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7
에이즈 보도와 관련해 인권침해를 당한 여인  

한 겨 레] 1992-01-21 (사회) 칼럼.논단 14면 1265자  
얼굴 보도 주부 악몽의 나날(동네방네)  
주부 남아무개(26)씨는 20일 며칠 앞으로 다가온 외국행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하루가 일년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웅진여성〉 91년 12월호에 조작된 ‘에이즈 복수극’의 주인공으로 기사와 얼굴사진이 실렸던 남씨는 악몽과 같은 그날 이후 단 한순간도 마음편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집안에서는 남편과 시부모의 냉대로 얼굴조차 마주할 수 없었고 집을 나와서도 누가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않을까하는 피해의식 때문에 지난 몇달 동안 외출조차 못했다. 낳은 지 6개월된 아들을 안고 문을 걸어 잠근 채 눈물을 흘리는게 그동안 하루 일과였다.
결혼 뒤 아이까지 낳고 행복한 생활을 하던 남씨 부부에게 갑자기 불행이 찾아든 것은 지난해 11월께였다.
〈웅진여성〉에 에이즈에 걸린 미모의 20대 여성이 국회의원과 대학교수 등 유명인사를 상대로 ‘복수극’을 벌인다는 기사와 함께 눈을 가린 주인공의 사진이 실렸는데 “혹시 네가 아니냐”는 친구들의 전화가 오면서부터이다. 눈을 가린 사진이어서 겨우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었지만 이 사건의 파문이 커진 뒤 ‘어느날 갑자기’자신의 얼굴사진이 일부 일간신문과 텔리비전에 실리기 시작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어갔다.
“에이즈에 걸렸다는데 사실이냐” “아무 관련도 없는데 사진이 실렸겠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전화는 차라리 견디기 쉬운 편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의심하면서 “창피해서 못살겠다”는 남편의 냉대와 함께 사는 시부모의 눈총은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모델출신 여자를 외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아들과 결혼시킬 수 없다는 완고한 시부모의 반대를 극복하고 어렵게 이룬 가정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자신의 ‘결백’이 입증된 뒤에도 얼굴사진을 실은 해당언론사로부터 아무런 사과가 없자 남씨는 18일 전국규모 신문·방송사 등 10개 언론사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남씨의 남편 윤아무개(31·사업)씨는 이날 고소장을 들고 검찰청에 나와 기자들에게 “당신들의 여동생이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그렇게 무책임하게 사진을 실을 수 있었겠느냐”고 흥분했다.
아직도 극심한 대인기피증에 사로잡혀 “일반인의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에 있다는 남씨에게 지금 유일한 위안은 사람을 피해 남편과 함께 몇달 동안 머물게될 외국에는 자신의 얼굴을 모르는 낯선 사람들만 살고 있으리라는 기대감이다.
‘공익’을 허울로 난무하다시피했던 선정적 보도로 남씨가 겪고있는 곤경을 보면서 과연 한 여인의 인권을 무시해도 좋을만치 가치있는 기사가 있을 수 있는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이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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