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01
20년을 참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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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린 날: 2002-10-22


이 름 한판해보자(hyk7215@lycos.co.kr) 날 짜 2002/10/14 (21:39:12)
홈페이지 번 호 615 조 회 18

제 목 20년을 참고 살았다

반갑습니다.
이런 곳이 있단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전 제가 감염이 걸렸단 것을 20년전 고3 초에 알았습니다.

제가 그 전에 언제 걸렸는지 왜 걸렸는지도 모르면서 학교때 헌혈 결과를 불러주던 담임이 종례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간염 옳긴다면서 한 1미터쯤 세워놓고 한손으로 얼굴 돌리며 전해주었습니다.

옳기니까 멀찍이서 받고 친구들에게도 조심하라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매점에 핫도그 사먹으면서도 내내 왕따를 당햇습니다.
그래서 고3때 그 선생하고 한판 붙었습니다.
힘에서 않되기에 실컷 얻어 터져습니다. X자식 힘도 세더군요.

가난한 시골이라 약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고 부모님도 B형 간염보균자가 뭔 지는 지금도 모르십니다.
하지만 그때는 모든게 그렇게 미웠고 선생님을 패죽이구 싶었습니다.

군대는 2기갑에서 통신병으루 만기 제대 했습니다.
전염이 강하고 그렇게 구박받은 병원균을 가진 내가 군인대 왜 가야 하는지도 몰랐으나 영장 받을 때 초등학교 강당에서 현역 판정 받고 군대에 가서 전 최선을 다해 열심히 군생활하고 제대 후 아부지가 농사 짓자고 하시는 거 엄마가 울면서 시골 무지랭이 되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 하시고 우시길래 장날 아부지가 티사입으라고 준 3천원 들고 부산행 열차 일천 팔백원 주고 타서 부산에 도착해서 한달 정도 외가에 빌붙어 낮에는 태종대로 혼자서 구보하면서 소일로 보내다가 울산에서 직장을 구해 직장생활를 했습니다.

회사 신검이 87년도만해도 간염은 않봤는지 취직은 되었는데 그렇게 기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회사 술자리 기숙사 생활에서 혹시나 동료에게 피해가 전가될까봐 말도 못하고 조심조심 했습니다.

독서실과 회사를 오가며 열심히 죽도록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살다 같은 회사 군산으루 전근가서 열심히 직장생활 했습니다.
동료들도 좋구 직장도 맘에 들었는데 제가 실수로 직장를 92년에 그만두고 타회사로 스카웃 비슷하게 갈 기회가 있었는데 신검을 받으니 불합격이 판정이 나오는데 제가 한직급 높은 직책을 준다기에 깜박했던 거죠.

그 일은 지금두 후회하고 일년에 두번 정도는 다니던 회사 근처에가서 먼발치로 보고옵니다.

불합격 소식에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결혼도 하고 어린 핏덩이 아들도 있는데 고향도 틀리고도 대가리도 컷는데 손내밀 데는 없구.

그래서 재검진 신청하고 피뽑을 때 간호사에게 무릎끓고 빌었어여. 한번만 봐 달라고. 그랬더니 의사에게 상의를 하고오더군요.

음성이나 전염성은 없다고 합격은 시켜주는데(거짓) 혹시 직장에서 전염이 될 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 하더군요.

전 그래서 정말 조심하고 또 조심 했습니다.

생산 현장에서 현장에서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제어 분야이므로 실제 제품에는 거의 안닿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 100년 전통인가 머란가 하면서 일년에 꼭 한번씩 건강검진 하더군요. 난 않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건강검진 올 땐 일부러 기계 프로그램 수정한다고 라인 세웠다 돌렸다 하면서 프로그램 수정했죠.

한 해는 그렇게 지나가고 이년째 되던 해는 살떨려서 회사 그만 두기로 했죠.
일년 전에 않했다고 꼭해야 한다는 상사의 발언도 있구해서....

죄짓는 거 같아서 회사 그만두었는데 벌어논 건없죠 처자식은 있죠 제가 뭘 하겠어요.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제가 습득했던 기술로 죽도록 앞만 보고 일만 했어요. 자동제어 사무실 차려놓고 말입니다.

난 남들한테 십원 한푼 한뺏고 정당하게 벌어서 적금들구 생활비 했죠.
하지만 마누란 그것도 모르고 항상 생활비 적다고 투정부렸죠.

하지만 전 정부가 무지 미웠어요. 대책도 없이 전염병 막는다고 홍보하고 월급쟁이 짤리게 홍보했죠. 난 그게 누군지 알다면 개인적으로라도 끝까지 동행하고 싶었어여(그때 당시). 저승길 혼자가면 외롭자나여.

의료 보험료도 안냈어여. 약도 없는데 보호도 해주지 않으면서 돈만 챙겨가믄 안되잖아여. 아이엠에프 때 부도 많이 맞고 세금 활부로 이자 붙여 낼 때 부가세 징수 유예신청하면 이자는 않내어도 돼는데 무식해서 몰랐고 세무담당자도 얘기 않고 추석전에도 전화하고 연말에도 전화해서 조금이라도 내고가라길래 못내는 게 죄인 줄 알고 일하던 중에도 세무서 가서 할부로 내고 담당자 자장면 사주구 왔습니다.

세금 할부로 다내면서 징수유예 안가르쳐준 걸 항의하니 열심히 내주어 고맙다고 출장소 직원이 하더군여. 미안하지만 그 말 밖에 못한다더군요.

절약하면서 무조건 열심히 살았더니 큰돈은 못모아도 조금은 벌게 되더군요. 어떤 땐 하루에 800키로 정도 뛴 적도 있었어여. 제 승용차 삼년에 십팔만 탔어요. 그랬더니 스포티지 디젤헤드가 나가더군요. 서울 양재동 고속도로에서 생수사다 세통 부었더니 헤드 망가졌다고 그러더군요. 급냉시켜서...
수리해서 바로 차팔았죠. 년식은 3년 밖에 않되었는데 차마 메타는 못돌리겠더군요. 그래서 중개하는 아는 분께 부탁해서 절대 돌리지 말 것을 얘기했더니 그분 국내에서는 양심불량 많타고 수출하더군요. 그차 딱 삼백 받고 넘겼어요.

올초엔 보험 공단에서 가압류 했다고 연락왔고 전화도 왔더군요.
전화 왔을 때 야 X발누마 나는 간염땜에 회사도 못 다니고 먹고살기 위해 죽도록 뛰어 다녔다 안 아프기 위해서 수영도 허고 등산도 다니고 했고 병원 갈 때도 현금내고 다녔다고 소리 질렀더니 그 분 화도 안내시고 점잖게 얘기하시면서 지점장이라고 말씀하시더군여. 나이도 많이 드셨는데 난 그걸 모르고 내 현실만 얘기 했지요.

나중에 그걸 알고 찿아가서 사과하고 밀린 것 한꺼번에 일시불루 내었어요.
몇백 되더군요. 지금은 자동이체로 지불되는데 항상 화가 나여. 확실한 약도 없는데 피해만 주니까.

국민연금도 안내고 있는데 독촉장 계속오내요. 보건당국 예기로는 위험해서 그때까지 살지도 모르겠는데...

내 생각에는 연금 않받고 내가 잘못돼더라도 내 돈으로 내 처자식들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면 되는데 왜 그 난린지...

지금도 내가 자포자기 했다면 내 처자식들 국가.국민에게 짐이 될덴데..
열심히 해서 국가 보조 안받고 자신이 벌어서 잘 살겠다면 대책없이 떠들진 말고 하는대로 그냥 두었으면 합니다.

아님 취직 안해도 장애인처럼 처작식 먹고살게 보조를 해주든가 하란 말이다 나쁜 넘들아.

무지하신 우리 부모님은 내가 죽을 병에 걸린지알고 20년전부터 지금까지 가슴 조이며 살고계신데.... 나 또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게 신기한데...

보균자가 아닌 친구가 식당에서 우동 먹다가 넌 보균자니까 우동 못 나눠 먹는다고 할땐 시바르눔아 내가 달라고 그러디 했는데.....

지금은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집도 새로 지어드리기로 했다 간염 보균자가 말이다 시바르눔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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