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9
국민 60만명이 '굶고 있다'  

배고픔 없는 세상을 향한 노력, 성공회 '푸드뱅크'

"지난 1998년 초가을. 서울시 성북구의 한 달동네 집앞에서 꼬마아이가 삶은 홍당무를 그릇에 담아 설탕에 찍어 먹고 있었습니다. 그 홍당무는 며칠 전 한 사회복지단체로부터 받은 것인데, 삶아 먹어야 오래도록 허기를 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할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삶아서 먹고 있었다는 겁니다. 놀랍게도 그 집 아이들은 사흘째 삶은 홍당무만 먹고 있었습니다."

생산, 유통,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잉여 음식자원을 모아 가난한 시설이나 개인을 돕는 데 사용하는 전문 사회복지운동단체인 성공회 '푸드뱅크(Food Bank.대표 김재열 신부)'의 김한승 신부는 한 자원봉사자로부터 전해들은 결식아동 목격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국민 60여만명이 '굶고 있다'

"한국은 사회복지 측명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0개국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종합 복지수준은 방글라데시보다 못한 세계 112위에 머물고 있는 실정입니다."(사진=밥 굶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는 푸드뱅크의 김한승 신부)

푸드뱅크의 김한승 신부는 성공회 푸드뱅크 본부 사무실에서 "결식아동, 독거노인, 쪽방 생활자(준 노숙자), 노숙자 등 어떤 이유로든 밥을 굶고 있는 이웃이 6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파고다공원에서 무료급식을 실시하면 약 5천여명의 노인이 모이기도 합니다. IMF이후 그나마 가지고 있던 여유 돈을 자식들에게 다 퍼주고 가난한 노인으로 전락한 사람들입니다. 한 끼 밥을 얻어 먹기 위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 오시더군요."

"매주 화요일, 서울역주변 남대문 지하도에 무료급식을 나가면 최소 450명에서 최고 900여명의 결식자들이 모여듭니다. 노숙자 수가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이들 대부분은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곳에서 기숙하는 소위 쪽방 생활자로 준 노숙자입니다."

한편 교육부가 발표한 지난해 결식아동수는 17만명, 대한노인회가 보고한 지난 99년 결식노인수는 22만명이고, 전실노협(전국실직노숙자대책종교시민단체협의회)이 파악한 올해 노숙자수는 7천여명에 이르며 보건복지부가 보고한 지난해 쪽방 거주인구는 1만 7천여명에 달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개발연구원이 발표한 올해 최저생계비 이하 극빈층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7%에 이른다.

음식물 쓰레기, 한해 '8조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밥을 굶고 있는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많은 양의 음식물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해 1,500만톤의 곡물을 수입하는 세계 3위의 식량수입국임에도 불구하고 생활쓰레기중 음식물쓰레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에 달해 세계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환경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해 국내에서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는 약 8조원어치나 된다.

국내 음식물쓰레기 총 발생량은 한해 약 470만톤에 이르고 있어 막심한 자원낭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서울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물쓰레기가 하루 1,600여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이는 80만명이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우리나라 음식물 폐기량은 전체음식물의 20%, 이중 먹을 수 있는 음식물쓰레기가 8%에 이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199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폐기되는 가공식품도 적지 않아 전체생산량의 약 10%에 이르는 가공식품이 버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조리식품도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각 학교에서 급식을 위해 조리되는 음식물은 급식학생수 소화분량보다 여유있게 준비해야 하는데 역시 남는 음식물쓰레기는 폐기처분된다.

잔치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의 경우 음식물을 모자라게 준비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풍토에서 더 많은 음식물쓰레기가 발생하고 있다. 학교, 부페식당, 호텔, 예식장, 사내식당 등에서 남아 도는 음식물쓰레기도 어마어마하다.

'잉여 먹거리를 결식자들에게'

"남아도는 잉여음식물을 당장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 주자는 것이 푸드뱅크의 목적입니다. 나눠먹는다면 자원낭비, 처리비용, 환경오염 등 여러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사진=남대문 지하도에서 무료급식을 받아 먹는 결식자들)

성공회 푸드뱅크의 김 신부는 이 같이 푸드뱅크를 정의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미국의 '푸드뱅크'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해오던 성공회측은, 1996년 미국 푸드뱅크 현지 상황을 접한 뒤 복지부 사회복지심의관실에 이 제도의 도입을 제의했다.

그 후 1998년 5월 복지부로부터 4대의 냉동탑차를 지원받아 공식적인 성공회 푸드뱅크 단체를 발족하고 일단 서울시 동서남북 4곳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서울시 노원구, 관악구, 성북구, 영등포구 등 4개구에 각각의 지부를 연 푸드뱅크는 생산, 유통, 판매, 소비단계에서 발생하는 잉여 먹거리 자원과 각종 기금 후원으로 현재까지 결식계층을 지원해오고 있다.

푸드뱅크 김한승 신부는 "각 식품회사, 농축산물 유통회사, 가락시장 등에서 먹거리를 제공받아 무연고자나 실제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성공회 푸드뱅크의 수혜자는 하루 평균 21,500여명. 서울, 경인, 강원, 대전, 전주, 부산 등 전국에 6개지구와 산하 30개 지부를 둔 푸드뱅크는 현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전하기 위해 18대로 늘어난 냉동탑차를 쉴새 없이 가동시키고 있다.

사업 도시락 및 반찬 배달사업, 저소득지역 먹거리 나눔 마당 운영, 옥외 무료급식, 결연사업, 급식비 지원사업 등을 통해 먹거리를 제공받는 결손가정, 결식아동 및 결식노인 수는 개인 3,595명과 1,100여 가정에 이른다.

또 266곳의 미인가, 영세 사회복지시설에도 조리음식 및 식자재류를 공급하고 있으며 명절이나 겨울철에는 특별지원차원에서 단체 및 개인에게 명절음식, 쌀, 김장김치 등을 제공한다.

올 9월 현재, 각종 먹거리 기탁처는 정기 268곳과 비정기 423곳 등 총 691곳이며, 이 곳에서 기탁된 먹거리는 개인 3,595명, 가정 1,100곳, 시설 266곳을 포함해 총 21,514명에게 공급되고 있다.

'체면'때문에 굶다니…

푸드뱅크의 김 신부는 우리나라의 '체면문화'가 굶는 사람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급식소를 차려도 사람들이 다 오질 않습니다. 체면 때문이죠. 특히 노인들과 아이들은 남들로부터 거지취급 당할까 봐 밥을 먹으러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급식소를 차려 음식을 나눠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직접 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도시락을 가정까지 배달한다. 그러다보니 냉동탑차는 음식물 수거에서부터 보관, 배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분을 담당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사진=푸드뱅크에서 나눠주고 있는 도시락)

김 신부는 "냉동탑차가 절대 부족하다"며 "8톤짜리 급식전용차량이 있으면 추후 재해지역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8톤짜리 급식전용차량은 대당 가격이 약 1억원에 이르는 고가이므로 아직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물난리나 화재 등 각종 재해가 발생하면 재해성금을 모아 쌀과 라면을 전달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런데 재해지역을 가보면 가관이 아닙니다."

"재해지역은 수도, 전기, 가스 등 각종 편의시설이 모두 끊어진 상태이므로 재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생라면을 먹어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집니다. 식기가 온전합니까, 아니면 밥 해먹을 공간이 있길 합니까. 뭐가 있어야 밥이건 라면이건 해 먹지요. 차라리 급식전용차량을 운영하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결식자들도 마찬가지구요."

운영상 어려움은?

푸드뱅크는 거의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고 있으나 고정자원봉사자가 400여명에 불과해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다.

다행히 많은 회사에서 잉여 음식물을 제공해 주고 있어 음식물 수급에는 커다란 어려움이 없지만 이를 운반, 저장, 공급해줄 차량, 창고, 인원 등이 절대 부족한 형편이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지는 못하고 있다.

게다가 요즈음 남아돈다는 쌀 확보에는 어려움이 있단다. 김 신부는 "예로부터 쌀은 곧 돈이라는 개념이 강해 쌀이 남아 돌아도 쌀을 후원해 주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김 신부는 또, 이 같은 '먹거리 나눔'계획도 때로는 사회적 무관심 내지는 방관에 부딪혀 곤란할 때가 있다고 했다. 주변 집값을 의식하는 주민들과 식당업주들은 무료급식소를 반기지 않는 님비(NIMBY)현상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숙자 등 밥을 굶고 있는 사람들이 꼬이기 시작하면 집값이 내려가고 식당영업이 안된다며 급식소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도 늘고 있다는 게 김 신부의 전언이다.

"24시간 오픈된 국밥집 개점할 터"

"일년 365일 24시간 언제나 솥엔 밥이 끓고 냄비엔 국이 넘치는 국밥집을 개점할 겁니다."

쪽방과 인력시장 부근 결식자들을 상대로 국밥집을 열고 언제나 와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김 신부의 설명.

그러나 무료는 아니다. 10원이든 천원이든 자신의 능력껏 돈을 내야 한다. 그나마 돈도 없으면 설거지라도 해야 한다. 이곳은 돈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누구나 언제든지 와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푸드뱅크는 또 개방형 푸드뱅크 지부를 계획중이다. 푸드뱅크 지부를 개방해 아이들이 와서 책도 읽고 인터넷도 즐길 수 있는 학습·놀이 공간을 제공할 방침이다. 또 노인들을 위해서는 요일별 프로그램을 운영해 건강검진, 안마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그러기 위해, 푸드뱅크는 향후 1-2년사이 성공회에서 분리된 단독법인으로 거듭날 것으로 알려졌다. 종교색을 희석시키고 복지에만 전념하겠다는 의지로 보여진다. 푸드뱅크는 또 오는 2003년까지 인프라구축 및 사업안정화를 목표로 현재 30개의 활동지부를 50여개소로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후원을 기다립니다."

"1만원이면 푸드뱅크 차량 한대가 수백명의 끼니를 실어 나를 수 있고, 3만원이면 결식학생 한명에세 한달간 점심급식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 10만원이면 한 명의 결식이웃에게 한달분 끼니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작은 정성을 기다립니다."

푸드뱅크의 김승한 신부는 각 업체에겐 먹거리를, 시민들에게는 봉사와 후원금 지원을 부탁했다.

"통조림, 햄, 빵, 탕, 조미료 등 가공식품과 채소, 과일, 곡물, 생선 등 농축산물 그리고 패스트푸드, 반찬, 기타 조리음식 등 모든 먹거리 제공을 환영합니다. 음식조리, 도시락 싸기, 식자재 배달, 차량봉사 등 자원봉사도 결식자들에겐 큰 도움이 됩니다."

끝으로 김 신부는 "푸드뱅크가 먹거리 행사나 제도가 아니라 먹거리를 나누는 '운동'으로 자리잡길 바란다"며 "더불어 사는 우리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기부금 기탁자는 세법 34조 등 관련법에 의거 연소득의 5%범위내에서 세금감면 혜택이 주어지며, 먹거리 기탁자는 법인세법 시행령 19조 등 관련법에 의거 장부가액만큼 100% 손비 또는 필요경비로 처리되어 역시 세금혜택을 받을 수 있다.

◇ 미국의 푸드뱅크는?

미국의 푸드뱅크는 올해로 35년째를 맞이했다. 지난 1967년, 미국이 사회복지정책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흑인, 에이즈환자, 불법체류자에 대한 복지혜택이 부족하다고 느낀 존 반 헨겔(John Van Hangel)씨가 당시 자신의 차량으로 식품회사에서 남은 음식을 모아 이들에게 제공한 것이 음식 전문수집기관으로 발전하면서 지금의 푸드뱅크로 자리를 잡았다.

1996년 현재, 미국내 200여개의 부프뱅크 센터를 통해 약 2천 6백여명이 혜택을 받고 있으며 해마다 5.7% 정도의 수혜자가 증가하고 있고 있는 가운데, 푸드뱅크의 효율성이 99.7%에 이르는 등 적십자, 구세군과 함께 3대 자선기관으로 손꼽히고 있다.

푸드뱅크는 현재 캐나다(1981년), 프랑스(1984년), 독일(1986년), 유럽연합(1986년) 등 복지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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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섭 bluejim@joins.com

등록일시 : 2001-10-07 05: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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