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바라 2002/7/4(목) |
21세기의 마녀사냥, HIV 감염인 구씨 재판 참관기 마녀와 내통한 죄로 돼지의 목을 치고, 파리의 날개를 뗀다/17세기 마녀사냥 기록 7월 2일 오전 9시 30분, 창원지방법원 제 215호실 [여수 에이즈 윤락녀]로 알려진 HIV 감염인 구씨의 1심 공판이 열리기로 한 시각. 그 시각 나는 구씨의 남편인 박씨를 기다리며 법원 정문 앞에 서 있었다. 8시 30분부터 기다렸으나, 핸드폰도 받지 않은 채 영 소식이 없는 남편 박씨. 초조함이 흘렀다. " 왜 안 올까? 안 올 사람이 아닌데 .." 속절없이 피운 담배가 서너 대를 넘길 무렵 결국 나는 재판정에 먼저 들어가야만 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재판정 앞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서기가 오전 재판을 받을 사람들의 사건 번호를 공시하자, 우르르 몰려가 들쳐보는 하나같이 얼굴이 굳은 사람들. 9시 30분이 되어 서기가 "재판이 열리니 들어오십시오"라고 외치자, 약 9명의 사람이 입장했다. 이들은 모두 교통사고 가해자들. 검사가 사건 기록을 불러주면 재판장은 "인정합니까?"를 반문하고, 피의자들은 "인정합니다"를 말하는 게 의례적인 순서이다. 이 동안 재판을 받을 사람들이 하나 둘 속속 입장하여 어느 듯 재판정의 좌석은 꽉 찼지만,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남편 박씨. 안타깝고, 초조한 마음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다보며 그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남편이라도 안 오면 구씨의 마음이 힘들 텐데.." 7월 2일 오전 10시 30분, 창원지방법원 제 215호실 보호관찰 중 지역을 무단 이탈한 죄로 다시 재판을 받게 된 어느 소년범이 들어선 순간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재판정 문을 열고 들어 선 남편 박씨. 그의 몰골은 처참했다. 막 사우나탕에서 나온 사람처럼 이마엔 땀방울이 한 덩이씩 매달려 있고, 몸은 땀 냄새로 진동했다. 나를 더 놀라게 만든 것은 넝마처럼 찢어진 그의 왼쪽 바지. 이미 핏덩이로 얼룩진 그의 다리는 재판정에 있던 경찰관마저 놀라게 했고, 팔꿈치와 손가락 등 온 몸이 피투성이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오다가 빗 길에 미끄러져서 다쳤어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아내 구씨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박씨. 재판이 끝난 뒤 자세히 물어보니, 아내의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식사도 그른 채 쏜살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다가 골목에서 갑자기 나타난 자동차를 피하려다가 빗 길에 미끄러졌다고 한다. 병원에 가자는 운전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내의 재판에 가야 한다"면서 오토바이를 수리소에 맡기고 택시를 타고 달려왔다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겨우 참아야 했다면 거짓말일까. 섹스 테러 등 온갖 악의적인 비난 속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구씨, 너무나 그녀를 사랑하기에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쩔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재판정까지 한 걸음에 달려 온 박씨. 7월 2일 오전 10시 45분, 창원지방법원 제 215호실 "사건번호 2002고단2522 구** 씨 입장하세요" 한 손에 수갑을 찬 구씨가 서기의 손에 이끌려 등장했다. 3일 전 면회를 갔을 때보다 더 핼쓱해진 그녀는 법원의 무거운 공기에 압도된 듯 얼굴은 굳어 있었다. 이윽고 변재범 국선 변호사의 변론이 있었다. "구** 씨는 중 2를 중퇴하고, 신발공장과 다방 종업원으로 일을 하다가 ... 임신을 하자 제왕절개 수술을 하던 중 HIV 감염 사실을 알게 되었고 ... 카드빚 300만 원을 갚기 위해 윤락을 하게 되었으며 ..." "공소 사실을 인정합니까?"라는 재판장의 말에 구씨는 고개를 숙인 채 "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치솟아 오른 억울함과 절망으로 흐느꼈다. 생계가 막막한 나머지 윤락을 하게 되었으나, 사회에서 격리되고 지탄받아야 할 이유가 없으며, 치료를 위해 병원에 보내야 한다는 변호사의 변론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계속 흐르는 눈물만 닦고 있던 그녀는 진술에서 "할 이야기는 없고 죄송합니다"는 말로 답답한 자신의 심정을 대신했다. 검사는 "1년 6월을 선고합니다."고 짧게 말한 뒤 자리에 앉았고, 재판장은 "2주 후 오전 9시 선고합니다"는 말로 구씨 재판을 정리했다. 뒤돌아서 나가던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어 방청객에 앉은 사람 중 자신의 가족을 찾았다. 그러나 재판정에 그녀의 부모님은 할머니의 지병 간호 차 참석하지 못했다. 아마도 우리를 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7월 2일, 오후 1시. 마산교도소 면회실 박씨와 나는 재판이 끝난 뒤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허기진 배를 채운 뒤 다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한 시간 정도 더 이동하여 마산교도소에 도착했다. 이번 재판에서 받았을 구씨의 충격을 위로하기 위해. 면회실에서 만난 구씨의 눈가에는 아직도 채 지워지지 않은 눈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음은 남편 박씨와 구씨의 대화이다. 박씨 : 괜찮아질 거야. 넌 아무 잘못이 없어. 널 위해 밖에서 고생하는 분들이 있으니 까, 걱정하지마. 구씨 : 아까, 검사가 1년 6개월을 때리니까, 너무 놀랍고 두려워서 그냥 눈물이 막 나잖아. (이때 내가 남편 박씨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구씨에게 말했다.) 구씨 : (굉장히 놀라면서 안타까운 목소리로) 많이 안 다쳤어? 박씨 : (아내의 놀람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금 긁힌 건데.. 뭐.. 아무렇지도 않아. (약간 의 침묵을 지키며 구씨를 바라보면서) 밥 먹었어? 구씨 : 교도소에 와서 찬물에 밥 조금 말아서 먹었어. 구씨를 구속, 1년 6개월을 선고한 재판은 정당한가? 한국에서는 HIV 감염인을 '인간 흉기'로 간주한다. 이와 같은 지독한 편견은 법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고, 그 결과가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다. 애당초 예방법은 HIV 감염인을 '사회와 완전히 격리되어야 할 존재'로 보았다. 지금은 폐지된 제 14조 '격리보호'가 그것이다. 제 14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인에게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를 감염시킬 우려가 높은 자를 보호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호시설에서 격리 보호 및 치료를 받도록 명하여야 한다"고. 제 14조가 폐지되기 전 HIV 감염인은 인간 취급받기를 거부당했다. 조직 검사를 한답시고 마취도 안 한 상태에서 생살을 뚝 떼어간 뒤 소독약도 안 발라준 게 엊그제이다. 인권단체들의 무수한 항의와 진정이 있고 난 다음에야 겨우 폐지된 제 14조. 그러나 예방법의 인권 침해 독소조항은 엄존하며, 이것은 특히 제 19조, 제 25조, 동법 시행령 제 23조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제 19조 (전파매개행위의 금지) 감염자는 다음 각호의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1. 대통령령이 정하는 감염의 예방조치 없이 행하는 성 행위 2.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타인에게 전파할 수 있는 행위 제 25조 (벌칙)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3연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1. 제 9조 제 3항의 규정에 위반하여 혈액·수입 혈액제제·장기·조직·정액 또는 매 개체를 유통·판매하거나 사용한 자 2. 제 19조의 규정에 위반하여 전파매개행위를 한 자 제 19조의 전파매개행위 처벌은 두 가지를 전제한다. 무엇보다 HIV가 감염이 되는 바이러스라는 걸 전제하고 있으며, 그 다음 성관계 시 감염이 된다는 걸 전제한다. 그러나 HIV가 감염되는 바이러스라고 가정하더라도, 미국 CDC(질병통제센터)에서 1990년부터 1996년까지 무려 6년 동안 진행된 가장 광범위한 연구에서 HIV가 감염이 된다는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구씨의 경우 경찰 추산 5,000천 명에 달하는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하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여수와 화성, 부산 등에서 홍역처럼 불어닥친 HIV 검사의 열풍 속에서 단 한 건의 양성도 발견되지 않았다. 가장 오랜 시간 지속적인 성관계를 가진 남편 박씨도 음성이다. 따라서 제 19조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제시한다. HIV 감염인이 성관계 시 상대방이 양성이 되든, 음성이 되든 그건 상관없다. HIV 감염인은 흉기로 간주되므로, 상대를 살해할 위험성이 존재하고 이 사실이 처벌 요건이 된다는 바로 그것. 법률적 용어로는 '추상적 위험법'인 제 19조. 그러나 한국과 같은 처벌 규정을 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HIV가 감염이 된다는 증거를 제출하라 HIV가 AIDS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1983년 HIV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던 뤼크 몽타니에 박사로써, 그는 1987년 "HIV가 AIDS를 일으키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 에이즈 과학자들 중에는 만성피로증후군을 에이즈의 범주로 보고, 이를 연구하는 학자도 다수 있을 만큼 HIV에 대한 기존의 가치관은 깨어진 지 오래다. 미국 CDC도 CD4 지수가 200 이하인 환자는 HIV 음성이라고 해도 에이즈 환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HIV에 대한 과학적 신념이 흔들리고 있는 지각을 반영한다. HIV에 대한 과학적 논문이 없다고 주장한 케리 뮬리스 박사의 말처럼 더 이상 HIV를 고집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980년대 초반에 있은 HIV에 대한 일부 과학자들의 가설을 근거로 한 한국의 예방법. 21세기에는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감염이 된다는 증거도 제출하지 못하면서 HIV 감염인을 죄인으로 취급하는 잣대는, 이제 있는 그대로 원래 이름대로 불려져야 한다. '편견'이라는. 구씨는 '공순이'였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파란 작업복을 입은 여성 노동자였다. 그녀를 티켓 다방으로 내몬 것은 지독한 가난. 구씨의 부모님 말에 의하면, "걔가 다방에 간 건 전 남편이 권유해서"였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팔 한 쪽이 없는 그녀의 전남편은 이미 아이가 하나 있는 구씨를 "돈 벌어 오라"고 밖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의 임신. 전남편은 생활능력이 안 된다고 '낙태'를 종용했으나 이미 산처럼 배가 부른 그녀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제왕수술을 하게 되었고, 생살을 찢는 고통 속에서 낳은 둘째 아이는 외국으로 입양되었다. 병원에서 날아 온 통지서에는 "당신은 HIV에 감염되었습니다"였고. 구씨는 단 한 번이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어했다. 현재 남편 박씨를 만난 것도 그 이유. 김매기 등 고달픈 농촌 생활이 손에 익을 리 없었지만, 박씨와 오손도손 살림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박씨를 만나기 전 생계 때문에 진 카드빚 300만 원이 그녀를 쫓아다녔다. 땅 한 떼기 없는 소작농의 아내에게 300만 원은 지구의 무게보다 무거웠다. 바로 이게 다시 윤락을 선택하게 된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죄 없는 자는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하루 술값으로 돈 100만 원을 우습게 쓰는 유한계급이 존재하는 한국에서 구씨는 무능력한 인간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노동자가 팔 수 있는 유일한 노동력인 몸뚱아리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팔불출이다. 남자에게 속고, 이용당하고, 매를 맞으면서도 터진 입술 사이로 '*새끼'라는 욕도 할 줄 모른 나사 하나 빠진 바보이다. 그녀를 옥죄고 있는 절망은 단지 수갑과 저 높고 단단한 교도소의 벽만 있는 게 아니다. 20세기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어야 할 에이즈에 대한 편견은 구씨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철벽이다. 살아남기 위해 재판장에게 "남들이 그르던데 6개월밖에 못 산 데요"라고 한껏 불쌍함을 호소해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그녀는 "남들이 그르던데"라면서 푼수끼를 보여준다. 밤마다 자식이 보고 싶어서 울었다는 구씨의 삶에 대해 "불우한 가정 환경 때문에 사회에 보복하는 싶은 심리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일부 언론의 되먹지도 않은 정신분석학적 논리.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정확하다면, 우리는 구씨를 위해 구명 운동을 펼쳐야 한다. 지식인의 기회주의적인 속성을 감안해도 밑져야 본전 아닌가. 나중에 '나도 할 만큼 했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으니. 지금 한국 에이즈 재평가를 위한 인권모임은 구씨를 구명하기 위한 다각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많은 참여를 바란다. 주소는 www.noaid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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