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바라
2002/6/30(일)
면회 후기] 이상한 세상...  

어제 기분이 참 이상하더군요.
그 기분은 지금까지 변치 않은 채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공기들, 사람들 그리고 벽...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오만가지 감정이 아주 빠른 속도로 내 머리와 심장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밖에는 비가 흐르고 ...

아까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내가 잠깐 미친 게 아닐까?"
그랬더니 그 친구 왈~
"그 좋은 데 가서 뭔 소리하냐?"고 반문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서울이라는 억압과 순응을 요구하는 경쟁의 도시를 잠깐 떠나 이 자리에 서 있는 지금
이 순간도 그 환장할 공간에 매장되어 있는 사람의 눈에는
내가 아주 가벼워보일 지도 모른다는...

철창 안에서 수인의 옷을 입고 있던 구 여인의 모습은 재판을 기다리는 미결수로 판단하기엔
너무나 동떨어진 인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약간 노랗게 염색된 꽁지머리와 갸름한 체격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오래된 친근함을 던지는 미소
5분이라는 짫은 시간의 통제를 받으면서 나눈 몇 마디 대화 속에서 제가 확실히 깨달은 건
구 여인이 흔히 알려진 백치 미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머리 속에 아다다가 연상되었다면 그게 정답입니다.

억장이 무너진 건 당연한 일입니다.
마산 교도소를 나서면서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더군요.
그녀에게 우리 모임의 글을 프린터하여 넣어주기는 했지만, 과연 그 글을 이해할 수 있을련지...

제 착각에 지나지 않을 지 모르지만,
구 여인은 분명히 에이즈의 개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흔히 알려진 에이즈가 뭔지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게 저의 느낌입니다.
즉, 그 동안 구 여인에게 양성, 음성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나사가 하나 빠져 있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순박하기 그지 없는 여인인 구씨...
그녀를 보고 분노를 느끼지 않는 건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 분노는 그녀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아무 죄가 없는데 단지 HIV 양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먹고 살기 위해 생계형 매매춘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차갑고 무거운 철창 안에 가둬 놓고 있는 이 시대에 있습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저는 울었습니다.
함께 온 조 목사님과 원장님이 떠난 후 마산에 남은 저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허탈감을 결국 참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술을 마셔도 가시지 않는 이 기분...
머리 속에 돌멩이 하나가 박혀 있는 듯 정신이 멍하고,
온 몸을 돌던 피와 근육이 집단 파업이라도 한 듯 기진맥진한 육신의 상태는
어제 구 여인을 면회한 단 5분 간 발생한 일입니다.

월간 동아, 여성 중앙 등에 실린 에이즈 관련 특집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월간 동아는 에이즈는 동성애의 형벌로 묘사하고,
여성 중앙은 구 여인을 남편의 순애보를 이용한 대단히 파렴치한 여인인 양 그렸더군요.

어제 구 여인의 남편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솥뚜껑 같은 손마디 마디가 대신 설명해주듯 전형적인 시골 남성인 그와의 대화를 통해
구 여인에 대해 애뜻한 감정을 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 여인 역시 남편에게 성실한 한 명의 여성이었던 것 역시 알 수 있었습니다.
여성 중앙은 남편이 구 여인의 HIV 양성 사실을 알고도 함께 결혼했다면서
그의 헌신성을 극찬했지만,
제가 만난 그는 구 여인과 마찬가지로 에이즈의 개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 그는 자신의 아내를'에이즈 환자'로 부르는 세상의 불안과 편견에 대해
완강히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구 여인의 이름)이 에이즈 환자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너무 건강하거든요."

오는 7월 2일 구 여인은 재판을 받습니다.
그녀가 앉을 딱딱한 나무 의자는 최고형인 3년을 때리라는 검찰의  앙칼진 목소리로
떨릴 것입니다.
판사는 구형을 내리겠지요.
"섹스 테러를 한 구 여인은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남성들을 공포에 떨게 한 죄질이 무거우므로
3년 동안 독방에서 회개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라."

저를 분노에 벌벌 떨게 한 또하나의 사실은
텔레비전에 방송된 붕대를 감고 있는 그녀의 손목이
잔혹하게 손목을 옥죄인 수갑 때문에 생긴 상처라는 데 있습니다.

지금은 깨끗히 나았지만,
그녀의 정신과 그녀의 정신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가혹하게 대했으면, 붕대를 둘둘 말아야 할 정도로 상처가 생겼을까?

....

구 여인에게 아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는 전 남편이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 남편이라는 자는 부산역을 돌아다니며, 주정을 일삼는 건달이라고 하더군요.
팔 하나가 없는 장애인이라는데, 구 여인과 살 때
매일 구 여인에게 밖에 나가 돈을 벌어 오라고 강요하고 또 일상적으로 폭력을 가했다고 합니다.
결국 매를 견디지 못한 구 여인은 가출할 수밖에 없었고,
공장에서도 단순한 일만 한 관계로 기술이 없었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티켓 다방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현재 남편인 박씨의 말에 의하면, 구 여인은 아들이 보고 싶어서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오늘 저는 언어가 가진 한계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게 존재한다는 그것~

구 여인의 재판을 기다리며 마산에 머물고 있는 지금 이 순간
탄원서 등 구 여인을 구할 수 있는 각종 방법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무작정 속만 삭일 수밖에 없는 내 존재의 미약함에 대해
다시 한 번 통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부산에 내려가서 구 여인의 아들을 만나고 싶은데...
이 아이에게 네 엄마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널 아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로 인한 이 세상에 남은 얼마 남지 않은 양심들이 깨어나고 있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은데...

...

오늘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물과 담배만 축내고 있군요.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프고, 잠을 안 자고 잠이 오질 않습니다.
HIV 양성 판정을 받았기에 감옥에 넣는 이 빌어먹을 에이즈의 지옥만 저주합니다.

빨리 정신을 차려서
이 기가 막힌 현실을 고발할 힘을 낼 것입니다.

우리에겐 돈도 빽도 없지만 순수와 열정이 있습니다.
저는 이 열정의 의미를 알고 있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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