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11
출판]미국의 인권의식은 가짜다  

[[뉴스메이커] 2003년 05월 30일 (금) 15:15


△인권, 그 위선의 역사
5월 1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 호 에서 '탑건쇼'를 벌여가며 "주요 전투가 끝났다"는 말로 사실상 이라 크전 종전을 선언했다. 미국을 비롯, 전세계 많은 사람이 환호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위선에 상처받은 선량한 이라크 국민을 떠올리는 사 람은 별로 없었다.

미국의 이라크전 명분은 '이라크 해방'이었다. 이라크의 테러 지원과 대량살상무기 보유, 독재-야만적인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이라크 국 민을 해방시키고 그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것 등이 여기에 포함된 다. 크게 보면 '인권 회복'이 명분이었다.

국제 문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커스틴 셀라스는 이 책에서 '인권'을 둘러싸고 있는 열강의 위선과 모순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것은 주로 열강이 주도하고 있는 전쟁과 관련돼 있다.

저자 셀라스는 먼저 인권이 고대부터 생긴 개념이 아니라 최근에 생 긴 것이라는 도발적 주장을 한다. '인권은 문명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저자의 판단에 의하면 오류를 범하 고 있는 것이다. 흔히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에 나오는 내용 을 바탕으로 인권은 이미 고대에 인식돼온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저자 는 그것은 단지 '신의 힘'을 언급했을 뿐이라고 한다. '신은 인간에 게 인권을 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인권은 사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에 생겨난 것'이라는 게 저자의 요지다.

저자에 따르면 인권을 세계무대에 드러나게 한 결정적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그리고 1945년 4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유엔 창 립회의가 열리면서 발표된 '세계인권선언'으로 인권은 세계 역사에 첫 등장한다.

이같은 태생 과정을 시작으로 저자는 열강이 '인권' 속에 어떤 식으 로 자신의 위선을 은폐해왔는지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인권을 정치 적인 문제로 악용해온 사례를 통째로 까발리고 있다. 세계의 '경찰국 가'로 비치는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서 이러한 점은 극명하게 나타난 다.

저자는 말한다. "인권은 자유에 대한 사랑, 인간의 존엄성 등과 같이 미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애국심을 표현하는 데 사용해온 가치들과 교 묘하게 결부되어 참전의 명분을 뒷받침하는 데 동원되었다."

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수단의 노예해방운동, 아프가니스탄 공격 등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이 일으킨 대부분의 전쟁은 바로 인권을 앞세운 자국의 이익 추구였다. 더욱 모순되는 점은 미국은 유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전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유엔은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생각해낸 이름이었다. 불과 60 여 년 전 자국 대통령이 이름 지은, 인권이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 장 (場)이었던 그 세계기구의 반대를 미국은 무릅쓴 것이다.

"인권은 자신을 앞세워 활용한 이들에게 엄청난 정치적, 도덕적 이익 을 챙기게 해주었다. 이 점이 지금껏 가장 중요하면서도 철저히 논 외에 부쳐졌던 인권의 특징이다."

저자는 열강, 특히 미국의 인권에 대한 '굴절된 의식'을 고발하고 인 권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궁극적으로 그같은 현상을 자행하는 열강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열강은 걸핏하면 인권이라는 '무기'를 들고 일어나는가. 그 까닭은 인권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도덕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악한 의도가 인권의 옷을 입을 땐 '선한 의 도'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앞으로의 일을 더 크게 걱정한 다.

"더 강력한 대안이 나타나지 않는 한, 인권은 당분간 서방의 의제를 주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이어갈 것이다."

더 이상의 인권 악용 소지를 차단하고 온전한 의미의 인권을 되살리 는 일은 전세계인의 끊임없는 감시와 비판의식에 달려 있을 듯하다. 커스틴 셀라스 지음, 오승훈 옮김, 은행나무 14,000원.

인권은 강대국의 변장도구?
[한겨레21] 2003년 05월 28일 (수) 19:30





책갈피 | 인권, 그 위선의 역사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인들의 인권을 위한 해방전쟁”이라고 강변했던 것은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영국의 국제문제 저널리스트 커스틴 셀라스에 따르면 강대국의 이권을 위해 약소국 국민의 인권을 동원하는 수법은 역사가 길다. 그는 <인권, 그 위선의 역사>(The rise and rise of human rights)에서 수많은 역사 자료들을 촘촘히 엮으면서 ‘서구’가 ‘인권’의 개념을 어떻게 ‘발명’하고 이용해왔는지 보여준다.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객관적인 개념처럼 보이는 인권에도 권력과 정치의 그물이 촘촘하게 얽혀 있었고 이권을 챙기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유엔의 원래 이름은 ‘열강연합’이었다.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유엔은 “전체주의 봉쇄정책, 특히 소련을 겨냥한 견제의 원칙에 따라 구성된 열강들의 협의체”였고, 이를 가리는 가면으로 ‘세계인권선언’과 몇 가지 인권관련 기구들이 만들어졌다.

유엔의 출범 직후 열린 뉘른베른크와 도쿄 전범재판은 “승전국의 전쟁범죄를 다루지 않을 것임을 명문화한 채” 시작돼 연합국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냉전시대에 인권은 주로 소련을 비난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1947년 11월 영국은 유엔에서 소련의 강제노동을 향해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이 비난문을 작성했던 영국 정부의 실무자들은 “이런 종류의 연설문을 써내는 요령은 오직 하나, 아주 폭넓은 범위를 다루면서도 우리의 식민지에서 벌어진 문제들은 과감히 무시하는 것”이라고 썼다.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영국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으며 영국 정부의 이익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만 활동했다.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 설치를 반대하고 미군의 행위를 대상으로 삼지 말 것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당연한 결과다.

서구 강대국들의 ‘인권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간섭은 비서구 약소국 희생자들의 상황을 전혀 개선시키지 않았다. “희생자들은 인권 캠페인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하다면 희생시켜도 되는 존재가 된다. 그렇게 잊혀져버린 희생자들의 명단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대통령과 총리, 자본가와 구호단체, 외국 특파원과 종군 사진기자, 팝스타와 모델 모두 불의의 현장으로 구름같이 몰려 간다. 그리고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곳으로 옮아가면 희생자들은 다시 한번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그들의 실제 고통에는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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