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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바라
2002/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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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믿음?
CPU님의 견해에 따르면...
믿음 : 증거도 없으며 긍정인가 부정인가 하는 확실한 실증이 없지만 맹목적으로 믿고 보겠다.
^^... 회의주의자들의 사전에 등록될 명언입니다.
하지만 그 회의주의란 개인의 정체성에 무게를 둔 비관적 세계관이겠지요.
믿음은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 왈 "사람과 믿음 중 제일은 사랑이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있고,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정신, 사랑의 실천, 사랑의 믿음도 없이 단순히 믿음만을 이야기하는 건 정신나간 짓이지요. 사랑이 없는 믿음에는 긍정, 부정이란 말 자체가 사치스럽습니다, 중요한 건 전체를 볼 줄 아는 통찰력과 어둠에 빛을 가져다주는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를 볼 줄 모르지요.
고작해서 천년이나 지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 논리학쯤이나 빌려서 ~
'나무와 나무가 모여서 숲을 이룬다'는 식의 헛소리나 하고 있으니...
숲 안에는 나무가 있지만,
나무가 모여서 숲이 되지는 않습니다.
즉, 전체와 개체와의 관계는 유기적 통일성 속에 있지, 분리성과 환원주의적 형식 논리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리적 사고는 본질의 그림자를 보고 '아~ 저것이 진실이다'고 말합니다.
잘못된 생각이지요.
팔과 다리를 떨어 뜨려놓고, 다시 팔과 다리를 붙여 생각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흔한 생각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믿음'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이와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믿음 앞에 '맹목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은 회의주의자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입니다.
왜냐하면, 객관적이고, 관찰자적인 입장에는 주관성이 개입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주관성이 회의주의자들의 믿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을 증명하려 할 때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할 때는
신이 있다는 다른 증명을 관찰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관찰의 태도이자 겸손한 태도입니다.
'마음 속에 있다'면, 그것을 반박할 수 없는 한 하나의 주장 및 생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신 이야기가 나왔지요?
전 앞서 글에서 신에 관해 쓴 글이 없는데...?
하여튼...
날마다 날마다 즐거운 하루가 되십시오.
바라
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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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토론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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