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바라 2002/4/25(목) |
Re..끄덕... 과학은 토론의 역사이지요. 숫한 논쟁 끝에 답을 얻곤 했는데, 불행히도 그 답들이 언제나 정답이었던 적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과학의 논쟁은 더욱 치밀해야 되지요. 예컨데, 1400년 이전까지 나병은 영국에서 유행병이었으나 지금은 사라졌으며 재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두고 수 많은 의견과 논문이 제기되었으나, 사실 과학적 정답은 항상 구체적인 현실에 둥지를 틀고 있지요. [보건과 의료의 사회화]라는 대단한 뛰어난 의학 비판서를 쓴 니키 하트 교수는 그 이유가 "사회적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고 결론을 짓습니다. 에이즈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구체적인 현실에 있습니다. 단, 한 명의 에이즈 환자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도대체 hiv라는 것이 존재하는가조차 증명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각 주의주장에 대해 그 꼬리표에 '과학적'이라는 딱지를 붙인다고 한들, 과연 그것이 진정으로 과학적인 주장이 될까요? 시간이나 잡아 먹는 짜증나는 이야기에 불과하지요. 모든 논의는 현실에서! 현실에서 과학을! 과학은 근거를! 이 세 가지 명제를 거부하는 그 어떤 논의도 실제로 논의일 수 없습니다. 말따먹기이지요. 김진만의 글은 바로 이 종류였습니다. 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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