체가 커지는 과정에서 세포분열을 하는 시기에 항상 일어나고 있으며 반응온도는 인체온도와 같은 37oC가 가장 적당하고, 이 과정에 작용하는 효소는 인체내에 존재하는 DNA 중합효소, 이 과정에 필요한 재료에는 dNTP, Mg2+, 그리고 반응 시작 위치를 결정하는 시발체 (primer) 한 쌍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연구해 놓았다. 뮬리스는 이미 DNA 복제 기전이 알려진 이상 이 기전에 맞추어 실험실에서 반응을 시키되 연구자가 증폭하여 얻기를 원하는 DNA 조각에 대해 시발체만 적당히 조절하면 DNA를 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과정을 한 번씩 더할 때마다 DNA는 제곱수로 복제되므로 반응횟수만 늘여 가면 원하는 DNA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그 방법을 고안하여 1985년에 발표를 했다. 그러나 문제점이 있었다. 뮬리스가 고안한 방법으로 DNA를 복제하려면 반응 온도를 90oC 이상으로 올렸다가 37oC로 내리는 것을 반복해야 하는데 반응에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DNA 중합효소의 최적 작용온도는 37oC이지만 이 효소는 70oC 이상이 되면 그 성질이 변화하여 DNA를 합성하는 고유의 기능을 잃게 되므로 매 복제 반응이 끝날 때마다 효소를 계속해서 첨가해 주어야 하는 불편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효소가 잘 작용하는 온도인 37oC에서는 DNA 복제반응이 일어나기 전에 DNA가 서로 붙어버리는 현상이 일어나 복제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따라서 뮬리스가 고안한 방법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실제적으로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받아들여져 사장되다시피 했다.

일본인 과학자 사이키의 등장

이론적으로는 흠잡을데 없는 좋은 방법이었지만 실제로 이를 실행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제한점이 있어서 서서히 잊혀져 가던 뮬리스의 논문에 관심을 가진 학자중에 일본인인 사이키(Randall K. Saiki)가 있었다. 그는 미생물학을 전공한 학자로 온천에서 생존하는 세균에 대한 연구를 하는 중이었다. 한여름에 전염병이 유행하면 물을 끓여먹어라는 방송이 나오는데서도 알 수 있듯이 끓인 물에서는 일반적인 미생물들이 모두 사멸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뜨거운 온천물에서 생존하는 세균이 있다는 사실에 그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뮬리스의 논문을 보게 된 그는 만약 높은 온도에서도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DNA 중합효소가 있다면 위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으므로 중합효소 연쇄반응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높은 온도에서도 작용가능한 DNA 중합효소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얼른 답이 떠오르지 않는 독자는 인체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사람의 체온은 약 37oC이므로 인체의 DNA 중합효소는 37oC가 최적 작용 온도이다. 그렇다면 높은 온도에서 작용하는 DNA 중합효소는 당연히 높은 온도에서 생존하는 생명체에서 얻으면 될 일이다. 높은 온도에서 생존하는 생명체가 당장 멸망하지 않는다면 그 생명체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복제를 해야 다음세대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며 복제 과정에서 유전적 형질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DNA 복제를 담당하는 DNA 중합효소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사이키는 자신이 연구하던 온천에 사는 생물들이 유전형질을 물려주기 위한 방법으로 어떤 효소를 가지고 있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온천에 사는 어떤 특정한 세균에서 분리한 효소중에서 DNA를 합성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것을 분리하고자 노력한 결과 높은 온도에서도 변성되지 않고 DNA 합성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DNA 중합효소를 찾아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찾아 낸 세균이 온천물에서 살고 있다는 뜻으로 Thermus aquaticus라 명명하였고, 이 세균의 종명 한 자와 속명 한 자를 따서 자신이 찾아낸 효소의 이름을 Taq DNA polymerase라 명명하였다. 그리고는 뮬리스가 고안한 방법대로 자신이 발견한 효소를 이용하여 중합효소 연쇄반응을 실시한 결과 아주 쉽게 원하고자 하는 DNA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사이키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뮬리스에게도 전하였고, 이들은 공동 이름으로 1988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잡지인 사이언스(Science)지에 Taq DNA polymerase를 이용한 중합효소 연쇄반응법으로 아무리 큰 유전자를 이용하더라도 원하는 크기의 작은 DNA만 대량으로 증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이와같은 연구는 당장 전세계로 퍼져나가서 분자생물학에 관한 연구를 하는 실험실은 물론, 수많은 연구실에서 이 방법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보다 더 개량된 방법을 고안하여 여러 가지 실험에 이용하게 되었고, 그 결과 뮬리스는 자신의 독창적인 연구방법을 고안한 공로로 1993년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괴짜 과학자 뮬리스

노벨 화학상의 주인공 뮬리스는 1944년에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출생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외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냈던 그는 외할아버지(James Albert Barker)의 농장에서 5세 때까지 함께 살았으며, 그는 농장 생활을 하면서 직접 소를 키우고 우유를 짰으며 자신이 짠 우유를 동네에 나누어 주는 전원생활을 하였다. 자라면서 그는 주말여행을 즐기는 청소년이 되었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인생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자신이 직접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키며 세월을 보냈다. 콜럼비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조지아 공과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후 1966년에 캘리포니아의 버클리대학교에 진학하여 닐란드(JB Neilands) 교수의 지도로 스키조키넨의 구조와 합성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여러 회사를 거쳐 1979년에 에머리빌에 있는 시투스 회사에 연구원으로 입사한 그는 DNA가 수개에서 수십개 연결된 구조(oligonucleotide)를 만드는 연구를 하던 중 1983년부터 중합효소 연쇄반응에 대한 이론을 나름대로 고안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2년 후 완성된 이 이론으로 1993년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시투스 회사를 그만 둔 그는 1988년 이후 핵산 화학에 관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여러 기관에서 상담역을 하는 프리랜서 일을 하다가 최근에는 스스로 스타진(StarGene)이라는 회사를 창립하여 사장 겸 이사 겸 연구원 직함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캘리포니아의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윈드서핑을 즐기다가 최근에는 초청이 있으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우주론, 신비주의, 컴퓨터 바이러스, 인공 지능에 대한 강의와 자문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왜 괴짜인가?

필자가 그를 괴짜라고 소개하기에 앞서서 그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기 약 2개월 전인 1993년 가을, 국내의 한 스포츠 신문에 그에 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그 기사는 과학면이 아닌 스포츠 신문의 끝에서 두 번째 면에 머릿기사로 실렸다. 스포츠 신문을 즐겨 보시는 분은 주로 전면광고가 실리는 마지막 면의 바로 앞장에 어떤 기사가 주로 실리는지 얼른 추측이 될 것이다. 기사내용은 찌어진 청바지를 입고 학생들과 함께 축구나 하면서 신나게 낮을 보내는 괴짜 과학자(뮬리스)가 밤만 되면 실험실 대신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만 연구하여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가 무엇을 참고로 하여 씌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이 기사는 실제보다 너무나도 얌전하게 쓴 기사였다. 우선 그는 다른 노벨상 수상자와 달리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인류를 위해서 연구를 하는 과학자가 아니다. 단지 마음에 드는 여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연구를 한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이제 5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이지만 아직까지 그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보도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단지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을 한 후 현재는 혼자 살고 있을 뿐이다. 얼마나 여자들과 사귀기를 좋아하면 별명이 닥터 러브라고 붙어 있을까? 그가 첫 번째 아내를 만난 것은 콜럼비아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첫 아내와는 조지아대 공대시절 결혼을 했으나 자신이 공부에 열중하는 것을 지루하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갈라서고 말았다. (이것은 자신의 주장이므로 정확한 이혼사유에 대해서는 확실히 이야기할 수 없다) 두 번째 아내였던 신시아를 만난 것은 박사학위 취득 후 캔자스에서 3년 동안 생활하던 때였다. 그녀와 함께 사는 기간도 오래 가지 않았고, 한동안 떨어져 살다가 다시 함께 살기도 했으나 현재는 같이 살지 않고 있다. 그가 중합효소 연쇄반응이라는 불세출의 업적을 남기는데 원인이 되었던 세 번째 아내 제니퍼 바네트(Jennifer Barnett)는 시투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함께 일했던 동료였다. 뮬리스가 중합효소 연쇄반응법을 고안하려고 마음먹은 이유가 이것을 고안하면 그녀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유혹하기로 결심했을 정도로 학식과 미모를 겸비한 여성이었다. 문제의 중합효소 연쇄반응에 대한 실마리가 풀린 것도 책상이나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에서 멘도치노로 가는 128번 고속도로 위 46.7마일 지점에서였다. 물론 그 옆자리에는 바네트가 앉아 있었고 뮬리스는 훗날 이 날을 회상하면서 "그 날 나는 고속도로 위를 시속 50마일(80km)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역시 나는 운전중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라고 하며 "좋은 연구가 반드시 고통스런 노력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전술한 바와 같이 결국 그녀도 그의 곁을 떠났고, 이제는 세 번의 이혼경력만 있을 뿐 아내없이 혼자사는 홀아비가 되어 있으나 지금도 새로운 젊은 여자들을 사귀기 위해 여러 가지 연구와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가 괴짜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은 찢어진 바지와 여자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노벨상 수상자와 달리 노벨상 수상후 은퇴하기는 먼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논문쓰기를 그만 둔 탓에 새로운 연구업적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으며, 시투스에 사표를 낸 지금은 과학자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자신의 과거와 그다지 상관없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괴짜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다.

신원확인과 중합효소 연쇄반응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같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경우 유가족들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희생자의 신체중 어느 일부분만이라도 얻으려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캄보디아의 훈 할머니가 평생을 그리워하던 조국 대한민국의 땅을 밟으면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는 가족이나 친척들을 찾으려 한다. 이와 같은 경우 어떤 방법으로 친생자감별이 이루어질까? 중고등학교 시절, 혈액형을 이용하여 친생자감별을 하는 방법은 이미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ABO식 혈액형 분류법은 A, B, O, AB형 네가지 혈액형을 토대로 친생자를 감별하다 보니 경우의 수가 많지 않으므로 당사자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결과를 보이게 될 가능성이 있어서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불확실한 방법을 위와 같이 중요한 상황이나 범죄수사에 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의문 한 가지, 미국의 미식축구 선수였던 심슨이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피소되었을 때 경찰에서는 그의 집에서 범행시 사용한 장갑을 찾아내어 그 장갑에 묻은 혈흔이 그의 혈액이 묻은 것이라는 사실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런데 그는 왜 무죄판결을 받았을까? 경찰이 제출한 장갑에 묻은 피는 그의 것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그 장갑의 혈흔은 그의 것임을 인정했지만 그 장갑 자체가 경찰이 만들어낸 가짜 증거라는 이유로 그에게 살인 혐의가 있다는 경찰의 주장을 기각하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경찰은 그 장갑에 묻은 피가 심슨의 것임을 증명한 방법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보자. 마찬가지로 친생자감별을 하거나 신원확인을 할 때 현재 널리 이용되는 이 방법은 신체의 어느 부분에서나 얻을 수 있는 유전자인 DNA를 분리하여 그 DNA로부터 개체마다 서로 다른 부위의 DNA염기서열을 결정하여 이를 토대로 그 DNA가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지 확인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때 오차확률은 현재 수억분의 일내로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범행현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개만으로도 그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해지므로 현재 주민등록증에 지문을 등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21세기에 전 인류가 유전자 등록을 하는 시대가 온다면 범죄자들이 설 땅은 더욱 좁아지게 될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남과 악수를 한 경우 손바닥에 눈에 보이지 않게 묻어 있는 자국으로부터 DNA를 분리하는 방법까지 개발되어 그 방법의 민감도가 더욱 향상되어 가고 있다. 이와 같은 일들이 가능해진 것이 바로 뮬리스의 공적 때문이다. 그가 고안한 중합효소 연쇄반응은 필요로 하는 DNA를 선택적으로 증폭시켜 그 양을 무한대로 늘일 수 있게 해 주므로 아무리 적은 양의 DNA라도 일단 존재하기만 하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방법을 역사학에 응용한다면 당연히 어는 민족이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를 확인할 수도 있고, 현재의 무덤속에 있는 인물의 친자손을 찾을 수도 있으며, 일본이 원한다면 천황이 한국에서 옮겨 간 사람인지 아닌지를 불과 수 일 이내에 확인해 줄 수도 있다.

과학자의 능력은 수입으로 연결이 될까?

빌 게이츠는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과학자의 참신한 아이디어는 수입으로 연결이 될까? 정답부터 이야기하자면 파급효과가 큰 연구일수록 수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노벨상을 제정한 노벨은 자신의 발명품으로 당시 유럽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지난 1997년 2월에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복제양 돌리의 연구자 윌머트와 캠벨중 연구경력이 더 많은 캠벨은 자신의 연구가 이루어진 영구의 로슬린 연구소를 떠나 그 연구의 후원자였던 PPL 회사에 가는 조건으로 계약금 500만 달러를 받아 호주머니가 두둑해졌다. 이들과 다르게 X선을 발견했던 뢴트겐은 아무 조건없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사용하도록 허락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뢴트겐의 연구를 토대로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지만 자신은 단순한 발견자라는 명예만으로 만족하였다. 노벨상 수상이라는 명예 이외에 지난 10년간 과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으로 남게 된 중합효소 연쇄반응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얼마나 될까? 시투스 회사는 그 회사의 직원이었던 뮬리스가 고안한 중합효소 연쇄반응 기술에 대한 권리를 제약회사인 롯슈에 5억 달러에 넘기고, 뮬리스에게는 보너스로 자그마치(?) 1만 달러를 지급하였다. 뮬리스가 시투스 회사를 떠난 것은 이 금액에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재주는 직원이 부리고 수입은 회사가 꿀꺽한 셈이다. 사이키는 자신이 발견한 Taq DNA polymerase에 대해 국제특허를 취득하였다. 따라서 전세계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시행되고 있는 중합효소 연쇄반응의 경우 실험자가 인식하고 있건 아니건 자신들이 구입한 효소의 가격에는 사이키의 호주머니에 들어 갈 인세가 포함되어 있다. 사이키는 자신의 특허권을 퍼킨엘머회사에 넘기면서 돈방석에 앉았고, 퍼킨엘머 회사는 효소의 판매 수입 외에 중합효소 연쇄반응을 쉽게 행할 수 있는 실험기구를 개발하여 전세계에 비싼 값으로 판매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수입이 언제까지 얼마나 많이 주어질 지 아직 예측하기도 힘든 상태이다. (퍼켄엘머 회사와 시투스사는 얼마 전에 합병하여 한 회사가 되었다)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순수한 과학 연구도 물론 좋지만 파급효과가 큰 응용과학 연구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란다. 뮬리스의 방법은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 아니었다.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로 완성시킨 것이었고, 사이키의 효소는 뮬리스가 완성시켜 놓은 이론에 마무리 점을 찍은 데 불과한 것이다. 만약 한국인이 이런 업적을 이루었다면 전국민의 염원인 노벨상 수상은 물론, 자동차 수만대 수출 이상의 경제 효과를 얻을 수 있었고, 자신도 물론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다. 재주를 부리고도 수입을 올리는데 실패한 뮬리스는 최근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인기인, 유명인들에게 시료를 얻어서 그들의 유전 인자를 복제하여 판매하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시료는 어쩌다 빠진 머리카락 하나면 충분하고 피 한 방울이나 실수로 떨어져 나간 아주 미세한 살점도 가능하다. 과연 일반인들이 형체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유전자를 구입할 지는 의문이지만 유명인의 물건을 수집하는 수집광들이 많이 있으므로 언젠가 그들을 재생(이것이 바로 인간복제임)할 수도 있는 유전자를 수집하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과학자의 능력은 수입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인류에 공헌을 하면서 수입으로도 직결되는 일에도 한 번쯤 관심을 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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